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전쟁없는세상 엮음 / 포도밭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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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는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53명의 병역거부자들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하나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그것이 전제되어 있는 병역 의무를 평화적 신념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겪은 일상적인 폭력, 이라크 파병부터 밀양 송전탑 건설에 이르기까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국가의 폭력과 범죄들, 53인은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저마다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다.

나 또한 지금의 군대가 근본적으로 전쟁과 살육에 복무한다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병역거부를 택하는 이들을 위해 다른 형태의 병역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군대에 대한 내 생각이라는 것은 현재 이 정도가 전부다. 내가 이 53인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은 사실상 군대를 벗어난 차원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군대'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복잡하며 끈끈한 어떤 것이다.

그래서 기분전환 삼아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군대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안 읽어도 된다고 제쳐두기는 더욱 어렵다.


이것은 거부가 아니다

명색이 병역거부선언인데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나는 '거부'라는 말이 뭔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거부라기보다는 '선택'이다. 세상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해지는 것들,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고 세뇌당해 온 것들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왜 선택하면 안 돼?"라고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다른 것을 선택해 보임으로써 증명한다.

"이런 분열에도 나는 병역거부를 선택한다. 분열하기 때문에 나는 병역거부를 선택한다. (줄임) 완벽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안고 끊임없이 선택하는 실존적 모습이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도덕체계다."(조은, 175쪽)

이들에게 선택이란 곧 '자유의지'이고, 그것 자체가 '인간'의 다른 이름과도 같다. 명령을 내리는 권력과 주어진 현실조건에 저항하고 자기 의지로 선택하는 것, 그 선택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 되고 싶다. 이성을 가진, 영혼을 지닌 한 명의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안홍렬, 124쪽)

당연히 이러한 종류의 얘기는 우리를 항상 불편하게 하며, 여기에 시비를 거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그럼 군대 가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는 말이냐?" 아시다시피, 그런 말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나'이다. 애초에 '나'가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면 저항이나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를 분명히 느끼고 있는 '나'를 눈감아버린다면, '나'를 제외한 대다수의 의견에 편승해버린다면, 그 '나'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느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국 이들은 '나'를 인간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53개 '나'들의 집합이다.


이것은 고립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기 신념을 드높이며 홀로 당당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동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들과 부대끼며 같은 길을 걷는 대신 외로운 감옥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고 해서, 이들이 고립을 자초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도도하고 도전적이기만 할 것 같은 선언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연대의식'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애초에 다른 모든 이들과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 같은 것인데, 그게 조금은 서글플 정도로 절박하게 묻어난다.

"이 지구생명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의 피와 살로부터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이용석, 92쪽)

"나의 삶을 다른 이들과 포갤 수 있는 위치에 이르고 싶다."(현민, 164쪽)

"우리는 결국 우리가, 같은,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줄임) 우리가 모두 이어져 있음을 느낄 때에, 우리의 승리는 시작될 것입니다."(안지환, 196쪽)

그리고 자신의 병역거부를 남에게 설명해내는 과정 자체도 이들에게는 병역거부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듯 보인다. "난 전쟁에 반대해. 평화를 원해. 그래서 군대에 갈 수 없어." 아주 간단하게는 이런 해명이 있을 수 있다. 이 한 줄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정말로 보잘것없어서 거의 틀린 말처럼 들릴 지경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말을 안 하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을 통해 온전히 검증되지 않은 '내면의 소리', 일반적으로 양심이나 신념으로 명명되는 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애써 드러내고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오태양, 16쪽), "나의 언어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나라는 존재가 다수와 외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임치윤, 30쪽)이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괴롭게 했다.

다른 개체들과 자기 자신이 이어져 있다는 감각, 남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겨누는 것과 같다는(또는 더 못할 짓이라는) 믿음에 따라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그런데 정작 남에게 그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면, 남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면 그 고통은 또 어찌해야 할까.

그래서 병역거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개인의 소견서는 그만큼 절박한 인간의 언어, 그야말로 '사람의 말'일 수밖에 없다. 이해받고 싶기 때문에, 내밀한 양심의 소리를 공적인 언어로 번역하기가 거의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도한다. 언제까지나, 앞서 시도한 사람의 언어를 이어받아서, 몇 번이고 다시, 사람의 말을.


이것은 영웅이 아니다

자유의지, 연대의식, 그밖의 어떤 면에서든 이들이 대다수의 평범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구분되는 투사, 혁명가, 도덕가, 활동가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주변에 병역거부자가 몇 있는데, 저렇게 헐렁(?)해 보여도 사실은 무시무시하게 똑똑하고 의지가 굳고 급진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뭐, 그것은 경우에 따라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책 전반에서 읽히는 진솔한, 조금은 수줍기까지 한 고백들, '나는 당신과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신념이 아니면 죽음!' 물론 이러한 입장도 간간이 섞여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은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강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내가 왜 군대에 안 가려고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천천히 찾아나가야 할 만큼,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왜 아니겠는가? 병역거부고 뭐고 다 사람 사는 일인데 어떻게 단순명쾌할 수 있단 말인가.

53인 중에서 특히 현민씨의 기나긴 소견서를 인상 깊게 읽었다. 그는 시종일관 솔직하고 담담한 언어로 자기가 도덕적 영웅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괜찮지 않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게 병역거부의 사유로 밀 만한 키워드는 없는 것 같다. 천주교 세례명이 있지만 냉담자다. 소속단체가 없다. 활동가가 아니다. 짝사랑하는 사상가는 있지만 '무슨주의자'라고 하기엔 쑥스럽다. (줄임) 평화를 사랑하기보다 그냥 싸움을 못하는 것 같다."(161쪽)

"나는 병역거부를 하기 위해 자신을 완전무결한 도덕적 주체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대의에 기대고 싶지도 않다. 샅샅이 뒤지면, 병역거부에 필요한 이력이 없진 않다. (줄임) 하지만 그런 활동은 단일한 목표의식 하에 행해진 일이 아니었다. (줄임) 실은 모든 삶은 이질성으로 그득하기 마련이다. 내게 완결된 서사는 불가능하며 매력이 없다. 완결된 서사의 이면, 즉 내밀한 일상의 파편은 정치적 올바름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를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한다."(163쪽)

결국 그 '내밀한 일상의 파편'들이 쌓여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를 이뤄온 것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느끼기로는 충분히 그렇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부딪히곤 하는 부조리들에 남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파편이 낸 생채기에 더 아파하거나 더 화를 내거나 더 끈질기게 생각한 나머지 자연히 행동을 남보다 '하나쯤' 더 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병역거부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나은 세상이 주어져서 군대라는 의무가 없었다면, 다른 어떤 의무에든 의문을 제기하고 저항하고 또 다른 선택을 기어이 찾아 했을 것이다. 그 의무가 그들에게 인간이 아닐 것을, 또는 그들 자신이 아닐 것을 명령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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