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김소연 지음 / 효형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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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근대 여성의 삶을 그린 책을 가져왔는데요. 이 책은 사실 근대 여성의 삶이 궁금해서 서평이벤트 참여했는데 똬악 당첨 되었어요.

근대 여성의 삶은 어떠했는지 읽어볼게요.

 

p21

'온통 버섯 천지구나.'

스크랜턴의 눈에 비친 도성은 거대한 버섯 단지였다. 간혹 기와집이 보였지만, 흙벽 위에 동글납작한 초가지붕을 올린 한옥은 영락없이 버섯 모양이었다. 초가집이든 기와집이든 나지막한 단층집이 산과 언덕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평화로웠다.

p23

조선 여성은 이름이 없다고 했다. 어릴때는 별명을 부르거나 아무개 누이, 아무개 딸로 부르고, 결혼하면 친정집 마을 이름으로 부르다가 아이를 낳으면 아무개 어미로 부른다고 했다.

'한평생 자신의 이름 없이 산다는 것, 누군가를 전제로 존재 한다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여성이 사회적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조선의 여성이 그런 존재라면 더더욱 절실한 것이 여성 스스로, 여성이 여성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다.

p26

아들이 의사가 되어 개업의가 된 후에는 더 높은 뜻을 위하여 함께 조선으로 왔다. 더 높은 뜻이란 지상의 출세가 아니라 구원을 향한 복음 전파였다. 여학교를 세운 궁극적인 목적도 그런 것이었다.

p31~36

1887년 3월. 고종은 여학교 이름을 하사했다. 이화학당, 온통 배밭인 정동 일대에서 배꽃처럼 희고 고운 여학생을 길러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높은 곳에 쉽고 편한 길은 없다. 이화학당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무렵 영아 소동 사건이 터졌다. 서양 선교사가 아이를 삶아 먹는다는 둥, 눈알을 빼서 사진기 렌즈로 쓴다는 둥, 미국에 노예로 팔아넘긴다는 등 선교사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줄줄이 이어졌다. 소문만 놓고 보면 선교사들도 이미 들어 익숙한 이야기였다.

비 온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교사에 대한 오해가 사그라지고 더 큰 신뢰가 쌓였다. 이화학당을 찾아오는 학생은 입학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많아졌다.

"조선 여성의 삶은 이 꺼진 등불과 같이 캄캄하오. 이런 우리에게 밝은 학문의 빛을 비춰줄 수 없겠소?"

이화학당 당장은 하란사의 열의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이 되겠다는 김씨 부인과는 차원이 달랐지."

스크랜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하고 나서 받은 세레명 '낸시'를 음역한 이름이었다.

하란사는 신교육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고, 신교육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의지는 더 대단했다.

'가슴 속에 그 불덩어리를 안고 어덯게 이름도 없이 살았을까.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후처가 되었을까. 부모의 가난과 무지 때문이었겠지.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이화학당에 들어오려고 했겠지. 조선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를 스스로 바꾸고 싶어서, 어째든 참 대단한 여성이야."

하란사야말로 꺼진 등불처럼 캄캄한 조선 여성의 삶을 밝혀줄 등불이 될 테니까.

p55

민씨 일파는 일본을 견제하려고 러시아와 미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자 일본은 민비를 사해했다. 신변에 불안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했다. 이번에는 친일 개화파 정권이 무너지고 친러, 친미 개화파 정권이 들어섰다.

p59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겁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도 배울 수 없다면 그때 포기하겠습니다. 그전에는 아닙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불행은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p74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서로 사랑하라!"

p84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삶에 희망이 생겼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세상이 어떠한지, 조선 밖에서 보는 조선은 또 어떠한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제대로 깨어나라는 마음에서 권하고 또 권했다.

p92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p95.96

"조선의 국력이 부족하므로 일단 군대를 해산한다. 군인들에게는 일시금을 지불한다. 후일에 징병제를 편다."

얼마 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새로 순종을 등극시키고, 한일 신협약을 체결하였다. 이토히로부미와 친일파는 순종을 협박하여 황제의 칙명으로 군대 해산을 발표하였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남대문 근처에 세브란스병원이 있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대적하다 부상을 당한 군인들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다.

p103

새 병원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기념병원(이하 세브란스병원)이라고 지었지만, 조선 사람들은 입에 익은 대로 제중원이라고 불렀다. 에비슨은 제중원 제 4대 원장에서 세브란스병원 제 1대 원장이 되었다.

최첨단 의료 시설을 갖춘 세브란스 병원이 완공되자 에비슨은 한동안 중단되었던 의학 교육을 재개했다.

p136

붉은 연애, 사람들은 사회주의 여성의 자유연애를 그렇게 불렀다. 허정숙에게 여성 해방은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자유연애와 성해방도 의미했다. 사실 자유연애와 성 해방은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 같은 자유주의 신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항변하던 주제였다.

집중 포화를 받은 대상은 자유주의 신여성이었다. 사람들은 자유주의 신여성의 사생활을 소문으로 부풀리고 각색하며 마녀사냥을 해댔다.

p184

여자와 사기그릇은 밖으로 내돌리면 못쓴다고 했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 패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집안에 갇혀 살아온 여자들이 집 밖으로 나가 노동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p217

로제타는 조선에서 1933년까지 43년 동안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였던 일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 양성 교육 기관인 경성여자의학강습소 설립이었다. 그 후로 조선 여성은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책 일부 발췌--------------------------------

이 책은 100여 년 전 전통사회가 강요했던 삶을 떨치고 일어난 여성들과 그들에게 새 삶을 열어준 장소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주방은 주부만 일하는 곳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공간이 되었으며 각종 가전제품은 가사노동을 덜어준다.

변화를 원한다면 설령 잠시 멈추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내가 지나온 삶을 뒤돌아봐도 부끄러웠떤 순간은 실패했던 순간이 아니라 포기했던 순간이다.자존감이 살아 있으면 희망을 놓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삶이 된다. 그런데도 실패하면? 인생이란 원래 숱한 실패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평생을 놓고 보면 성공과 실패의 모습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근대 여성의 삶을 엿볼수 있었던 책이다.

근대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의견소리냈다.

변화를 가져다준 고마운 도전. 그리고실패로 인해 우리가 우리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감격스럽기도 했다. 자기계발서나 육아서등등 읽다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니 새로웠다. 그리고 세브란스병원의 설립도 볼수 있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가 최초로 여성임을 새로운것들을 알게되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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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12-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