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 이따금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을 위한 마음의 구급상자
이두형 지음 / 심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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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두형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정신과 의사로 산다고 해서 감정이 무뎌지는 것도,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는 솔직한 머리말에 왠지 공감이 되면서,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도 물은 적은 없지만, 서평을 쓸 때 책의 목차를 넣는 이유는 그 책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소제목들이기 때문이다. 가끔 서평이 길어 내용이 다 안 들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지우지만, 내가 읽은 책을 다시 볼 때도 키워드가 된다.

1. 마음의 연고, 감정이 다쳤을 때
2. 마음의 반창고,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3. 마음의 해열제, 가슴에서 자꾸 열이 날 때
4. 마음의 붕대, 부러지고 꺾인 마음이 버거울 때
5. 마음의 소독약, 노력할수록 삶이 더 불행해지는 것 같을 때
6. 마음의 비타민, 살아가는 맛을 유지하고 싶을 때


정신과 전문의가 쓴 심리학책이니 전문성에 대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고, 제목들이 참 감성적이다. 그 중 제목만 보고 심장이 울컥한 것들을 적어 보자면
'완벽하지 못할까 봐 시작조차 못하는 마음', '삶이 전부 잘못된 것 같을 때' , '원하는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면', '억지로 좋게 보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기' 등이다. 각 장마다 삶에서 마주하는 사례들이 있고, 그에 대한 의사의 조언이 이어진다.


책은 각각의 매력을 가진 훌륭한 선생님이라 생각하지만, 문학과 심리학책들을 좋아한다. 특히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책은 다소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내용을 다뤄서 좋다.
각 장마다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불안과 걱정에는 마음의 연고를, 휴식이 필요한 마음에는 반창고를, 뜨겁고 차가운 마음에는 해열제를,의지와 열정이 꺾인 마음에는 붕대를, 고통과 포기에 익숙한 마음에는 소독약을,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에는 비타민을 주고 싶은 정신과 의사의 마음이었으려나.

이미 긴 시간 혼자 고군분투하며 건너왔지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제목은 <삶이 전부 잘못된 것 같을 때>였다. 마음을 읽힌 것 같아 조심스럽게 읽었다.

신체는 어떠한 행복도, 그리고 불행도 영원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의 쾌감도 첫 한입이 지나면 점차 무뎌진다. 경제적으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신경 생리적으로는 불응기로 표현된다. 아무리 큰 슬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받아들여진다. 이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다. 그런데 유독 슬픔만은 그 원리에서 벗어난 듯한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고 더욱 아파지는 느낌 (p. 184)

사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다만 그게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뿐. 나도 혼자 이것저것 해 보다가 결국 포기하듯 선택한 것이 의외로 좋은 방법이었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었다. 억지로 미화시키지도 말고, 자꾸 괜찮아지려고 발악하면서 내 손으로 내 속을 더 긁지도 말고, 딱 그대로 보는 것.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냥 현실이 이렇다고 인정하는 것. 서서히 그것을 연습하면서부터 과한 걱정이나 불안들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물론 긴 시간 온몸으로 해왔던 노력들의 결과였겠지만.

저자는 상처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처에 딱지가 생기면 그 속에 새 살이 차오르는 시간이 필요하니 긁지 말고, 새살의 감촉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쓰이는 ‘내려놓다’라는 말에 대해 그 진짜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말이 참 좋다. 억압 아닌 억압을 하고 싶을 때, 남에게 조언하듯 주문하는 말 같아서 거부감이 드는 단어였는데, 그것을 짚어주었다. 저자는 끓어오르는 찌개 뚜껑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주는 마음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무언가를 빨리 끝내고 싶거나, 혹은 원하는 기준에 맞추고 싶을 때 스스로를 옥죄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이 진정한 내려놓음이 아닐까.


좋은 문장도 물론 많았으나 책에 대한 생각이 길어서 생략한다.

마지막에 '지금을 음미하는 연습을 하며 조그만 기쁨을 누려보기'를 제안하는 저자의 말에 웃었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원고를 마무리하고 넘겼으니까 ㅎㅎ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정신과 의사의 휴대용 구급상자 혹은 작은 정성들을 눌러 담은 여행용 약상자 같은 책이라 음미하며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이두형 선생님.

선생님도 행복하시면 좋겠다.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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