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
부정적인 신호가 들어오면 학생들의 작업 기억력은 매우 많이 훼손됩니다.
p12
혜나는 수학을 아주 좋아하고, 또 잘했다. 반면 서윤이는 수학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숙제를 하거나 학원에서 문제를 풀 때면 늘 혜나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몇 번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기분이 좋아진 서윤이는 스스로를 뿌듯해하느라 혜나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야, 너 수학 시간에 대답하면서 엄청 신났더라. 막 피식피식 웃으면서.., 너 진짜 어이없어. 공부도 나보다 못하면서..."
p29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선생님은 공모전의 '공' 자도 꺼내지 않았고 영상을 찍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에게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은지,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보거나 선생님이 준비해 온 영상을 보여 주고 나서 감상을 물어볼 뿐이었다.
p39
"아, 이소영 쌤 보고 싶다. 소영 쌤이었으면 분명히 나가라고 하셨을 텐데.."
"맞아."
서윤이와 현이는 나란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소영 쌤한테 연락해서 공모전 지도 선생님 해 달라고 말해 볼까?"
p44~47
"그런데 왜 동영상은 재미있어야 할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이들은 멀뚱히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때 현이가 자신 없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요."
"그렇지."
선생님은 바로 그거라는 듯, 현이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은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얘기했고, 선생님이 준비한 영상을 보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어.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알게 된 건 연우와 서윤이, 민영이는 감동 있는 유머 다큐나 길이가 짧더라도 주제가 확실한 영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는 거야.
아마 동영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속도는 너희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일 거야.
"그렇기 때문에 동영상을 만들 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하고, 어떤 내용을 다룰지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 재미있게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든 동영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아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
영상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그게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저 남들이 만드는 것과 비슷한 영상, 만들기 쉬운 영상, 그럴듯해 보이는 영상, 이런 거 말고."
p58
현이의 말에 서윤이는 가슴 한쪽이 쿡 찔린 것 같았다. 사실, 서윤이가 가장 답답하고 속상한 점도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혜나와 부딪치면 서윤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혜나는 매번 자기 할 말만 툭 던진 뒤 서윤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리를 떠 버렸다. 그러니 서윤이는 늘 혼자 상처받고, 혼자 속상해하고, 혼자 울었다.
p64.65
"응,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은데 다른 사람의 생각은 빼고 말하기, 그러니깐 '누가 어떻게 했다더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하더라.'이런 말 빼고 자기 생각만 말하는 거야. 알았지? 자, 지금부터 시작!"
그 와중에 잘하는 건 영상 만드는 것밖에 없는 애라고 쏘아붙이던 혜나의 말까지 떠올랐다. 만약 공모전에 나가 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조차도 못하는 애라고 무시할 게 분명했다.
느낌 : 과연 나도 누구를 포함해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했다. 내 아이에게도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말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p81.82
그 기사는 백준형이라는 의사 선생님이 쓴 것이었는데, 부모님 얼굴도 모른 채 보육원에서 자란 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 의사 선생님이 처음 병원에서 일을 시작할 때 가족관계증명서라는 서류를 병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부모님의 이름이 적여 있지 않았다. 그 서류를 한참 동안 보면서 스스로 가장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대단한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공부도 열심히 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