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은 이리 치이고 저리 흔들리는 삶에서 중심을 잡아 평범함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한다. 「대학」은 삶을 이끌어가는 생각의 집을 짓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설계도를 간명하게 그리게 한다. 「맹자 」는 세상이 나와 다르더라도 꿋꿋하게 내 길을 걸아가는 기개를 말한다.
p20.21
사람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살며 한 번씩 휴가를 다니면서 삶의 재미를 느낀다. 이게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다.
우리는 공감과 죄책감이 없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데, 이도 '소은행괴'와 그리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음식도 같은 것을 늘 먹다 보면 싫증이 난다. 색다른 것을 찾기도 한다. 늘 먹던 것은 잠깐 싫증이 날 수 있지만 결국 그 맛을 찾게 되고, 색다른 것은 한때나마 먹지만 계속 찾을 수는 없다.
『중용 』하면 평온하고 차분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다.쉰의 나이도 조명이 쏟아지는 특별하고 화려함보다 공기처럼 편안하고 일상처럼 부담 없는 보통에 다시 눈이 가는 때다. 보통이 결국 오래가기 때문이다. 중용과 쉰의 나이는 평범함에서 잘 어울린다.
p28.29
공자는 도를 실행하는 행도와 도를 밝히는 명도에서 일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례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면,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 못난 자는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음식을 너무 적게 먹거나 많이 먹어서 맛을 ㅈ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프거나 굶주리며 적절하게 먹지 못하기 쉽다.
p43
중용은 사람의 삶이 인의예지의 도와 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하는 언행을 누가 보지 않거나 자신이 내는 소리를 누가 듣지 않는다면 인의예지의 도와 어긋나게 행동할 수 있다.
p51.52
사람은 해보기 전에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긴박한 선택의 순간에 '될 대로 되라'라는 식으로 스스로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용에서는 느슨해지려는 사람을 다시 긴장하게 한다. 세상에 모르는 일은 없다. 일을 할 때 그 결과가 드러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그전에 결과가 어슴푸레하게 나타난다.
불행과 행운이 앞으로 닥칠 경우 좋은 현상을 반드시 먼저 알게 될 뿐 아니라 좋지 않은 현상도 먼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진실은 초자연적 존재처럼 신묘하기 그지없다.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