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헌터
노은희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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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터에서 나는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성공한 사냥으로 인해 전리품들이 늘어갈수록 이 세상에 태어난 값을 하는 것 같아 행복을 느끼는 트로피 헌터.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쪽지 한 장을 ‘나’에게 건넨다. 생전 입 밖으로 낸 적 없던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을 단 한 번도 묻지 않는 아이였다. 가끔 고단한 인생을 홀로 끌어안은 채 어린 나를 꽉 안던 어머니는 생을 마감할 날이 다가오는 중에 연명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당신의 남편이자 나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

나는 냉철한 트로피 헌터다.
어느 날 기린을 사냥하던 순간을 떠올리는데, ‘짜증스럽다’고 표현한다. 아빠 기린은 위협을 느끼고 일부러 총을 맞는다. 놀란 새끼 기린은 도망가면서도 제 아비를 돌아보지만, 아빠 기린은 도망가라는 듯 구슬픈 소리를 내지른다. 나는 그것이 퍽 짜증이 난다. 한낱 짐승들에게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 싫은 것이다. 짐승답게 살고자 하는 본능에만 충실해야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빠 기린은 새끼 기린이 안전하게 도망가는지 확인하다 새끼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눈을 감는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돈을 쓸 곳이 없냐며 헌터들을 비난하지만, 나는 헌터들에 의해 마지막을 맞는 동물들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늙은 야생동물이 우리 헌터들에 의해,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사진에 그들의 마지막 족적을 남기는 것이므로. 또한 나는 그들의 무리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내게 손을 내밀어주고, 사냥 기술을 가르쳐 주고, 초원을 마구 달리며 총을 쏘는 행복을 준 사람들이다. 우리는 멋진 사냥 후 그것을 기념하고 귀중한 박제품을 나누며 의리를 다진다.

어색한 통화 후 다시 각자의 삶을 살던 누군가 어머니의 병실로 들어온다. 친부. 나는 자리를 비켜주고, 어머니는 친부 앞에서 죽음을 맞는다. 꿈같은 현실에 눈물도 나오지 않던 나는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친부의 손길에 눈물을 쏟는다. 네 어머니가 너를 내게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라는 말도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총에 수없이 죽어 나간 어미 또는 아비들을 생각한다. 어쩌면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이 총을 그만 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진부하지만, 나는 내 부모님의 빛나는 트로피가 아닌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를 빛나지 않는 트로피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트로피 헌터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 글 속의 나는 어쩌면 살기 위해 총을 든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해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으로 보아 작가의 필력이 굉장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자식이 부모의 트로피여야 한다거나, 부모 자식의 연으로 태어났으니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자녀의 마음 또한 쉽지가 않다. 계속 상처받으면서도 마냥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

인간의 내면을 분석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어 뒷이야기는 생략한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은 지 꽤 되었는데, 제대로 분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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