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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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 일이긴 해도 다 잊은 것은 아니라서

머리속의 어떤 부분들에 여전히 한자리를 차지한 채

숨죽이고 있는 것들, 그것들을 과거의 이야기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좋았던 일, 나빴던 일, 행복했던 일, 불행했던 일...

또 더 많은 이름들이 붙여진 이러저러 했던

일들이 합쳐진 채로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불특정한 어느 순간에 기억이라는 행위를 빌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기억은 현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되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해결할 수 없는 당혹감으로 흥분에 휩싸이기도

하고 반대편으로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어느쪽이 되었든 과거의 기억은 지금의 '나' 를

여전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속의 주인공 도발레는 과거의 이야기를 잘 포장하여

관객들에게 풀어 놓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볼품없는 외모에 대한 묘사를 상쇄시키는 그의 언변

속에는 이야기를 맛깔나게 하기 위한 갖은 양념들이

쳐져 있다. 개그, 풍자, 조롱, 비난, 과장, 거짓말 등등.

그리고 도발레의 진심이라는 양념까지.

 

여느때처럼 느껴지는 도발레의 스탠드업 코미디가

무대에 등장하고, 나는 독자이자 한 사람의 관객으로

책을 시작 한다.

시시껄렁한 잡담이 만담을 이루는 가운데 솔직히

독자로서도, 관객으로서도 도발레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도발레의 입심의 바탕에 깔려있는 이스라엘 문화의

배경지식에 대한 부재. 더불어 또다른 책 속의 인물

아비샤이가 통렬한 비판을 가했던 대로,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개그화와 희화화에 대한

도발레의 말폭탄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독자 나와 함께,

몇십년만에 다짜고짜 걸려온 도발레의 전화 한통으로

학창시절에 나누었던 짧은 우정을 상기시켜 보기도

전에, 느닷없이 옛친구의 공연에 초대된 은퇴한 판사

아비샤이 역시도 무대를 바라보는 자리가 어색하기만

하고, 그 장면을 제3자의 눈으로 따라가는 나도

그렇긴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의 공백에 대한 준비 없이 도발레와

아비샤이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만났다.

도발레의 용건은 그저 자신의 쇼에 와달라는 것.

그러면서 나열되는 대사로 인해 독자 나와

아비샤이는 무장해제 되어 간다.

 

" 내 쇼에 와주었으면 좋겠어.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어.

이유는 없어. 날 위한 거야.

이봐, 나도 이게 느닷없다는거 알아.

하지만 그뿐이야. 때가 된거지. "

 

" 내 말은 있잖아.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뭘 얻느냐는

거야. 나를 볼 때 뭘 알게 되지......"

 

" 어떤 사람에게서 제어 불가능하게 그냥

흘러나오는거 있잖아. 세상에서 오직 이 한사람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그거. "

 

도발레에 대한 편견과 뜻모를 벽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진지하게 유지되었던 감정이

대사로, 그의 말로 표현되고 독자 나와 아비샤이는

도발레를 향하여 움직인다. 그 지점은 이 책을 긑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아비샤이가 도발레의

공연이 끝날때까지 관객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만나게 되는 곳이다.

 

잡스러운 이야기와 일순간의 웃음만을 위한,

알맹이는 빠지고 자극적인 양념뿐인 말들에서

어느 순간 무대와는 어우러지지 않는 진지한

과거의 이야기가 주가 되어 간다.

진실한 이야기. 그러나 가벼운 유머로 연막이 쳐진

말들에서 아비샤이는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의 광채' '진동처럼 전해지는 고유성'

'그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그사람에게서 잘못되고

뒤틀린 것들 너머에 놓인 모든 것' 을 찾고자 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순된 부정,

홀로코스트의 악몽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

무겁게라도 꺼낼 수 없는 얘기들이

자기비하적인 웃음을 곁들인 도발레의

말잔치로 이어진다.

 

그의 고통을 끌어모아 밥벌이의 재료로 삼고 있는

사람 도발레. 과장된 연기와 코미디는 점점 하나도

우습지 않다. 도리어 마치 생에 마지막 고백과도 같은

공연에서 도발레가 진정 꺼내 보이고 싶은 '그것' 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아 간다.

 

엄마의 죽음, 장례식을 받아들이지 못해 발버둥치는

어린 도발레의 모습을 다시금 연기하는 장면은

처절해지고, 나는 끝까지 함께 남은 관객이 되어

고통을 공유한다.

 

아비샤이의 짐작처럼 도발레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마지막 정점을 위해 오늘의 공연을

준비하고 과거와 현재의 쓴맛을 다 쏟아 놓고 싶은

사람으로 오래전 도발레가 바라는 것 없이

우정을 주었던 그 아비샤이가 필요 했던 것일까?

 

주인공 도발레, 57세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야 하는

스트레스' 와 '사랑해달라고 구걸하는 것' 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외치는 사람.

책의 초반부에서 도발레가 부탁했던 질문

" 사람들이 날 볼 때 뭘 얻느냐는거야.

나를 볼 때 뭘 알게 되지...... "

아비샤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과 관객,

이야기하는 자와 듣는 자라는 일방향적으로 보이는

모습 뒤에서 도발레와 아비샤이는 각자의 의식 안에서

보이지 않는 '그것' 을 주고 받는다.

둘의 10대는 원치 않았지만,

세상이 이끄는대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미완성 된 채 과거로 굳어졌고,

다시금 마주 앉은 지금, 도발레의 괴로움을 보고도

방관자를 고수했던 아비샤이가 한참이나 늦어버린

우정을 줄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 온다.

 

도발레는 아비샤이에게 무엇도 의도하지 않았고

바라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 그대로 아비샤이 앞에

섰다.

' 내 쇼를 봐달라는 것 '

'나를 봐달라는 것 '

그것 말고 불순한 다른 것은 없다.

 

독자 '나' 는 도발레와 아비샤이에게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치유' 가 일어나길 바란다.

도발레의 우습고도 슬픈 말들이 고백되어

마음의 고통이 잦아들기를. 도발레의 고백에 담긴

고유성을 알아차린 아비샤이가 남은 시간,

다하지 못했던 우정 위에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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