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쁨 -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권예슬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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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자기 소개 글을 유심히 보게 된다.
작가는 어떤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이야기인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흩어지는 시간을 남겨두고 싶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힘이 닿는 순간까지 드로잉 텔러로 살아가는 게 꿈이라고. 왠지 응원하고 싶어지는 꿈.

책머리에서 작가는 자신의 취향이 가난하다고 느껴졌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단지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을 뿐인데 흔한 질문에 멋들어진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화장실로, 맥주잔으로, 과장된 웃음으로 자신을 가렸다고.

작가의 취향이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기에 비교적 관심이 적은 분야에 대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 같으면 자신은 영화보다는 책이나 문장에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으로 보아.

사람은 누구나 위축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거듭된 실패로 인한 망설임이든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속상함이든, 혹은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학습된 무기력감이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위축되는 순간부터 세상은 공포스러운 암흑이 되어버린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의심스럽고 마음에 안 들다가 어느 순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어머니와 머위를 먹던 이야기가 참 따스하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몰두하는 것, 그냥 이유를 찾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소소한 기쁨이자 열정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하루하루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시작했던 손글씨가 그랬고, 나중에 내가 다시 보기 위해 남기게 된 독서기록이 그렇다. 목적이 있어서 오르는 산도 매력적이지만, 가끔은 그저 산이 앞에 있기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다 만나는 이름 모를 풀, 꽃이 주는 위로는 덤이고.

작가는 무채색도 색깔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가슴이 뜨겁고 열정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갑고 냉철한 이성이 빛을 발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미지근한 우유처럼, 봄이 오는 골목의 햇살처럼 그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미지근한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 사람의 온도도 다른 것인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모두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드넓은 바다에 고래도 있고 상어도 있지만, 해파리도 있고 거북이도 사는 법인데,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그저 ‘보통 사람’의 부류에 속하고 싶어 애를 쓰며 보내는 시간이 나중에 과연 후회 없는 삶으로 기록될까. 잘 모르겠다.

작가는 재밌게 살다 가는 인생이 되고 싶다고 한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내 꿈이 호상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그래도 꽤 즐거운 삶이었다고 말하고 모두에게 축복과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다.

취향에는 옮고 그름이 없으며 좋고 나쁨도 없다. 마찬가지로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며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사는, 너무나 귀한 기회이다. 가끔은 숨을 쉬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도록 나만의 바람길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나도 뇌도 숨은 쉬어야 하니, 고래가 가끔은 해수면 위로 올라오듯 그렇게 숨을 쉬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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