육체쇼와 전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28
황병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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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 반해서 시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반적으로 치열한 태도와 그 표현에 관한 격렬한 고민이 보여 나도 같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느낌. 아직은 어렵다. 다시 읽어야지.

어떤 밤에 우리는

연필의 검은 심을 모질게 깎고

이 고독한 밤을 바꿀 수 있다면
이 고독한 밤을 바꿀 수 있다면

서로의 얼굴을 백지 위에 갉작 갉작 그려 넣으며

납득이 가지 않는 페이지는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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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스크랩 노트가 없나 보다
간간히 남기고 싶은데 한꺼번에 합쳐지는 게 맘에 안드네
다 못 읽어서 평이랄 건 없고...
이미지와 환상 그것들에 얽혀있는 것들 재밌음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욕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욕망일까요?
우선 정치에서 그것은 인류 전체의 실질적 평등을 도래하게 만들겠다는 혁명에 대한 욕망입니다. 시에서 그것은 숭고에 대한 욕망, 특별한 언어를 심오한 작업을 통해 보편적 투명함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욕망입니다. 수학에서 그것은 지적인 지복에 대한 욕망, 매우 난해하다고 알려진 문제를 해결했고 모두에게 해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실성을 얻으려는 욕망입니다. 사랑에서 그것은 모든 분야에서 혼자일 때보다 둘이 함께할 때 삶의 경험이 더욱 강렬하고 굳건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욕망입니다. 이런 욕망들이 그들의 실재와 접촉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이미지들을 깨끗이 치워버려야 합니다. 철학은 모든 본래적 욕망이란 모두 그 대상의 절대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언표함으로써, 이런 욕망에 대해 정리해버립니다.
하지만 .......아무런 환상도 없는 욕망이 실존할 수 있을까요?

...(중략)

희곡의 서문에서 주네

우리 시대의 몇몇 시인들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에 열중해 있다. 그들은 인민,자유,혁명 같은 것들을 노래한다. 이런 것들은 앞다투어 노래되고 그런 후에 추상적인 하늘에 못 박히듯 고정된다. 이 하늘에서 이것들은 그 기가 꺾이고 쪼그라든 채로, 기괴한 별자리로 형상화된다. 현실세계와 분리되면 이것들은 만질 수 없게 된다.
그토록 멀리 보내져버린다면, 어떻게 그것들에 다가가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체험할 수 있겠는가? 때때로 화려한 문체로 써진 그것들은 하나의 시를 구성하는 기호가 되고, 시적 정서는 향수가 되고 노래는 그 전거를 파괴하고 우리의 시인들은 자신이 살리고자 했던 것을 죽이게 된다" - 알랭 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p.22)/알랭 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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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 세손(하늘마루)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보게 되는 시들.
경건한 언어 속에서의 부르짖음...
특히나 두이노의 비가 연작들.

"정적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는 들리겠지. 나는 손을 올린다.
당신에게는 들리겠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고독한 사람의 몸짓에는 많은 사물들이 모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나는 눈을 감는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는 들리겠지.
이것도 소리가 되어 당신의 귀에 닿으리.

사랑하는 이여, 들리나요. 나는 다시 손을 올린다.
그러나 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보일 듯 말듯 내 움직임의 흔적만이
비단 같은 정적 속에 뚜렷이 떠오른다.
먼 풍경에 있는 듯 없는 듯한 감동도 지을 수 없이
나의 숨결에 따라 별이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내 입술에 향기가 가득히 젖어 오면,
나는 멀리 있는 천사들의 손목을 알아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당신만은,
당신만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p.21)/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와 같다.
저녁녘에 바다에서 올라와
아득히 먼 평야에서
언제나 고독한 하늘에 닿아
비로소 도시 위로 내린다.

골목마다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때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육신과 육신들이
절망과 비애로 헤어질 때,
서로의 애증으로 시새우는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누웠을 때,
낮과 밤이 뒤섞인 박명의 시간 속에 비가 내린다.

그때 고독은 시냇물과 함께 섞여 말없이 흐른다." -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p.26)/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1

행여, 내 울부짖은들 누가 천사들의 열에서
들어주리. 하물며 어느 천사가 있어
나를 가슴에 안아준다 한들, 보다 강한 그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고 말리라.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에 불과하므로.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찬탄함은 우리를 파멸시킬 정도로
거부하는 까닭이리라. 천사는 무서운 존재.
그러므로 스스로를 억제하며 암담한 마음으로
유혹하는 소리를 삼켜버리노라.
아아, 우리가 그 누구를 부릴 수 있는가.
천사도, 인간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이미 알고 있나니
이와 같은 세상 의지하고 우리가 더 이상
편안할 수 없음을 알고 있노라. 아마도 우리에겐
우리가 날마다 보고 또 볼, 비탈길 어느 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 있으리. 우리에겐 어제 거닐었던 거리와
우리가 마음에 들어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
습관의 이지러진 성실함만이 남아있는 것이리.
오오, 그리고 밤. 밤의 공간에 가득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후벼댄다ㅡ
누구에게 이 밤이 남지 않으랴, 이 대망의 밤.
홀홀히 가슴 앞에 고달프게 다가서는,
살며시 환멸을 주는 이 밤이, 사랑하는 연인들에겐 한결 마음 가벼우린가.
아아,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운명을 숨길 따름이니,
그대는 아직도 그것을 모른다 하겠는가? 가슴속의 공허를
우리가 호흡하는 공간을 향해 던져버려라. 아마도 새들이
힘찬 비상과 더불어 이 넓혀진 대기를 느끼리라.

그래, 봄은 정녕 그대를 필요로 하였으리.
수많은 별이 그대가 감지해 주길 바랐었나니.
지나간 세월에서 파도가 밀려왔노라 혹은
그대가 열려진 창가를 지나갈 때,
바이올린이 그대의 심금에 들어왔으리. 이 모든 것은 당부였다.
하지만 그대 그 일을 다한 적 있었나요. 그대는 언제나 모든 것이 임의 오심을 알려주는 양,
기대에 마음 어지럽지 않았나요?
위대하고 낯선 생각들이 들락거리고 때론 밤에 머무는데.
어디에 그대는 임을 간직하려 함인가!
그래도 그리움에 못 견딜 양이면 연인들을 노래하라.
그대가 시샘할 정도인 버림받은 여인들.
그대가 사랑에 만족한 여인들보다 훨씬 더 사랑하고 있는 그 여인들은.
이루지 못한 찬미를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해보라 영웅은 지탱하나니, 몰락마저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 그의 마지막 탄생이었나니
그러나 피폐된 자연은 사랑하는 여인들을
두번 다시 그 일을 이룩할 힘도 없는 양, 스스로의 품속으로
불러들이노라. 사랑하는 임을 잃은 그 어떤 소녀가
이 사랑하는 여인의 탁월한 본보기에서 느끼리만큼
그대여 가스파라 스탐파를 마음 가득히 생각해보았는가?
이 해묵은 고통들이 마침내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임의 손에서 벗어나 떨며 이를 견뎌야 할 시간이 아닌가.
마치 자신이 갈 수 있는 것보다 더 멀리 날아가려고 힘을 모으며
시위를 견디고 있는 화살처럼, 왜냐하면 아무데도 지속은 없으므로.
소리, 소리를. 내 마음이여 귀기울여 보아라
일찍이 성자만이 들었던 것처럼. 그 엄청난 소리는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으나, 불가사의한 그들은 무릎 꿇은 채 그 이상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들은 귀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소리라 해서 그대가 잘 견뎌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바람처럼 불어오는 것.
이 정적에서 빚어지는 끊임없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그 젊은 주검으로부터 그대에게 속삭이는 소리 들리리니.
그대 발을 디디는 곳마다 로마와 나폴리의 교회에서
그들의 운명이 고요히 그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가.
혹은 최근에 산타마리아 포르모사에서의 비문처럼
묘비명이 그대에게 엄숙히 당부하지 않았던가.
이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때때로 그들의 순수한 정신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부정의 외관을 살며시 벗겨주었으면 하는 것이리라.

야릇하여라. 이 땅에 더 이상 깃들어 살지 않음은
겨우 익힌 습관을 더는 영위하지 않음은
장미꽃들이며 그리고 그처럼 약속된 다를 사물들을
인간의 미래에 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은
끝없는 불안의 손길에 들어있던 것이,
이제 존재치 않게 됨은, 흡사 부서진 장난감처럼
자신의 이름마저 지워져 버림은.
야릇도 하여라, 소망을 더는 바라지 않는 일은. 야릇하여라.
서로 얽혀 있던 모든 것이 공중에 흩어져
나부낌을 보는 것은. 죽은 자는 괴로워라,
만회하기에 바쁘니, 그리하여 조금씩 영원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ㅡ하나 살아있는 자는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나니 너무도 심하게 구분짓는다.
천사들은 산 자의 사이를 거니는지
죽은 자 사이를 거니는지 때로는 알 수 없다 한다. 영겁의 흐름은
이 두 영역을 뚫고 온 세대를 쉬지 않고 잡아채며
그 속에서 이들을 압도하며 울리노라.

마침내 그들 요절한 자들도 우릴 필요로 하지 않노라.
어머니의 부드러운 품에서 자라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엄청난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ㅡ그처럼 복된 진보가 슬픔에서 연유하는 우리ㅡ우리는 이들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옛날 리노스의 죽음에 대한 비탄 속에서 처음 음악이
메마른 감정을 뚫고 울려퍼졌다는 것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과 같은 젊은이가 갑자기 떠나가버린 놀라움에 찬 공간과 공허가 진동으로 화했다는.
그 진동이 이제 우리를 매혹하고 위로하고 구하노라." -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p.96)/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9

어찌 삶이라는 시간은
시작부터 사라져 가는 걸까.
주위보다 어두운 음영 드리우고
모든 잎새 가장자리마다 잔물결 일으키고 있는
바람의 미소같이ㅡ또 어찌하여
삶이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인가ㅡ
운명을 피하면서 그리워한다는 말인가.

오오, 삶이 행복해서가 아니다.
행복이란 다가오는 손실에 앞선 이득일 뿐이니
호기심 때문도, 월계수 속에도 들어 있을
마음을 단련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많은 것들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 있는 모든 것, 사라져 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며
이상하게도 우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쉽사리 사라지는 우리들과,
한 번 모든 것은 단 한번 존재할 뿐,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는다.
우리도 한번 존재하노니 결코 다시 시작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존재했다는 것, 오직 한번
지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되물릴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자신을 재촉하며 우리 삶을 누리려 한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손바닥에, 들끓는 응시에,
말없는 가슴 속에 삶을 지니려 한다.
그렇게 되려고 애쓰며ㅡ누구에게 그걸 주려는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서
우리 모든 것 영구히 지녀보려고 하나 그 상대편의 관계 속에
아아 무얼 가져간다는 걸까. 이곳에서 서서히 익혀온
응시도 삶의 어느 사건도 아니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다음 고통들이 있지. 무엇보다 고달픈 삶,
사랑의 오랜 경험ㅡ그리고
형언키 어려운 순수한 것들, 하나 그후
별들 아래서라면 무슨 소용이랴.
갈수록 형언키 어려운 별들이니
방랑자라도 산꼭대기에서 골짜기로 내려올 때 한 줌의 흙,
그 형언키 어려운 삼라만상 대신에 다만
하나의 순수한 낱말을, 황녹색 용담꽃만을 얻어올 뿐이다.
아마도 우리 이 삶의 터전에서, 집을,
다리를, 샘을, 문짝을, 항아리를, 과일나무를,
또 기껏해야 기둥이나 탑 따위를 말하지 않으랴. 하나 말하려면 기억하라
오오 그렇게 말함은 사물들 자신도 진정 그러리라고는 한번도 여겨본 적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임을. 이 은폐된 대지의 은밀한 의도란.
대지가 연인들을 재촉하며
그들의 정감에서 하나하나의 사물이 황홀케 하려 함이 아니랴.
문턱, 그 것은 한 쌍의 연인에게는 이런 뜻이 있노니
그들 역시 걸핏하면...수없이 과거를 넘거나
미래에 앞서 저희들이 낡은 문턱
조금씩 닳게 한다는 것.

삶은 형언할 수 있는 시간, 삶이 시간의 고향인 것
말하고 고백하라. 그 어느 때보다 더
우리가 누리는 사물들 사라지나니, 왜냐하면
그 사라지는 자리에 새로 바뀌어 들어앉는 것은 형체도 없는 행위이기에.
껍질에 싸인 행위라는 것.
그 껍질은 그 안에서 행위가 커져 나와 새로운 경계를 갖자마자 곧 순순히 쪼개지고 마는 것.
우리의 심장은 고동 사이에 있노라.
마치 잇새에 혀가 있어 그럼에도 혀는
여전히 찬미를 계속하듯이

천사에게 세상을 찬미하라. 형언키 어려운 세상은 말고.
그대가 찬란함을 느꼈다 하여 천사에게 허풍을 칠 수는 없으리.
천사라면 더욱 민감하게 느낄 삼라만상 속에서 그대 한갓 풋내기여라.
그러니 천사에겐 보잘 것 없는 것을 보여줘라. 세대를 거듭하여 이룬 것을.
우리의 것이라도 하듯 손 가까이 눈길 안에 머물며 살고 있는 것을.
사물들을 말해주어라. 천사는 더욱 걸음을 멈추리라. 마치 그대가
로마의 줄 만드는 자, 나일강 유역에서 도자기 굽는 자였기라도 하듯이.
천사에게 사물이 얼마나 행복스런 것인지
얼마나 천진하게 우리의 것인지를 보여주라.
비탄에 잠긴 슬픔이 제 스스로 얼마나 순수히 형상을 이루려 하는지.
사물에 이바지하거나 사물 속에서 죽는지를ㅡ그리고 마침내 바이올린의 축복 저 너머로 도망치기 위해ㅡ하여 죽음에서 나온 이것들
살아있는 사물들을 그대가 저들을 왜 추켜세우는지를 아노니,
사라져가는 그것들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장 사라지기 쉬운 것을 의탁하노라.
우리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서
그것들을 온통 바꿔 놓기를 염원하라.
오오, 무수히ㅡ우리 자신으로 바뀌기를.
마침내 우리가 누구로 되든간에.

대지여 그대 하려는 일은 이것이 아니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의 내부에서 되솟아 나는 것ㅡ그대의 꿈이란
언젠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랴ㅡ대지여! 보이지 않게!
변형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대의 절실한 위임이랴.
대지여, 사랑하는 그대여, 내 바라노라. 오오, 믿어라. 이제
그대의 많은 봄 필요치 않으리,
나를 그대에게 이끌기 위해ㅡ하나의 봄,
아아, 한번의 봄만으로도 내 피엔 벌써 너무 많노니,
이름도 없이 나 그대에게 가려 하노라, 오래 전부터,
그대는 늘 옳았노라, 그대의 성스런 착상은
허물없는 죽음이노니

보라, 나 살고 있노라. 무엇으로? 어린 시절도 미래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삶이
내 마음 속에서 솟구쳐 오르나니" -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p.102)/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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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차분히 살랑이는 시집. 수더분히 얘기하는 방식이 좋다.

"연애 2

너와 나란히 서서
꽝꽝 언 얼음 위에
돌을 던진다
얼음은 하얗게
멍이 들고
돌은 소리를 죽이며
강기슭에 가 닿는데
강은 얼마나 깊은지
강은 세상으로
얼마나 깊이 흐르는지
산이 운다

산이
울어" - 연애시집(p.24)

"봄비1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 연애시집(p.60)/김용택

"그 꽃 못 보오

안 가고 보지 않아도
뒤안의 목단꽃은
내 발 아래 똑똑 떨어지는데
해 지고 산 그늘 내리면
차마 뒤안에 나는 못 가오
행여, 행여나
나 볼 때 꽃잎이라도
내 발 아래 뚝뚝 떨어진다면
참말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그 꽃 본다요
두 눈 뜨고 그 꽃 못 보오
그 꼴 나는 못 보오" - 연애시집(p.61)/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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