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함께여서 좋다? - 치매간병을 힘들게 만든건 착한며느리 증후군이었다
정유경 지음 / 노드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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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며느리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평 하려 합니다.

그럼 읽어드리겠습니다.

p27.28

치매 환자는 불안의 강도가 다르다. 적어도 치매 환자를 대하는 순간은 누구든 천사가 되어야 한다.

느낌 : 자신의 몸 돌볼 겨를도 없이 치매환자를 위해 몸을 받친 저자의 모습에 깊은 반성을 했다.

교관에게 훈련받은 행동은 나에게 딱 맞는 옷이 되었고 내 시간과 공간은 그 안에 갇혀버렸다. 나의 일정은 없어진지 오래고 수많은 계획은 이제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생각 : 자신의 생활을 오로지 치매환자를 위해 받쳤던 저자의 글에는 내공이 들어있다. 참 따스한 사람인 저자.

p34

아버님 간병만으로도 힘든데 가족으로 인한 사건들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자식은 부모를 책임과 의무로 고통을 함께 안고, 누군가는 부모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여긴다.

생각 : 이 부분이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어떤 자식은 책임과 의무를 다해 부모님을 위해 고통을 안고 살지만 어느 누구는 부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내 처지를 생각하게 된다.

p38.39

나에게도 아버님에게도 상처가 되었기에 힘든 여자 화장실로 가기보다는 차라리 남자 화장실이 편하게 되었다. 난 남자 화장실에서 최소한 호통치는 소리는 듣지 않게 되었다.

분명 대변이 급하신데, 소변이라고 우기실 때 막상 소변기 앞에서 기저귀를 뺐는데 대변이 함께 나오거나 반대로 대변만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실랑이하느니 내가 뒤에서 휴지를 준비하는 게 차라리 낫다. 때로는 그것도 소용없을 때도 있지만.. 아버님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님은 대변이지 소변인지를 모르실 때가 종종 있다. 당신이 말한 대로가 아니라 그때마다 몸에서 나오는 게 다른 결과이며 반응인 것이다. 주 보호자는 당황하게 되지만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예측 불가능의 상황에 즉각 대처해야 할 때가 많다.

생각 : 나는 과연 저자처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외할머니가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고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의 나는 화를 낸다. 우아하게 늙자고... 그러나 엄마 하는 행동을 1년 정도 지켜본 결과 한 번씩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힘든 일을 감당하기 힘든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는 저자처럼 엄마를 이해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p50.51

노인이 계신 집의 풍경.

물건이 없어졌다고 집안을 발칵 뒤집는다.

만만한 나와 애들은 억울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되었다가 이내 포기한다. 시간이 찾아주므로.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가 고이 모셔둔 곳에서 나왔다고 너털웃음을 지으신다. 당연히 헛고생시켰다던가 의심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야! 여기 있다. 하하하!" 어머니가 소리 질렀다. 어머니는 침대 근처에 벗어두고 로션을 발랐던 것이다. 노인을 모신 집은 에너지 낭비의 사건들이 많은데 감정이 첨가되면 걷잡을 수 없는 전쟁이 터지기도 한다.

p66

치매는 어린아이가 된다고 알려진 병이지만, 실상은 우울감이나 무감동이 함께하고 늘 불안하다. 이럴 때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오고 가면 불신이 쌓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 더 불가능하더라도, 치매와 함께 오는 무감동과 우울, 그리고 고통을 줄일 방법은 친근하고 따뜻한 배려만이 환자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p72.73

치매이신 아버님을 간병하다 보니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거울 앞에 마주 섰다. '흰머리가 반인 저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 저런 모습이 되었는지 참 낯설다.' 본인의 감정조차 들여다볼 여유 없는 사람,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달라는 거울 속 저편에 잇는 사람이 누구인지..

세상에서 고립된 둘만의 사건들은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으리라. 각자 자신의 손끝 가시가 더 아프니 경종을 따질 수 없으리라. 상대가 가족이라 하더라도.

느낌 :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한집에 맏딸로써 한집에 맏며느리로써 깊이 아주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간병. 저자는 무슨 마음으로 견디고 견뎠을까? 참 대단하다 말밖에는 더 이상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p89

치매 가정엔 변 얘기며 온갖 지저분한 얘기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기승전 '콧물'과 기승전 '변'이다.

생각 : 이 대목에서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발목을 다친 후 거동이 불편했던 할머니는 정신적으로 점점 쇠약했다. 자식들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집을 지켰던 할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대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온 집안을 대변으로 물들게 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당신 큰 숙모와 큰 삼촌을 원망한 어린 외손녀일 뿐이었다.

p93

어머니는 다른 자식에겐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잘 하셨다. 밥 한 끼 사드리러 오는 자식에겐 매번 했던 말, 나는 그 말에 갈증을 느낀 것 같다

늘 그 말을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던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걸까?

생각 : 칭찬에 인색한 시어머니는 맏며느리에게는 후하지 못한지. 자신도 시집와 시집살이를 했기에 그러는지 이 책을 읽으며 의문이 들었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로 하지 않았던가? 착한 며느리로 온 힘을 다해 정성을 쏟는 큰 며느리에게 왜 그렇게 인색하셨는지? 따뜻하게 보살펴 주지 않았는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드셨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p98

그러나 이미 아버님은 환자이자 약자이며 당신이 직접 케어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 관리를 하고 말을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또한 늙고, 병들고, 어찌면 같은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삶인 것이다.

느낌 : 우리 역시 늙고 병들 수 있다. 나 역시 투병 중이니 이 부분에서 가슴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님을.. 그저 따스한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p106

일자 기저귀 한 장이나 종이 타월 6~7장 겹쳐 기저귀 안에 채우거나 일자 기저귀의 방수 부분에 칼집을 내서(때로는 일자 기저귀로 감당 안되서) 팬티 기저귀에 흡수가 되도록 해야 했다. 여러 방법을 써보니 이게 가장 좋았다. 그러나 어떤 방법이건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어머니가 주도하는 방법 이외엔 허락하지 않아는 반복되는 말들에 힘겨웠고, 부대낌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생각 :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스스로 결정권을 주지 않는 걸까? 주 보호자인 며느리이고 치매 아버님을 홀로 간병하기 때문에 결정권을 주지 않는 건 분명히 자신을 약자로 볼까 봐 두려워 큰 며느리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는 거 같아 안타까웠다.

p131

우리가 큰일을 앞둔 시점, 예를 들면 출산하는 날 연락하면 기다렸다는 듯 뜬금없는 일들을 만들어서 남편에게 일을 시켰다. 부모님 동네의 가까운 관공서를 다녀오라고 한다든가 또 다른 무언가를 종일 시켰다.

늘 모든 진통을 혼자 겪고 아이를 낳은 한참 후에야 남편은 밤늦게 나타났다. 부모님은 마치 그런 일을 시킴으로써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아닌 '자식'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함을 상기시켜주고 싶은 듯했다.

p136

후회되는 것은 육체적인 것, 경제적인 것, 모두를 끌어안기보다는 좀 더 일찍 우리의 부담을 덜었어야 했다. 우리가 겪은 것들을 말을 안 해도 알아차리기 바랐지만. 그들의 관심 밖 문제였기에 가족이기 이전에 그때의 일을 알려고 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에 더 놀랐고 아팠다.

느낌 : 가슴이 아려왔다. 앞부분의 이야기를 발췌하지 못했지만 시부모의 입맛이 다 달라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도 두 분 입맛을 맞추기 위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이 일은 그저 맏며느리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가족들의 행동에 화가 났다. 가슴이 아픈 부분이 많지만 이 부분에는 가슴이 너무 아파 기록을 했다.

p147

할머니 앞에서 쩔쩔매는 엄마로 비치는 모습을 딸에게 보이기 싫었다. 내 모습을 보고 딸까지 같은 삶을 살까 봐 몸서리치게 두려웠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딸에게 항공권을 예약하라고 큰 소리쳤다.

p152

배려가 반복되면 권리로 안다더니, 그들은 내 약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부모가 물러주는 재산을 충분히 받고도 저울질하던 그들의 모습들이 생각났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난 늘 양보했다.

여행을 모두 취소하고 나니 기가 막혔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어머니는 동서나 시누이 여행도 이렇게 막았을까? 그들은 아버님에게 어떤 케어를 하고 있지? 아버님이 내 남편인가? 어머니 남편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p166

세상엔 나름의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나와 다른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나와 같을 수 없다. 언젠가는 이 고통이 아물 것이며 가끔 마음 한편이 아릴 것이라 믿는다.

생각 : 위 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그들이라고 칭하는 그들이 꼭 알아야 하는 속담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p174~177

부모님에 대해서만큼은 형제 모두의 일이며, 분명한 것은 그들이나 내 남편이나 부모님 사랑을 받은 똑같은 자식이란 것이다.

아이들이 폭력을 당하는 그 순간 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나쁜 엄마를 선택했고 착한 며느리로 산 것이다.

딸은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하니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 어머니는 옆에 있었으면서도 손녀딸이 그런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전혀 지켜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과할 줄 아는 이들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안 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트집을 잡는 것에 난 진저리를 쳐서 가출 뒤 나 또한 몇 번 유치한 트집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타고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p191.192

내가 남편과 시부모를 높이면 나 또한 그런 대우를 받을 것이라 믿었다. 착하고 완벽한 며느리, 완벽한 아내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느낌 : 18년 전 내 모습이 이러했으리라. 착한 사람의 가면을 살며 상처를 한껏 끌어안고 살았으니 말이다. 결국 상처를 분노를 해결하지 못한 내 몸은 병들기 시작했다.

p219

나는 누군가의 평가로 나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되었고, 인정받고 사랑받길 원했으며, 그렇게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를 키워나갔다.

나는 항상 시부모와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았고,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칭찬받고 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늘 그들 밑에 무릎 꿇고 비굴하고 나약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늘 나는 시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을 선택했다. 시끄러운 분쟁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태도는 나를 더 큰 고통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생각 : 나라는 인간을 존재로 환영받고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이들도 환영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나'라는 존재는 경멸했던 과거가 떠올라 슬퍼 울었다.

p229

어릴 때 아팠던 내면이 성인이 된 후에도, 결혼 뒤에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지배했고, 방법을 몰라서 돌고 돌아서 왔으며, 많이.. 많이.. 헤매게 되었지만, 결국 내 길을 찾게 되었다.

아버님의 간병은 나를 성장시켰다고, 이 모든 결과가 내 잘못이 절대로 아니라고.. 최선을 다했으니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나의 남은 삶을 이제는 희망으로 바라본다.

느낌 : 나와 왜 이렇게 비슷할까? 결국 처했던 상처와 분노, 절망은 나를 더 성장하게 했고 그동안 살아온 것이 헛되지 않는다는걸, 그렇기 위해서 도전이라는 이름 앞에서 망설이기도 하지만 내 삶은 앞으로 희망이 가득하다는 나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이토록 비슷하다니... 감격스러웠다.

p252

음악치료가 치매를 앓는 사람들에게서 우울증과 불안증을 개선하고 사회적 상호작용도 좋아지게 해 환자와 간병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 일부 발췌---------------

착한 며느리 증후군은 나를 죽이는 행동임을 그래도 함께여서 좋다 책에서 알 수 있다. 착한 며느리는 그저 바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있기에 나 역시 착한 며느리가 아닌 할 말하는 며느리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다.

내 몸이 아프고 나니 더 이상 나를 학대하면서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나는 10여 년간의 일들이 내 몸을 병들게 했지만 저자는 나보다 더 긴 세월을 참고 이겨낸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의 부모님인데도 불구하고 며느리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나면 자신의 부모라도 내 몰라라 하는 이 가족들의 가족애는 없다는 것을 책에서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걸 이겨낸 저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인생을 살아가는 저자에게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다.

집안에 환자가 있다면 가족들과 불화가 생긴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왜 생겼을까? 생각한 지 18년 전.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걸. 잘해 보려고 내 몸을 학대한 것뿐. 결국 학대한 결과가 병을 만든다는걸, 주위 가족들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것 또한 내 이야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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