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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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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편집자에 대해 가볍게 스쳐보려고 구매하였는데, 주의깊게 읽어나간 책이 되었다. 책 내용이 편집자의 생활과 이에 얽힌 이야기라는 수필류의 글에서 멈추지 않고, 저자가 일을 해가며 만난 작가들과 읽은 책들에 대한 지도로 채워져서 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자의 책 지도에 나의 조그만 지도가 겹치는 교차로를 발견할 때는 혼자 즐거워도 했고. 책을 읽어나가며 몸은 점점 더 앞으로 구부려져 갔다. 그렇게하면 편집자가 오랜시간 스며들도록 열어두어 받아들인(p36) 작가들의 지식과 삶의 영향이 1차 필터되어 독자인 나에게 좀 더 잘 전달될까 해서일까? 역시 독서의 좋은 점은 작가가 오랜시간 동안에 걸쳐서 얻은 경험을 짧은 시간에 값싸게 도둑질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중심으로 자신의 바라봄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가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한 때 막역한 사이였던 작가들과의 관계 변화, 나이들어가는 주위의 편집자들과 그들의 사라져감을 바라보는 아스라함, 한 명의 독자로서 자신이 읽어왔던 책들의 변화 궤도. 이러한 변화들은 아쉬움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저자는 변화들을 다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다음과 같은 좋은 인용구와 함께. [완벽한 세계를 향한 절대주의적 분노보다는 유머와 유연함을 가지고 부조리하면서 추악한 인간 존재의 운명을 파악, 수용해야 한다 (p35)}. 학자가 아니라 출판시장의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단련된 모습이다. 그래도 저자에게 변하지 않는 건, 책에 대한 신념이다.

젊은 시절 이문열과 박완서를 읽지 못했던 걸 후회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독서의 유용성이란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읽기보다 오히려 자기 취향과 욕구를 억누르고 작가의 대표작으로 직진해서 들어갈 때 더 크게 발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p179)]

그리고 전성기 시절 명성을 얻은 작가가 노년이 되어가며 바람직하지 않게 무너질 때, 과연 그 작가의 책을 읽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작가의 삶과 사유가 절정에 달했을 때 작품을 놓치지 않는게 나아 보인다 (p180)]라는 의견을 낸다. 같은 생각이다. 물이 드넓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큰 파도로 일렁이며 거대한 하얀 포말을 일으킨 다음, 멋진 빠리의 센 강으로 흘러내려 가기도 하지만, 어떤 물은 때로는 도시 외곽에 있는 시궁창의 구정물로 떠내려 가 더럽게 고이기도 한다. 마지막은 더 이상 그 전과 같은 순수한 H2O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한 때 전성기 시절 그 물의 거대한 파도와 일렁거림을 어찌 아름답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위대한 가수 심수봉의 노래 '그 때 그 사람'은 한 명이면 족해도,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때 그 시절의 책'은 아무래도 여러 개 일수록 좋다.

직업인으로서 자신이 편집한 책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도자료를 쓰지 못한 적도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다른 이들이 종종 하듯이 자신도 작가의 글에 대해 뭉툭한 색연필 대신 날카로운 펜으로 쓰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과거의 작가들에 대해 과대평가 된 것 아니냐고 솔직히 이야기를 한 이들의 인용구를 적어 준다. 그 중 셰익스피어, 혜밍웨이를 예시로 든 니컬슨 베이커와 도나 다트가 나오길래, 나는 두 명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그들의 컴퓨터 화면 위 얼굴을 매섭게 째려보았다. 왜냐하면 최근 셰익스피어의 멋진 문구들을 보며 키득거렸고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뜬다>를 근사하게 읽었으니까 ㅎ ㅎ.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은 2차 저작물만 읽다가 아무래도 본서를 읽어야할 것 같아 최근에 구입했지만 아직 안 읽어봐서 탕누어도 화면에서 째려볼지 아니면 머리를 끄덕일지는 책을 읽은 후 결정해야겠다.

작가는 이 책에서 저자-편집자-독자의 1인3역에 더하여 글항아리 출판사의 마케터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저자의 독서지도를 보다가 프리모 레비 외 몇권의 책들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그 중 4권이 글항아리에서 출판한 책이었으니까.

<쇼와 육군>,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네 번째 원고>,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이렇게.

(<읽는 직업>의 표지사진을 찍은 김춘호 작가는 회사 업무로 몇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강진...>의 책 사진도 찍었길래 겸사겸사 구입했다.>.

이로써 기존에 가지고 있는 3권과 함께 글항아리 책은 총 7권이 되었다. 그 중 절반은 양장판인 두꺼운 책들이고 호킹지수는 아직 30%에 미치지 못한다.

글 내용은 좋으나 편집자로서 출판결정을 하지 않는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일까. 1000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p27)]. 내가 산 이 책을 보니 2020년 9월 25일에 1쇄 후 같은 해 10월 5일에 인쇄한 2쇄이니, <읽는 직업>은 1000명 이상의 독자는 무난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축하드린다! 책의 마지막을 '책, 얼마나 사고 얼마나 읽어야 할까'라는 글로 맺었는데, 거기서 드디어 나와 저자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한달에 30만원 정도를 책 구입에 쓰고, 그 중 반의반의 반도 안 읽은 것.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많다.

좋은 글솜씨로 쓰여진 책이라,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으며 시간이 지나갔다. 질서, 밀도, 짜임새, 연결되는 상상력. 문장을 읽어나가며 문득 이러한 추측이 들었다. 이은혜 작가는 혹시 한나 아렌트와 같은 글쓰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 책을 꼼꼼이 읽어 보시라. 추측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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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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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는 건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다. 우선 다루는 주제의 스케일이 크고, 과학적이었으며 박식했다. 그리고 세상의 일들을 바라볼 때, 그 안에 빠져 들어가 이슈를 세세히 분석하는 대신, 거기서 반 걸음쯤 벗어나 관조적인 시선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읽고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 낯설게 다시 바라보기를 하듯이 (think outside the box!). 유발 하라리는 나이가 들어도 절대 꼰대는 되지 않을 듯 싶다.


이번 책 [21세기 ... 제언]에서 저자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주요 이슈들에 대해 명료한 결론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독자들에게 각 이슈들의 상황, 문제, 질문 그리고 자신의 이해를 나열한다. 그럼 그에 대한 해답은? 그건 독자들의 몫이라고 한다

  [(이 책은) 교훈의 선집이라고 하겠다. 교훈이라고 해서 단순명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독자 스스로 더 생각해 보도록 자극하고, 우리 시대의 주요 대화 중 일부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p 10)]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전작 두 편이 거대 규모의 역사서와 미래서라면, 이번 책은 21개의 에세이 모음집과 같았다. 에세이는 원래 명료하지 않다.


하지만 주제의 스케일은 전작들과 같이, 지역은 전지구적이고, 범위는 인간을 뛰어 넘는다. 여전히 double grand scale이다.

우선 저자는 현재를 바야흐로 옛 이야기는 붕괴했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 이야기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혼돈의 시대라고 본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인간 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가해질 수 있는 혁명적 기술적 변화가 우리에게 커다란 과제로 던져진 시기라고 한다.

  [시장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정복하도록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역사는 예상 밖의 선회를 했고,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지금 자유주의는 곤경에 처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 질문이 특히 통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이 지금껏 인류가 맞닥뜨려온 최대 과제를 던지는 시점에서 자유주의가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p 12-13)]

자유주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다시 세상 곳곳에 장벽을 쳤고, 소수에 집중된 디지털 권력으로 사람들은 조만간 사회로부터 '무관 (irrelevance)'해 질지도 모를 상황이다. 즉 '우리 종(사피엔스)인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완전히 다른 극이 시작되는 (p15)' 시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 인식 위에서 저자는 우리가 지내온 익숙한 과거를 낯설게 다시 보는 그의 특기를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의미있고 실체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 인간이 만들어 낸 창작물이거나 상상적 산물에 불과하게 된다. 미국 달러, 성경, 기적과 천사, 귀신과 마녀, 종교, 국가 등등이 그러하다. 어떤 것이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면 실체가 아니라 상상이라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상상적 가치에 대한 집착이나 사회적 강요가 초래한 폐혜는 역사적으로 셀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규모로 협력하는 인간의 능력, 개개인이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 AI를 개발하는데 투자하는만큼 인간의 의식을 증진하는데 투자를 하는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 우주에 대해 이미 다 만들어진 이야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 관한 ...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우주가 내게 의미를 주는게 아니다. '내'가 우주에 의미를 준다 (p 451)'라고 강조한다


Box 바깥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심지어 우리가 그동안 지켜온 절대가치인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한다.

  [인권의 도그마는 이전 세기 동안 앙시앵 레짐, 나치, KKK에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초인간, 사이보그, 초지능 컴퓨터를 다루기에는 맞지 않다. (p319)]

확실히 이전 책들에 비해, 저자의 주관과 개인적 경험을 더욱 대담하게 드러낸 책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마지막 21번째 제언에 '명상'편을 넣었다.


이 책의 아래 인용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흥미로운 생각 하나는, 20세기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패배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가 근미래에는 어쩌면 새로운 기술혁명을 이용해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편 기본 소득 대신 보편 기본 서비스를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교통 같은 서비스를 보조...이것은 사실상 공산주의가 그리던 유토피아의 청사진이다. 노동계급 혁명을 하려던 공산주의 계획은 시대착오가 됐을지언정,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p 72)]

  [실제로 AI가 중앙집중 시스템을 분산 시스템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세기에는 권위주의 정권의 주요 약점이었던 것 -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중하려 했던 시도 - 이 21세기에는 결정적인 이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p 488)]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주도한 20세기의 공산당은 중앙조직의 비효율화와 관료화로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실패했지만, 21, 22세기에는 최근의 IT와 AI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중앙시스템으로 소득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가 재차 시도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도 주체가 더는 정치적 체제인 공산당은 아니고 이제는 AI 알고리즘이나 다른 IT 시스템이겠지만. 어쩌면 칼 맑스는 자신이 150년만 더 늦게 태어날 걸 하고 억울해 할지도. 해서 반대로, 다시 태어난 그는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에게 구호를 외치는 대신 '알고리즘으로부터 무관해진 인간들'에게 더 이상 소외당하지 말고 다같이 봉기하자고 외칠 수도 있을테다. 계급해방론자에서 인간해방론자로 변신한 맑스. 최근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기본 소득 이슈로 1세기 전의 칼 폴라니도 소환된 마당이라, 칼 맑스도 굳이 연상안될 일이 없어 한번 가볍게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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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급진 - 중국의 현대를 성찰하다 현대중국의 중국의 사상과 이론 1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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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원태쥔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무서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해 온 중국 내에서, 이제는 대외개방과 글로벌화보다는 농촌 안으로 가야할 때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즉, 그는 중국 내 주류 계열에서 옆으로 한발 벗어난 비주류 경제학자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문제는 수십년 간 중국 중앙의 1호문건이었고, 저자는 직접 농촌으로 들어가 대안농업 등을 시도하였기에, 농촌이나 식량문제가 이슈로 거론될 때마다 언론의 관심을 받아온 스타 학자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Pros는 농촌, 중국적, 가족농, 자립, 계획 등이며

Cons는 개방, 친자본, 금융, 종속, 부채, 서구식, 글로벌화 와 같은 것이다.

저자의 비용전가론에 의하면, 모든 초기 발전에는 자본의 집중이 필요하고, 발전이 계속되면 자본의 과잉이 일어나는데, 서구의 경우에는 이 비용을 외부 식민지를 통해 해결했고,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다른 거대 개발대상국들은 잉여 농민이 도시빈민화가 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으나, 중국의 발전은 거대한 농업과 농민의 희생이 이러한 비용을 흡수(모순의 내부화)함으로써 성공적인 개발이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자본의 과잉이 초래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를 농촌의 개발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촌의 개발은 토지의 사유화와 거대 농업화와 같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서구식 농업이 아니라, 가족이 중심이 된 향촌규모의 전통적 농업 개발과 생태 농업이 중국에 적합하다고 말한다(성진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의 21세기 농업방향에 대한 의견인데, 참 독특하다.

너무 독특해 이해 안되는 부분도 여럿 있다. 가령 1950-60년대 수천만명의 죽음이 발생한 대약진 운동은 비판받는 정책으로 생각해 왔으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소련의 지원 중단으로 불가피하게 시행된 상부구조로 이것의 성공여부는 따로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p46). 심지어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시대를,

"비록 수천수만의 농민들이 국가 공업화를 위한 자본 축적의 단계에서 희생되었지만, 중국은 결국 최단시간 내에 이 단계를 뛰어넘었고,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공업의 토대를 형성했다..... 이 특수한 역사적 단계가 바로 '마오쩌둥의 시대'이다. 또는 모든 사람들이 헌신해서 천하를 공평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영웅시대'하고 일컫기도 한다" (p230)라고까지 말한다

앞으로 중국에서 농업의 발전을 통해 생태영농 등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정도의 주장이라면 저자의 논지에 어찌 이의가 있을까마는, 중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개방, 금융, 글로벌화 대신 향촌 경제 중심의 개발로 가야한다는 하나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책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서 선뜻 와닿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다. 중국은 전체 유럽을 다 합친 것만큼 큰 나라이니, 유럽에서 공업국가 독일과 농업국가 덴마크가 공존하듯이, 글로벌화와 개방을 통해 성장한 동쪽 도시의 개발과, 동쪽의 잉여를 이용한 서쪽의 향촌 개발이 양방향으로 지속공존할 수 있는게 중국일 것이라고 믿어보는 나였기에 더욱 더 그러했다. 농민 비중이 80%가 넘는 시기에 농민을 중심으로 중국은 공산혁명을 일으켰고 지금은 40%를 밑돈다. 따라서 생산에서 10%를 차지하는 농업과 40%의 인구를 구성하는 농민의 비중을 이제부터 어떻게 프로답게 다루어 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아직도 농민 비중이 50% 이상인 인도나 베트남도 마찬가지로 살펴볼 주제이고. 참고로 40년 전 우리나라의 농민은 1,400만명으로 인구의 절반에 육박했는데, 지금은 25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5% 정도이다.

지난 번에 읽은 덩샤오핑 평전과 비교해볼 때

덩샤오핑의 사회주의는 글로벌 개방을 통한 시장개발에 방점을 찍은 '중국적 개방경제론자'였다면

원톄쥔의 사회주의는 자족경제식 향촌개발을 주장하는 '중국적 농촌경제론자'로 보인다.

흥미로운 관점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WTO에 가입하는 등 세계경제에 급격히 편입된 이후의 일들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다. 중국 내 농촌론자인 저자는 이를 기생적인 세계금융의 폐혜, 도농격차 등으로 중국에는 부정적인 위기로 보는 반면, 네오콘 등 미국의 반중 정서를 지닌 정치그룹들은 미국 내 온건파들이 중국을 세계경제에 편입시키는 실수를 함으로써 중국이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 되도록 방치했다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두고 내외부에서 자국 중심으로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두 개의 질투어린 우려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종종 자기 울타리 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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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평전 - 현대 중국의 건설자
에즈라 보걸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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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나라를 세웠고, 덩샤오핑은 인민을 잘 살게했다. 사회가 거대해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 세상에, 점점 복잡해지는 거대조직을 프로답게 경영하는 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즉, 건국보다 치세가, 창업자보다 CEO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더군다나 근현대사의 가장 큰 조직인 국가에 대한 경영이라면, 그것도 인구 10억이 넘는 국가인 중국이라면. 이런 관점에서 책을 읽어 보았다.


책을 읽고난 후 생각해 본 건, 덩샤오핑은 어떻게 이런 지난하고 복잡한 일들을 풀어나갔을까?

우선, 그는 마오쩌둥 시대부터 오랜기간 훈련된, 이른바 준비되고 노련한 지도자이다. 신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알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참석하는 최고위급 회의에 동석하면서 덩샤오핑은 자기 세대의 가장 위대한 두 지도자가 국가 대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조직 건설의 참여자로서 덩샤오핑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이해하고 근본적 변화의 거대한 틀을 숙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p83)]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책 [아웃라이어]에 쓴 1만시간의 법칙이 떠오른다.


그리고 일을 할 줄 아는 덩샤오핑은, 큰 방향이 맞다면 실제 일을 해가며, 그리고 때론 실수도 하며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선호한다. 이것이 이론만을 논의하며 시간을 허송세월로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일이니만큼 실행 중에 부작용은 있겠지만, 지금 행동하지 않을 경우 중국 인민은 너무 가난에 힘들어하고 배고프기 때문이다.

[착오를 범해도 됩니다. 용감하게 당의 원칙을 견지하고, 타도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과감하게 책임을 맡고, 과감하게 투쟁할 수 있는 자를 찾아 지도부에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p174)]

이러한 그의 생각은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표준이다"라는 실천표준으로 정립된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받은 유능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배운 자, 이른 바 지식인은 더 이상 유산계급으로 배척받지 말아야 하고 사회에 필요하다면 요직에 등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덩샤오핑은 효과적인 국가정부를 조직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법률이나 규칙을 바꾸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정부처에 지도자를 배치하고 그들에게 실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155)]

[1949년 이전에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은.....재력을 갖춘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산계급 또는 지주계급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덩샤오핑은 구(舊)계급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출신을 불문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p476)]


신(神)의 권위를 중심으로 성립된 중세에서 근현대로의 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과학일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인 서양이 어떻게 최근 수백년 사이에 동양에 앞선 경제체제를 구축했는지는 익히 알려져있다. 덩샤오핑은 젊은 인력의 교육, 특히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의 과거 프랑스 체류 등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과학 부문의 진흥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주자의 성리학이나 교회 신학, 불교 경전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실제적 세계관이 배고픈 인민을 구제하는데는 먼저라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진짜 우수한 소수 과학자들의 경우 성격이 아무리 괴팍해도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덩샤오핑은 1950년대 소련에 있을 때 소련의 원자폭탄 기초 작업이 세 명의 30,40대 젊은이에 의해 완성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덩샤오핑은 당시 과학 회의에서처럼 흥분한 적이 드물었다 (p198,199)]

[덩샤오핑은 또한 자진해서 과학과 기술 그리고 교육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무엇보다 4개 현대화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과학이며, 그것이 다른 3개(산업, 농업 그리고 국방) 현대화를 추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80)]


내적으로는 문화대혁명의 악몽이, 외적으로는 서구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중국인들에게 과거 청산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덩샤오핑은 과거에 대한 잘잘못을 심판하며 머물기에는, 그가 풀어야 할 과제가 시급했고 개방에도 실용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해서 그는 어느 정도까지 경제가 개선될 때까지는 우선 앞을 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자고 한다.

[덩샤오핑은 과거 25년 동안 정치 운동에 되풀이되었던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자 애썼다. 그는 운동의 목적은 낡은 원한을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장을 준비하기 위한 정리정돈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p155)]

[(일본 천왕에게) 과거의 일은 지나가게 놔두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미래를 보면서 여러 방면에서 우리 두 나라의 평화와 우호 관계를 건립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p409)]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인간이었던 덩샤오핑은 전문적인 국가 경영을 통하여 인민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한 뒤 그냥 한명의 중국인으로서 세상을 떠났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도취했던 개인숭배를 참을 수 없었다. 공공건물에 조상(彫像)을 만들지 않았으며 (p505)....덩샤오핑의 유언에 따라 각막은 안과 연구용으로, 장기는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시신은 화장되었고....1997년 3월 2일, 그의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p894)]

하지만 그의 책을 읽는 지금의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그냥 한명의 중국인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자신의 인생에 잘못과 업적이 혼재한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절 대약진운동에 참여했고, 1988년 전면적 가격자율화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으며, 1989년 톈안먼 시위를 유혈진압하였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따로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로 그의 업적을 가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백선엽 장군이나 김원봉 열사의 사례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번역이었다. 이 책의 번역가들은 영어원문을 번역하고 나중에 나온 중국어판을 참고하였다고 하였으나, 중국어에 능통한 번역가들이 중국어를 원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 미국 국무부를 국무원으로 쓰거나, 외국 지도자를 영도자로 쓰고, 고위 장성(장교) 대신 고위 장령으로 쓰는 등등. 그리고 보통화 대신 북경어, 홍콩의 월어 대신 광둥어라고 썼으면 더 읽기 편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읽은 책이 1쇄가 아닌 3쇄인데도 아직 오자 등이 꽤 많이 발견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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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정준희 해제 / 두리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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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Post-Truth(탈진실)를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즉, 사실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는 문학이나 기타 환경문제와 같은 특정 이슈 정도에만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진실 자체라는 더 큰 목표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하며 이를 우려한다.


해서 근래에 와서 이렇게 확장되는 Post-Truth 현상의 기원을 살펴보니, 이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인지능력, 과학부인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그 주된 원인이고, 그 외에도 Post-modernism의 변형된 활용과 언론사 인터뷰 시간(지면)의 기계적인 배분 등도 역시 Post-Truth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미국에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진실 자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며 이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한다. 저자는 트럼프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자신의 믿음을 근거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행태는, 이미 Post-Truth를 넘어서 신조어(가령 Pre-Truth 등)가 필요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며, 이러한 행태를 방치할 경우 공동체의 진실이 묻히고 우리 사회는 쇠락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들은 진실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에는 언제나 맞서 싸워야하고, Post-Truth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반복적으로 증거를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하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 또한 편향된 정보에 갇혀있지는 (정보 사일러) 않는지 점검해야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한 분야에는 더욱 더 관점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책에 쓴다.

그리고 말미에는 인용을 통해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사실은 가질 수 없다." (p 217)


작가에게

Pros는 [사실(진실), 증거, 과학, 진보]이고

Cons는 [주장(감정), 관점주의, 과학부인론자, 트럼프]이다.

문학과 같은 예술작품에는 모를까,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 가령 환경이나 과학같은 분야에서 저자는 자신이 "아직도 사실이 존재한다고 믿는 부류가 있다던데 그 쪽 분이신가 보네요" (p 195)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스러워 한다.


과거 몇몇의 미디어가 주류일 때, 권력자는 중앙 미디어의 정보를 통제해서 대중에게서 진실을 왜곡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의 대중화와 분산화로 각 개인이 스스로 "맞춤형" 정보를 취사 선택하도록 정보가 제공된다. 마치 내가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정보가 내 취향이나 주장과 유사한 내용들로만 제공되니 다른 세상 사람들도 다 나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내 생각이 세상의 주류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게 세상이 변모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같은 것이고, 해서 나 개인적으로는 스스로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구글에서 유튜브 히스토리를 unchecked하여 내가 자주 보는 내용만이 선택되어 전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정보 사일러에 갇히지 않도록.


여하튼 전반적으로 시의 적절한 주제로 쓰여진 책이고, 일반 사회평론가가 아니라 철학자가 쓴 만큼 흥미로운 관점도 여럿 있었다. 한국에서 번역된 책에 대해 한가지 아쉬운 것은 분량을 좀 채울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엉뚱맞은 해제가 뒤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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