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바람 선선한 오후에 읽고 여운이 오래 남던 책

유품 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작가 고지마 미유는 유품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아버지도 돌연사로 생을 마감하셨는데, 우연히 방문한 어머니가 병원으로 옮겨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유품 정리인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몇 년의 고민 끝에 자신이 그 일을 하게 된다. 떠나는 자의 마지막이 가벼울 수 있도록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마음의 덜 무거울 수 있도록.



그리고 미유는 시간이 멈춰 버린 그 방들을 미니어처로 제작하여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결심한다.고독사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전하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고. 그리하여 자신의 미니어처 혹은 이 책을 본 사람들이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현재까지 아홉 점의 미니어처를 제작했으며 이 책에는 여덟 점의 사진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져 있다.



일본 문화를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가끔 경이로울 정도로 자신의 일 혹은 취미에 전문가 이상의 소질과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곤 한다. 작가 미유도 그렇다. 미니어처라고 말하지 않으면 구분이 힘들 정도로 리얼한 고독사 현장을 보고 잠깐씩 생각이 멈추었다. 물론 혐오감을 줄 정도의 표현은 아니었고, 그마저도 조심스러웠는지 작가의 말에서 사실적인 미니어처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는 사람들은 조심히 보라며 세심하게 주의를 주긴 하지만 손이 멈칫한 것은 사실이다.



사건 현장을 취재하는 형사나 탐정들이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현장은 많은 것을 말한다며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고독사 미니어처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생에 미련이 없어 깨끗하게 정리한 방, 떠나면서도 민폐를 끼치기 싫어 사후 모습까지 신경 쓰고 철저히 준비한 방, 말 그대로 고독하게 살다 자신도 모르게 떠나느라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방, 세상과 담을 쌓은 시간이 쓰레기더미에 쌓여 있는 방 그리고 남겨진 반려동물 이야기.


안타까운 사연도 많지만, 경악하게 만드는 유족 혹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닌가 보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듯 일본에도 냉정하고 민망한 사연을 가진 유족이 많다고 한다.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유품을 탐내는 파렴치한 사람도 꽤 많고.


작가의 의도는 대성공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고 인생에 대해 그리고 고독사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떠난 뒤의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생이란, 허무함과 냉소적인 생각이 나의 머릿속 대부분을 차지하려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하며 본연의 마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요즘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누군가의 삶에 관여할 자격은 없겠지만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고독사도 돌연사도 그리고 자살도 제발 줄어들기를.


잠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 그리고 미니어처를 만드는 이의 이야기였다.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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