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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평점 :
정물화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예술과 문학 작품 속의 정물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그림으로서의 정물 위주로 전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 속 인물 및 일화가 자주 등장해서 조금 놀랐다. 뿐만 아니라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같은 문학 작품과, 피카소나 고흐 등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언급되었다. 관련 배경 지식을 알고 읽으면 보다 다채로운 독서가 가능할 것 같다.
‘스틸라이프‘가 정물이라는 사실은 본문의 첫 장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갈수록, 정물은 삶에 깊게 들어와 있는 대상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컵도 정물이다. 이미 정물은 삶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존재해 온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정물의 영문명이 still life라는 게 더없이 잘 어울리고 제 이름을 찾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배는 그동안 사과보다 덜 시적이라고 여겨졌다. 서과처럼 예쁘지도 향기롭지도 않지만 배는 그 맛이 뛰어나서 훌륭한 미각에 어필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사과를 꿈꾸지만 전직 판사들은 배를 먹는다. 배의 이름은 황제와 왕과 여왕과 남작과 남작 부인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배가 미국인의 이름을 언제 갖게 될지… 공화당원이 소화할 수 있는 배의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는 좀 기다려야 할 듯하다. (123쪽)
즉 예술은 인공적이고, 무기적이고, 돌로 만들어지고, 물감으로 그려지고, 종이 위에 잉크 또는 흑연의 흔적으로, 표백한 나무 펄프에 젖은 탄소를 찍는 타자기의 금속 키로 만들어지지만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의미는 살아 있는 것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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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에 정물이 놓여 있다. 물컵과 연필, 탑처럼 쌓여 있는 책 다섯 권이 있다. 영양제가 가득 담긴 통들과 면봉과 헤드폰과 작은 봉제인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것들을 무작위로 모아 놓은 것이다”라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그의 말이 내게는 관점의 차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책상 위 물건을 치워야 할 잡동사니로 본다면 그것들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질서로 본다면 정물로 존재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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