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를 위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원하는 만큼 천천히 끊어 읽을 수 있는 감정 소설이었다.

 

연년세세는 이미 발표한 두 작품과 미발표였던 두 작품을 모아 출간한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담겨있듯이 <연년세세>는 순자씨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졌다. 순자씨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다를 텐데, 독자들은 순자씨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는 네 개의 작품에서 순자씨에 대한 이야기를 잘 담아냈을까?

 

<공감을 위한 장치들과 구성 방식>

나는 순자라는 이름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시대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친척관계도 크지 않아 친척 관계가 어떤지 잘 모른다. 그렇게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도 읽는데 크게 문제없이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하면서 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치밀하고 빈틈없는 묘사와 구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시대상을 이용해 당연히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묘사를 적당히 해주었다. 그래서 배경지식이 없던 나도 몰입할 수 있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받는 상처와 고통을 굉장히 잘 묘사해냈다. 어린 나이 때에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잘 모르면서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혼란 속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아주 잘 묘사되었다.

 

작가는 여러 인물들의 입장을 모두 보여주기 위해 전지적 작가 시점을 이용했다. 그러나 묘하게 주어를 가려 그때그때에 맞추어 각 인물들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듯한 느낌을 형성했다. 또한 대화에도 큰따옴표를 제거하고 들여 쓰기도 없애 서술과 대화의 경계를 묘하게 흐려 더욱 1인칭적 느낌을 강하게 냈다. 여러 인물의 내면에 쉽게 이입해서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아주 효율적인 서술 방식이었다.

 

연작소설로서 보지 않고, 각각의 단편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살펴보면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 단편 하나하나가 경제적으로 꼭 필요한 말만 담았다거나 큰 의미나 깨달음을 주지는 못했다. 단순히 묘사를 위해서 혹은 줄거리를 전개하기 위해서 삽입된 부분도 많았다. 순자씨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한 편만으로는 납득하기 힘들다. 이 작품들은 네 작품이 묶여 비로소 의미를 형성한다. 그렇다고 장편소설처럼 쭉 이어서 보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한 번에 읽기보다는 단편 별로 끊어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단편 별로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새로 지어지는 느낌이라 한 번에 읽으면 오히려 흐름이 끊긴다.

 

<인물 묘사의 아쉬움>

이런 장편의 성격을 띠고 있는 연작소설집에서는 첫 부분에 독자들이 인물에 대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려운 이름 설정, 늦게 밝히는 성별이나, 첫 부분의 애매한 묘사 등으로 인물의 관계도가 머릿속에 깨끗하게 그려지지 않아 초반 부분에 이해하는데 불편함을 겪었다.

 

이순일, 한영진, 한민수 등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는 다 잘 드러났는데 한세진에 대해서는 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한 편 다가오는 것들이 한세진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였음에도 에필로그적인 색깔만 강하고 한세진에 대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말이 없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좀 더 신경 써줄 수 있던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단편에 갑자기 등장하는 하미연도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고 하미연으로 한세진 설명을 대체한 것 같아 독자에게 어떤 사고의 흐름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작품 중 등장하는 이순일도 모순적인 모습들이 보인다. 집안일에서 그렇게 탈출하고 싶어 했으면서 결혼을 한 이후에는 한영진을 밥상에 붙들어 놓고 평생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품에서 그려진 성격이나 묘사 방식에 비해 이순일의 대화 방식은 나긋하다가도 꽤 거칠고 배려 없기도 하는 뒤죽박죽의 말투를 보였다. 속으로는 한세진이 잘 되길 그렇게 빌면서 겉으로는 차갑게 툭툭 뱉는 말투가 어색함을 풍겼다. 이 부분은 실제로 작가가 순자씨를 인터뷰하면서 형성한 캐릭터였을 테니 현실의 인물을 따랐을 것이다. 문학의 논리와 현실의 논리는 다른 법인데 그를 간과하고 현실의 논리를 설명 없이 가져다 쓴 것 같아 아쉽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연년세세의 네 작품을 모두 관통하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인 것 같다. 결국 순자씨가 전부 참으며 살아왔던 것도,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줄 수 있는 메시지도 이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깊은 삶의 통찰을 통해 드러난 말이다.

 

이 작품에서 모든 범위에 걸쳐 항상 연관 지어 등장하는 것이 가족이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려면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나온다. 가족은 서로 도움만 되는 존재는 아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기생하기도 하고 피해를 주기도 하며 무시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족의 단위가 커져 친척에게까지 넘어가면 그런 것들은 더욱 심해진다.

 

가족이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생존을 위해서이다. 연약한 시기에 생존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으니 가족한테는 더욱 배려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그런 사람이 가족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이순일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해야 할 만한 사람일까?

 

그 이야기를 확장시켜보면 가족이 반드시 필요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사회 통념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일 수 있다. 우리는 당연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가족을 끌어안아야 할까?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가족에서부터 벗어나면 각자 모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가족이 끈끈한 정이 아니다. 당연히 가족은 붙어있어야 한다는 통념과 생존이다.

 

<의도를 드러낸 것에 대한 아쉬움>

작가는 작품 중간중간에 다분하게 의도를 묻혀 놓았다. 단순히 이야기를 빈틈없이 구성해주고 독자들이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의도가 담겨있는 글은 경계되기 마련이고 몰입감이 떨어지게 된다. 다행히도 이 작품에서는 의도가 묻어나긴 하지만 못 읽을 정도로 크진 않았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지만 그런 부분은 무시하면서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의 의미를 형성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족 이야기로 읽을까?’라는 문구에서 작은 실망을 했다. 가족 이야기로 읽든 다르게 읽든 각자 독자들은 필요한 방식대로 읽는 것이다. 가족 이야기로만 읽으면 잘못 읽은 것이고 다른 이야기도 생각해 보라고 하는 듯한 뉘앙스를 받았다.

 

여성 인물들의 감정이나 일상은 묘사가 꼼꼼하게 이루어진 데에 비해 남성 인물들은 입체적이지 못하고 뭉뚱그려서 그려졌다. 그런 점이 작품의 입체감을 형성하는데 해가 된 것 같다. 주인공은 등장하는 여러 여성들이고 남성들은 그냥 단순하게 설정한 장애물 오브젝트 같았다. 남성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묘사되지 않고 그냥 그런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재미를 위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원하는 만큼 끊어 읽을 수 있는 감정 소설이었다. 작가의 말에 있는 대로 순자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였다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좀 더 의도를 덜어내고 작품으로써만 의미를 담아내 주었다면 독자들이 더 몰입하고 각자에게 맞는 해석을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선뜻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ddeu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