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를 위한 철학
오석종 지음 / 웨일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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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론자는 바람을 불평하고 낙관론자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길 기대하지만, 현실주의자는 바람에 맞게 돛을 조정한다.

멋진 말이다. 아마도 그 전제 조건은 인생이 너른 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일이라는 것에서 시작한 비유일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나는 바람이 불면 돛을 조정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앉아서 쉬는 것을 택하겠지. 아마도 예전의 나였다면 어디 한번 불어 보라는 마음으로 바람에 맞서서 버텼을 것 같다.

저자는 유통기한이 끝난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상식이라 칭하는 보편적 가치들은 앞선 시대 철학자들이 치열하게 통찰하고 사유한 결과를 담고 있어 대부분 신성하게 여겨지지만, 인류의 역사는 계속 변화를 거듭해왔고 특히나 요즘은 그 변화의 물결이 가속도까지 붙은 상황인데 그것을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요즘 보는 인문학, 철학 책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들이 있다. ‘지금, 여기’ 등 현실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생각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저자도 이 시대에 필요한 철학은 걸출한 철학자의 명언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만드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삶에서 마주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고민을 누군가는 철학이라 부른다. 나는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사유라 생각한다.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동굴에서 탈출해야 세계의 참모습을 볼 수 있으나, 빛에 비친 그림자에 몰두하느라 동굴을 탈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현실에 있는 모든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그림자일 뿐이다. 저자는 철학이 현대인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으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나치게 로맨틱하게 그려낸 것’을 지적한다. 인문학은 바쁜 현실을 살다가 집으로 돌아와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행을 다니는 멋진 인간으로 묘사한다고 비판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유쾌한 비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현실에서 벗어난 혼자만의 고군분투가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면, 그것이 진정한 철학이고 인문학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요즘 읽는 책에서 ‘지금, 여기’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꼭 실용성이 높아야만 우수한 학문은 아니지만, 현실을 벗어난 학문은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애정에서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흐름에 맞는 질문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철학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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