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김예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증인! 이 사진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p. 45)
“증인은 이 사건으로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는데 사진 속 증인의 모습은 아주 행복해 보이네요. 정말 이 사건으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 맞습니까?” (p. 46)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싶어 하는, 피고인의 변호인.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겠으나 존경의 시선으로 보기는 힘든 장면이다.

이전에는 법조인들을 멋지게만 생각했다면,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는 보는 눈이 넓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변호사들도 난감한 순간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변호해야 할 사람이 강력범 죄를 저지르고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대처하게 될 것인가.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는 상대 변호인을 존중할 수 있을까.

위 상황에서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사람이 저자 김예원 변호사다. 태어날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된 저자는 줄곧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했고, 현재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인 범죄 피해자만 지원하는 공익변호사가 되었다. 다행히 위 사건의 피고인은 검사의 구형보다도 높은 형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 이런 애가 어떻게 우리 학교를 다니나요?” (p. 227)
보호자도 척추가 꼬여 있어 앉을 수 없는 장애 아동도 모두 특수학교를 원했지만, 교육지원청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를 믿어주셔야죠. 이 아이는 일반 학교에서도 충분히 잘 따라갈 수 있어요.” 라고 확신하며, 아동을 일반 학교로 배정하였다. 그리고 등교 첫날, 해당 학교 교감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장애 아동이 입학하면 모두가 불편해진다.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학생에게는 당연히 그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담임교사가 하루 종일 옆에 있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보호자가 학교생활을 함께할 수 없으니 당연히 그 학급에서 교사가 부탁할 만한 혹은 학급 임원인 학생에게 장애 아동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하고, 이타적인 심성을 가진 학생이라도 누군가를 계속 케어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고, 교사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급에 장애 아동이 있으면 당연히 그 학생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나이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서로 상처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정신적인 고통까지 받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도움이 필요한 장애 아동 당사자가 아닐까.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나, 원하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편하게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상황이야말로 혼자만 느끼게 되는 지옥일 것이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질수록 사람들이 예민해지는 듯하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다고 하지만 여전히 하루에 1000명이 넘는 확진자의 수는 유지되고 있고,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고 날카롭다. 한국전쟁 직후의 삶과 비교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맞지만, 우리가 정말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에 걸맞은 문명인으로 살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생각나는 대로 뱉고 아차 싶은 마음에 후회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는 것은 나도 한참 멀었다는 증거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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