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2 벽 SF 보다 2
듀나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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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소설의 화자에 따르면 만리장성은 북방 이민족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다. 그렇다. 벽은 나누고 막고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7쪽)

그러나 벽은 반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략)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모험 사이에는 언제나 (비록 문지방처럼 야트막할지라도) 벽이 세워져 있고, 이를 넘는 행위는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의미한다. 문지방 너머에는 새로운 세계, 주인공을 필요로 하는 낯선 우주가 기다리고 있다. (8-9쪽)

문학이 무엇인지, 장르와 SF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어쩌면 그건 끝없이 벽을 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아닐까? 사람과 방과 계단과 궁전을 넘어, 누군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도하고 그리는 일. 우리에게 메타포가, 비유와 우화가, 문학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는 벽이 되고 문이 되고 세계가 된다. 책은 벽돌이다. (13쪽)

도입부에 있는 문지혁 소설가의 글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그전까지 내게 벽이란 7쪽의 설명에 해당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단행본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들 속에서 벽은 그렇게 단순한 기능만을 하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인물들이 그렇게 되도록 행동하지 않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시공간이라는 벽을 넘는다. 주체는 사람일 때도 있고 토끼일 때도 있다. 사람은 넘지 못하는 벽을 토끼가 넘기도 한다. ‘방패’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벽을 넘음으로써 진실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허물어진 벽을 다시 쌓았으나 문을 따고 들어온 외부인에 의해 무너지는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벽에 그린 그림을 통해 대대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벽을, 무언가를 막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스스로 벽을 넘으려고 한다. 벽 뒤에 숨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벽 너머의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기어이 넘는다. 벽을 뛰어넘었을 때 마주할 어떤 미지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
그 움직임이 지독히도 문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벽을 넘는 행위로 귀결되는 것 아닐까. 이야기를 따라 넘어올 무언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읽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벽의 첫 벽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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