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가 말하는 풍수과학 이야기
이문호 지음 / 청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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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다잉 세계수목장 )읽어보십시오 ♡○☆ 초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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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가 말하는 풍수과학 이야기
이문호 지음 / 청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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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약 권을장군이 역모의 수괴였다면

학교에서 배운다. 소중화주의 한국은 작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여진,조선,일본을 오랑캐라 말하며 한국은 여진,일본을 오랑캐라 부른다.



권율장군은 충신이고 영웅이다.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권율장군이 어디 권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원권씨라고 가정해본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전 조선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시비를 건다.



만약 연산군때까지 일본에 공녀를 바쳤던 조선은 중종때 자주개혁을 선언하며 이를 단절시키나



다시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은 이를 요구했다고 가정해보자.



10만양병설은 후대에 꾸며낸 허구이나 만일 실미도처럼 잘 훈련된 군대를 권율에게



맡기고 총지휘권을 주어 정벌하라 명했는데 낙동강쯤가다 지금은 농번기라 안되고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지니 안되고 북쪽에 있는 나라가 남쪽에 있는 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다시 회군해 개혁을 하고 있는 조선왕조를 쓰러뜨리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국명을 권율의 고향인 철원으로 하오리까 가야라 하오리까 여쭌다.



이에 고무된 도요토미는 가야란 이름이 아름다우니 (일본고대사서중 하나에 가야는



임라일본부 즉 일본의 식민지였다란 허구적이야기가 있다) 국명을 가야라하거라.



그후 가야의 태조 권율은 자신의 역모를 감추기 위해 소왜국주의사상을 내세워



조선은 작은 일본이라 칭하며 일본은 아버지의 나라라하여 큰나라에 빌붙여사는



사상인 사대주의로 일관한다 동국여지승람의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속국이란 뜻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칠 수는 없다. 그럼 권율(이성계)이 낙동강(위화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다시 공녀제도를 만들어 매번 공녀를 뽑아 왜국에 상납하고 그 반작용으로



조혼제도가 가야시절 내내 자리를 잡는다.



이게 오랫동안 정착되어 1909년 민적법에 의해 성씨가 없는 노비나 백정,망나니,재주꾼들은



기왕이면 왕족의 성씨를 갖자며 철원권씨나 김해김씨를 가져가고 이들의 후손중



성공한 사람들은 진짜족보를 사서 종친회에 나온다.



한술 더떠 어떤 이들은 진짜임을 강조하고자 권씨가 아니라 궐씨라고 고쳐부르기도 한다.



몽고는 세계를 휘두른 국가다 원도 몽고족이 세웠고 러시아인도 한꺼풀 벗겨내면 속은



몽고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도 무굴왕조,타타르까지 전세계를 휩쓸었다 황인종을 몽골리안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고려도 세계속에 그것도 몽고 바로 옆에 있다 모든 나라가 복속해야했듯 고려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고 앞에 충성충자를 왕에게 붙였으며 공녀를 바쳐야했다



이건 고려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이었다.



명은 원을 물리치고 중원만 통일한다 그리고 고려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여기엔 공녀도 포함된다. 고려 공녀는 공민왕이 등극함과 동시에 없앤제도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고려는 전군의 총지휘권을 이성계에게



맡기고 명을 치라 명한다.



고려는 문무를 겸비한 국가로 무인기질이 강했고 여러 전란을 거듭하면서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전권을 갖게된 이성계장군은 위화도에서 우기가 오길 기다리다 지금은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져 안되고 농번기라 안되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라며



창끝이 겨눈 방향을 반대로 돌린후 고려를 무너뜨리고 고려에 싸움을 건 적국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새로 생긴 왕조의 국명을 이성계의 고향인 화양이라고 하오리까



조선이라고 하오리까 묻고 명태조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우니 (고대 조선은



중국이 지배했다고 중국은 아직까지 우기고 있다) 조선이라고 하거라라고 명한다.



이 때 고려의 대신 이인임이 이성계의 선조라고 자기네 사서에 기록해 후손들이 조선에



대한 외교적 히든카드로 써먹도록 조치하고 이를 임진왜란 직전 오키나와 상인들에게



전운이 감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명의 관리들이 이 히든카드를 써먹는다.



홍역관과 병부상서 석성의 이야기는 얼굴마담일뿐이다.



공녀를 보자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공녀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조혼의 풍숩이 조선내내 이어지지만 지금의 교과서엔 조선의 공녀이야기나



조선시대 조혼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온통 고려공녀 충성충자 고려임금 이야기뿐이다.



우리 조상들도 항상 그랬으니까 조선이 중국을 사대주의로 떠받들고 사대로 일관하는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야 자기들의 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 개척한 갈라전(동북3성과 함경도일대)도 윤관의 동북9성도 흥남부두일대로



왜곡되어있거나 함경도로 국한되고 교과서엔 온통 세종대왕의 4군6진이야기뿐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군관 출신이고 세종의 대마도 정벌도 사실은 태종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고려의 무인기풍이 세종때까지는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권은 모두 임금에게 집중시키는 체제를 만들고 공맹사상만을 강조하는



문치시스템에만 역점을두어 결국엔 임진왜란과 36년국치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몽골제국시절 세계가 몽고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쳤지만 명나라시절 세계에서



명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친건 조선뿐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전주이씨임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은 이씨가 아니고



리씨라고 주민등록증에 달고다닌다.



악인열전을 보자 히틀러가 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독가스로 살해한 인물 독가스를



누가 나치에게 팔았는가 유대인재벌 로스차일드가문 그 후손들중 일부와 관계자들은



AP,UPI,로이터,워싱턴포스트,헐리우드 ,뉴욕타임스,뉴욕포스트등등 모두 그들 것이다.



위인전을 보자 이성계.나폴레온 모두 역모의 수괴인데 그 잔당들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너무 작아도 안보이지만 너무 커도 안보인다.



나폴레옹은 남의 나라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역모의 수괴인 이성계 이제 그만



이완용 같은 반열인 악인열전에 올릴때도 되지 않았을까



참고책



대쥬신을 찾아서

팍스 몽골리카와 고려

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명나라로 끌려간 조선공녀 잔혹사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욕망하는 지도

노컨,조선왕조실록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한국사상식 바로잡기

풍수화

♡○☆

초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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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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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동급생 중고책방에서 싸게팔아서 샀다.

사고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어서 리뷰 생략하려했는데 교육문제 사회적 부조리문제

교육계의 비리등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엔 뺄게 없다.

솔직히 칭찬하고 싶어서 리뷰단다.

재미와 오락 생각할거리등을 두루 갖춘 책을 쓰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

초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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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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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던 책인지 모르고 샀다.다시 읽어도 재밌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초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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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싸우는가
이언주 지음 / 씽크스마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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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든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든 말이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현재 천왕이 사는 도시 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가문의 수장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난립해 싸우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현단위의 땅에 지배자인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알고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5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소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이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이룬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던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나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령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 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한국영화의 탄생지인


단성사가 헐릴때 우리 영화인들은 돈버는 일만했다.


돈에 눈먼 한국영화인들,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종로의 '피맛골'이다.


종로통 대로변 정승판서행차의'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한국이 지닌 약점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는 우를 범하며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물양식이며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그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 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축양식이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그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거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때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할까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1989년판)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빈곤의 연대기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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