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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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130년 태양계에 거주하는 인간들에게 잠시 소행성으로 착각되었으나, 사실은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운반선인 라마호와 노턴 선장일행의 탐험에 대해 서술한다. 도입 부분은 구조물의 형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아 유튜브 등의 동영상을 보고 도움을 받아보려 하였으나, 책이 발간되었을 때의 독자의 눈으로 읽는게 좋을 것 같아 텍스트만으로 선장의 시선을 쫓아가며 모양을 가늠해 보았다.


이 정체불명의 carrier인 라마호에 대해, 행성궤도, 중력, 빛, 유기물 스프에 의한 생명 탄생, 기계식 외계생명체 등의 과학적 탐색이 적용되었고, 사회적으로는 행성단위의 연합체와 일부이처제 같은 개념이 소개되었다, 최근 인간들도 사이보그화 되고 있으므로, 우리가 만약 먼훗날 외계 지적생명체를 만난다면 그들은 자연진화에 의한 생물학적 몸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보강된 생명체일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1970년대 유명 SF작가도 이를 이야기하니 반가왔다. 그리고 몸이 잘려서 원시생명의 발생지인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기계생명체 부분을 읽으며,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의 운명도 언젠가는 지구에서 그와 같이 되리라는 음울한 상상도 해보았다.​


느슨한 행성연합이 운영되는 사회에서, 그래도 아직 커다란 조직인 지구사회는 어떻게 하나로 지배되는지 한눈팔이로 궁금했고, 불확실 덩어리인 라마호를 인데버호가 탐색하는 장면들이 전 행성에 거주하는 인간들에게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것을 보며, 이 시기는 정보의 민주화가 참으로 과하게 넘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약간 기웃거렸다. 그리고 어쩌면 생존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라마호에 대해 수성에 사는 헤르미안인들의 미사일 폭파 결정이 일견 타당해도 보였다. 내가 수성의 대표자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마지막으로, 노턴 선장이 태양에서 에너지를 충전받아 다시 멀리 항해를 떠나는 라마호를 보며 왜 그리 아쉬워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같은 방랑자로서의 공감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태평양과 남극권 등 드넓은 지구의 바다를 항해하다 죽음을 맞이한 제임스 쿡 선장, 두 행성에 가족을 두고 태양계 구석구석을 이동하는 노턴 선장, 그리고 그 이전부터 수백만년 동안 우주를 떠다니는 라마호의 밝혀지지 않은 선장. 이들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세 명의 방랑자들이다. 


지금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라마호에 대한 노턴 선장의 아쉬움과 부러움은, 과거에 떠나간 쿡 선장을 향한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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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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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들은 우주여행, 뇌과학, 냉동수면, 외계지적생명체, 사이보그 등의 미래과학적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야기는 기계적이거나 공상적이지 않았다. 대신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늘상 그렇듯이 실수를 하고 때론 비합리적이고 안타깝게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소설 속 재료는 미래이고 저기인데, 스토리는 현재이고 여기 주변이다.


소설은 크게 우주, 지구, 인간 그리고 뇌로 경계 지워지며, 소설의 시선은 그 경계 너머를 향한다.

[순례자들은...]과 [스펙트럼]은 우주에서 지구로 시선을 던지는 소설이다. [순례자들은...]은 외계행성의 마을에서 순례를 다녀오는 지역인 지구를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지구는 비개조인과 개조인으로 분리되어 지내는 갈등의 지역이다. 그래서 릴리는 그 대안으로 외계 마을을 만들고 여기서는 같은 자궁 기계에서 태어나 서로 사랑에 빠지지는 않지만 모두들 자매처럼 평화롭게 지낸다. 그런데도 마을에서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소설은 다시 지구를 눈여겨본다. 올리브도 마을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간다. 그들은 지구에서 다른 존재와 사랑하고 함께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는 삶을 선택한다.


[스펙트럼]에서 희진은 우주에서 다른 행성으로 조난당하고, 그 곳에서 지적생명체를 만난다. 그들은 지구의 언어와는 달리 그림으로 소통하고 단단한 피부와 억센 힘을 가지고 있어 평범한 접촉도 희진을 멍들게 한다. 비록 평균 수명이 5년이 안되지만,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몸을 바꾸어 이어져 내려온다고 믿는다. 처음 희진이 스스로 몸을 드러내어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들은 낯선 존재를 죽이지 않고 보호한다. 희진도 지구로 귀환한 후 자신이 허언자로 몰리더라도 그들에 관한 정보를 지구인들에게 밝히지 않고 보호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에서 홀로 남겨진 주인공 안나의 시선은 지구 정거장에서 우주 머나먼 곳에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를 바라본다.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곳, 자신이 따라가기로 약속했으나 가지 못한 곳. 아무리 냉동수면으로 수명을 연장하며 기다려도 수년이나 걸리는 그 머나먼 우주 지점으로 가는 교통편은 이제 더이상 없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커다란 우주에서 같은 우주에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떠나지 못하고 남겨지는데. 그녀는 머나먼 슬렌포니아를 향해 초라한 우주선을 출발시킨다.


[공생가설]과 [관내분실]의 시선은 인간 개체에서 인간 몸의 일부인 뇌를 향한다. 우주에 수십조개의 항성이 있듯이, 인간은 수십조개의 세포로 구성된다. 한 인간의 몸은 우주이고, 세포는 하나의 항성이다. 어떻게 인류는 다른 포유류보다 뇌가 더 많이 발달하게 되었을까? [공생가설]에서 작가는 외계생명체가 어린 아기의 뇌에 들어가 인간의 선한 의지를 발달시켰다는 설정을 한다. 너무 황당한 설정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까 싶어서인지, 신체 안의 미토콘도리아도 별도의 DNA를 가지고 수십억년 동안 인간의 다른 세포들과 공생하지 않느냐고 한다.

[관내분실]에서는 죽은 사람의 뇌 속 시냅스 패턴체계를 스캔하여 그 사람의 마인드를 저장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뇌 속 기억이 과연 진짜 그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마인드 업로딩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지민은 분실된 엄마 김은하의 마인드 인덱스를 찾다가 몰랐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다. 엄마는 이미 죽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지민은 업로딩된 마인드를 만나 이제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드라마 같다.

[감정의 물성]에서는 뇌 속 마인드 저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도 물질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설정한다. 사람들이 비극적인 영화나 공포영화도 자기 돈을 내고 보듯이, 감정이 물성화되면 기쁘고 사랑스러운 감정은 물론 우울하고 무서운 감정도 구매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체처럼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짓눌리듯이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겪느니, 차라리 감정물질을 손 위에 올려놓고 통제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위 세 개의 소설은 인간의 선한 의지, 기억, 감정이 외부개체화되어 다루어지는 날이오면, 한 인간의 정체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질문도 숙제로 남긴다.


김초엽의 소설들은 대체로 '왜 그러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아 그렇구나 공감돼'의 결말로 끝을 맺는다. 할머니 안나가 도저히 슬렌포니아에는 도착할 수 없는 소형 우주선을 타고 정거장을 떠나도,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의 물질을 구매해도, 임신 후 세계와 분리된 엄마 김은하는 왜 딸에게 집착했는지도, minority인 재경 이모가 우주선에 탑승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든 이유도, 자기를 아름다운 생물로 바라봐 준 루이의 행성에 대해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희진도, 차별적 지역인 지구로 다시 돌아간 올리브도, 소설들은 '난 이제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각 단편들을 읽고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 책이 많은 대중들에게 읽힌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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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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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유진은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주교 선교사를 만나 교육을 받고 이후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여 명예와 부를 두루 갖춘 유력가가 된다. 이른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이러한 그에게 천주교와 영어, 서양인은 롤 모델이고 삶의 지향점이 된다. 그는 독재에 저항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하는 사회적 인물이며, 자식들의 엄격한 훈육과 종교적 신앙을 가정에서도 지휘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식을 더 갖기 위해 당시 사회적으로는 용인되었던 첩을 두지 않는다. 질서와 금욕을 숭상한다. 편부가정이나 장애 군인 등에게 익명으로 기부한 사실들도 죽은 후에나 알려진다. 그는 이러한 종교적 삶이 그를 성장시키고 보호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정도 이래야한다고 철저히 믿는다. 가족이 이를 어기면, 그는 육체적 체벌을 가한다. 그리고 그도 운다. 중세의 수련자들이 종교적 금욕을 위해 자신의 몸을 자학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는 아내와 자식이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결국 그는 아들에 의해 저항을 받게 되고, 아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파파은누크는 그와의 화해없이 세상을 뜨고, 여동생 이페오마는 미국으로 떠난다. 그가 민주적인 나라로 보호하려고 했던 국가는 가장 친한 동료인 편집자를 죽였고 국가의 독재는 그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아들은 감옥으로, 어머니는 이로 인한 죄의식으로 빠지게 되며, 그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가정도 침몰하게 된다. 참으로 씁쓸한 인생이다. 그의 삶은 책의 첫 머리에 그가 말했듯이 되었다. "먼지는 먼지로 돌아가리라"


아들 자자는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지키려 한다. 아버지의 폭정으로부터 여동생 캄빌리를 지키기 위해, 그는 여동생이 한 일들을 항상 본인이 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아버지의 음식에 쥐약을 넣었다고도 한다. 감옥에 가서도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보살핌을 뿌리친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데, 그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다가 곧 석방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제 가족은 다시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동안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왔던 어머니를 챙기며 "두건을 제대로 안 묶으셨네요"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다급하게 두건을 풀었다가 다시 꽉 묶는다. 그는 이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다.


딸 캄빌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가 그 말을 먼저 했었어야 하는데" 라고 아쉬워하는 여성이 더 이상 아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고, 그 질서를 숭배했던 캄빌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를 대신해 세상의 문제를 직접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투옥되어 있는 오빠를 챙기기 위해 그녀는 변호사와 간수들에게 뇌물을 줄지도 안다. 물론 아직도 꿈에서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하지만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아마디 신부가 자리한다. 그래서 그는 자자가 곧 집에 돌아올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아마다 신부)가 그렇게 말했고, 그의 말이 참이기 때문이다" 변화된 캄빌리는 선교 신부회에 수표를 쓰며 이게 뇌물인지 아닌지, 그리고 새로운 성당으로 왜 옮기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수표를 쓰고 새로운 성당을 다닌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성숙해진 캄빌리는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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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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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인 문주는,

자신이 왜 철로에 버려졌고 다시 또 해외로 입양되었는지, 그 이전에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태어나고 어머니는 누구인지를

모른다. 자식을 버린 무책임한 어머니, 그럴거면 왜 자기를 낳았는지 용서가 안된다. 암흑이다.


이 후 독립영화 제작참여를 이유로 한국으로 잠시 돌아와 자신의 과거를 다시 찾아보려는 문주에게, 박복희를 벨기에로 입양시킨 추연희의 인생이 포개진다. 박복희가 입양되었던 사연, 연희가 복희에게 보낸 많은 편지를 알게 된다. 문주의 암흑같은 과거의 인생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철로에서 문주를 구해준 정우식의 어머니 박복자를 통해, 문주가 철로에 버려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철로가 대합실로 바뀌며, 문주의 삶은 더 많은 빛으로 채워진다. 박복희가 다녀간 후에 죽은 연희에게 문주는 조등의 노란 빛을 비춘다.


부재는 있던 것의 없음이지만, 비존재는 원래부터 없는 것이다. 문주의 망각은 기억의 부재이다. 부재는 타인의 스쳐가는 삶을 통해서라도 밝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름없는 노파의 지워버린 11명의 태아는 비존재다. 밝아질래야 밝아질 존재 조차가 없는 암흑. 그래서 문주는 존재, 삶, 생명을 선택한다. 문주는 뱃 속 아기 우주를 낳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누군지도 모를 생모에게 진심의 편지를 쓴다. 이제 문주라는 이름의 의미도, 왜 어머니는 자기를 버렸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이 망각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플롯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해외 입양아가 생모를 원망하다가 이해하게 되는 해피엔딩의 스토리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떠오르게 한다. 훈훈하고 잔잔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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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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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 만난 친구를 그 때 그 친구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주장이 있다. 몸은 성장하거나 늙으니 세월이 지난 육체를 보고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을테고, 사람의 생각은 살아가며 변하기 따름이니 이른바 정신이라는 것도 그 기준은 아닌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도 하지만 뇌는 망각하고 자주 착각한다는 것, 아니면 기억상실증이 걸린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냐 등의 질문을 받고.


작가는 책에서 '현재가 기억하는 나' 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품위있는 삶, 110세 보험'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나윤승이 그러하고, '어제의 일들'에서 자살 휴유증으로 과거를 잘 기억 못하는 상현도 자신이 가진 현재의 기억 그리고 망각한 과거가 바로 그녀이다. '지옥의 형태''에서 2015년에 이미 죽은 율희의 고통스러운 기억 추적이, 그리고 '꾸꾸루 삼촌'에서 뮤지션인 철완의 망령에서 저자는 '현재 기억의 나'는 심지어 삶과 죽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은 더 이상 경계가 아니다, 인물의 현재적 시점이 내 소설의 세계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책 내용은 우울했지만, 페이지를 넘기기에 힘들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우선 작가의 문장력이 좋아서 일테고, 게다가 모든 과거의 시간이 현재로 소환하여 겹쳐져 기술하는 플롯의 다이나믹한 구성 덕분이기도 할테다. 글은 어두었지만 깔끔했다. 화창한 회색빛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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