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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샤흐 -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데이미언 설스 지음, 김정아 옮김 / 갈마바람 / 2020년 7월
평점 :
2008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로르샤흐 검사 같은 사람입니다. 끝내는 저에게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볼지라도, 국민들은 무언가를 얻을 겁니다.” 국민에게 공화당 편인가, 민주당 편인가라는 꼬리표를 다는 대신, 오바마는 자신을 로르샤흐에 빗댐으로써 자신을 협력-치유하는 사람, 즉 사람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용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가를 필요는 없다. 로르샤흐 검사는 분명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미국 국민을 하나로 묶은 정도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로르샤흐라는 비유는 구분에서 통합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554p)
대통령 후보가 자신이 심리 검사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다니, 언뜻 이해가 안갔으나 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왜 그가 이런 존재이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는 겉으로만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들의 곁에서 마음을 이해하고 나아가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을 지내면서 그가 이야기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사실 로르샤흐라는 이름 자체는 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했으나, 그의 잉크 얼룩을 보자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유년시절 미술 시간에 진행했던 데칼코마니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대개 로르샤흐 검사라는 이름보다는 이 잉크 얼룩이 더 친숙할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신과 의사였던 그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 그리고 천재성에 절로 박수를 치게 되었고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특히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본다’에서는 대상자를 평가하거나 제약 없이 보는 방식을 살펴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보느냐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느냐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직관과 미술적 재능, 시행착오, 대칭의 힘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체계적이면서도 유연한 그림 한 벌을 만들어냈다.
내향인 사람은 외향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거듭 마주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나와 유형이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291p,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자신의 심리)
처음에는 융의 <심리 유형>이 순전히 추측에 근거한 구성이라고 여겼네. 하지만 결국 잉크 얼룩 실험 결과로부터 융이 주장한 심리 유형을 도출해보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네. 융의 주장에 맞서는 과정에서 내가 내 심리 유형 때문에 생가보다 실제로 훨씬 더 많이 편견에 치우쳤었다는 걸 깨달았네. (290p,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자신의 심리)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볼 수 있다. 1장은 젊은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의 일대기, 2장은 로르샤흐 검사에 대한 상세한 소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르샤흐 죽음 이후의 에피소드와 인간의 심리에 대한 탐구이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범인에게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심리적인 파장을 느끼고 자신에 대해서 고민할 기회를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소 부담스러운 671p두께에 처음에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저자와 번역가의 멋진 실력으로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다는 사실도 전한다.
내향인 사람은 외향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거듭 마주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나와 유형이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 P291
처음에는 융의 <심리 유형>이 순전히 추측에 근거한 구성이라고 여겼네. 하지만 결국 잉크 얼룩 실험 결과로부터 융이 주장한 심리 유형을 도출해보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네. 융의 주장에 맞서는 과정에서 내가 내 심리 유형 때문에 생가보다 실제로 훨씬 더 많이 편견에 치우쳤었다는 걸 깨달았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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