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고 말했다. 늘 무언가를 위해 움직이는,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놀이하는 인간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넘어, 자신의 길을 따라 끊임없이 여행하는 사람들이 현대의 인간이라고 본 것이다.

‘디폴트립’이라는 단어는 사회적 여성성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 여성을 뜻하는 ‘디폴트 인(人)’에 ‘Trip’을 합성한 말이다. 디폴트(default value)라는 말은 기본값을 뜻한다.

왜인지 그 바보 같은 여권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많은 귀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평생 들어온,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문장이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금전적 상황이 지금껏 나의 가능성을 얼마나 축소해왔는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단순히 여행뿐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내 통장 잔고가 결정해왔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앞서 말한, 적은 예산을 들이길 선호하는 나의 성향은 늘 어떤 상황 앞에 돈과 경험의 가치를 저울질하게 했다.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내렸던 결정들도 결국은 그때그때 내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았을지.

머리카락 길이에 따라 여성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며,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의 삶이 고꾸라지지는 않는다. 25살이 넘는다고 여성으로 사는 삶이 꺾이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여자는 원래 그런 거야."라고 정해진 원칙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앞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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