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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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나열하거나 머릿속에 뒤엉켜 있는 것들을 펼쳐놓듯 말하는 것을 의식의 흐름이라고 표현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는 표현. 메이 싱클레어는 문학계에서 최초로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비평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작품에 접목시킨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철학과 정신분석 그리고 초자연적 현상이 합쳐진 일곱 가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과하게 어렵거나 철학적인 문장은 없지만 읽다 보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딱히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는 기분이 들기도, 책 속 인물과 같이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기도. 잠깐 책을 내려놓으면 안개 자욱한 강가에서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존재만으로도 완벽하게 사랑스러웠던 올케 시슬리를 떠올리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동생 도널드는 다른 던바 가문 사람들처럼 너무 스코틀랜드인다워서 문제다. 체면을 중요하게 여겨 감정을 느끼더라도 표현하지 않거나 숨긴다. 과한 애정이나 감정 표현도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메말라버린 감정역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도널드의 아내이자 나의 올케 시슬리는 늘 애정을 갈구한다.


도널드의 별난 구석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나면 일부러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인의 특징이라고 하나 나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의 성향을 문제 삼을 수야 없겠지만 아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며 문제를 제기할 때에도 끝끝내 요구를 묵살하는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이 결혼한 첫해에 결국 시슬리의 건강 문제로 각방을 쓰게 되었고,도널드의 서재에 함께 있다고 싶다며 강하게 의견을 주장하던 시슬리의 모습은 마지막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 나의 눈에는 시슬리의 유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도널드 서재에 우두커니 앉아 여전히 무심한 남편의 모습을 한없이 바라본다. 점차 내가 그녀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 시슬리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 조용히 남편을 바라보고 그녀의 마음을 깨달은 나는 남동생이자 그녀의 남편인 도널드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토록 아끼던 문진을 왜 시슬리가 죽은 후부터는 서랍에 처박아버린 것인지, 시슬리를 사랑하기는 한 것인지.
일곱 가지 이야기 중 징표 의 줄거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령은 남을 해하거나 원한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물끄러미 앉아 고민하거나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모습으로 그 안에 살아있는 것뿐이다.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는 죽은 자의 모습에 대한 환상이나 바람일 것이다.


죽음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서로 다른 성향이 죽기 전날까지도 나를 아프게 했을지라도 자신의 사랑이 외로웠던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을 뿐인지 알고 싶어했을 시슬리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고. 말 그대로 기이한 그러나 한번쯤 공감하게 되기에 정말로 기이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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