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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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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인 작품이 없다! 믿고 읽어도 되겠다! 4.5/5

 

무려 20년 전의 소설들임에도 고전적이라는 느낌이 없다. 그만큼 이 소설집이 당시에 얼마나 독창적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는데, 흡혈귀를 맨 앞으로 배치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김영하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맨 앞에 있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다.

 

<흡혈귀> 3/5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이 깔끔하고 완성도 높게 진행된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남편이 흡혈귀임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어차피 여자가 편지로 전달을 하기 때문에 사실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그래서 의미가 전달되긴 하나, 사건이 심화되지는 않는다. 심화되지 않는 내용이 길게 서술되면서 흥미가 유지되지 않고 지루한 느낌을 준다. 그 부분을 좀 줄이고 의미를 좀 더 형성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사진관 살인사건> 3.5/5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욕망을 표출하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아무에게나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표출된 욕망은 항상 나쁘다는 인식을 갖는다. 그러니 내밀한 남의 욕망을 캐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남에게 들키고 나면 그런 욕망은 파괴되어 버린다. 욕망이 파괴된 사람은 무언가 빠져나간 듯 이상해지기에, 욕망은 갖고 있으면 괴롭고, 이루면 파괴되는 아이러니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4.5/5

도시 속 사람들의 무관심과 철저하게 무시당하며 변화를 꿈꿀 수 없는 개인. 남에게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자신과 일치시키며 끊임없이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각자 삶이 있는 입장에서 그것은 쉽지 않다. 모두들 악의가 있지는 않을 테지만 쓸쓸함이 남는다.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갔다. 인물에 대한 구구절절한 정보 하나도 없이 사건을 깔끔하게 전개한다.

 

<당신의 나무> 5/5

씨앗이 머리를 쪼개듯 마지막까지 읽고 내 머리도 쪼개지는 듯했다.

사람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누군가를 서서히 파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대도 나를 파괴하고, 나도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관계는 단단해지고 버틸 수 있게 되고,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의지의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숴버리지는 않을지 두려워한다. 여행 중이라는 상황을 설정하여, 고된 여행 끝에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이런 깨달음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초반부터 주인공은 나무를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본다. 이런 나무에 대한 의미와 이미지를 함부로 바꾸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간다. 사원을 부수고 있는 나무를 보는 장면에서, 나무의 공격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나무의 의미만 바꾸어 형성한 것이 훌륭했다.

나비효과는 굉장히 독특한 연결 방법이다. 처음에 그릇이 덜컹거리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큰 사건 사고들까지,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주의 이야기를 들여오면서 나비효과가 한 반향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을 역전시킨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의 인과관계를 전부 하나로 묶어버렸다.

사원과 나무의 관계를 이용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보여주고, 나비효과를 이용해 누가 사원이고 누가 나무인지는 구별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피뢰침> 3/5

발상이 정말 좋은 소설이다. 말도 안 될 법한 소재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정말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이 부분은 정말 잘 이루어졌다. 그러나 강조되는 포인트가 아쉬운 것 같다. 처음엔 주인공이 번개를 맞았던 것이 트라우마가 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독자들은 주인공과 번개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소설 내에서 가장 강렬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인 낙뢰 여행에서 정작 번개를 맞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다. 주인공이 키스를 하며 번개를 좀 맛보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렬하게 묘사된 것은 주변 인물의 행위이다. 기승전결 면에서 다른 작품에 비해 완성도가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비상구> 4.5/5

이렇게 써야 청춘이지. 당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가늠이 안 되는데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고 참신하고 유쾌하다. 긴장감이 끝까지 한차례도 쉬지 않고 고조된다. 믿을 수 있는 곳이 하나 없는 이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때울 뿐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수 없다. 도망칠 곳 하나 없이 헤매다 겨우 비상구를 찾아도, 그곳은 비상구로 작용하지 못한다.

 

<고압선> 3.5/5

꼭 투명 인간이 아니어도 투명인간 마냥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가 투명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달랐을까? 투명 인간이 되는 조건을 좀 더 명확히 제시했으면 좀 더 긴장감 느끼며 봤을 것 같다. 그러나 긴장감보다는 쓸쓸함으로 보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하다. 무엇보다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와 어머니가 박박 긁는 장면이 가장 잘 드러난 것 같다.

 

<바람이 분다> 3.5/5

현실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한 채 살아가던 남자가 있다. 굳게 다져진 줄만 알았던 마음에 타인이 작은 흠집을 내면서 희망을 심는다. 남자는 믿지 않으려 했지만 희망은 달콤했고, 견고하던 그의 마음은 서서히 깨져간다. 심지어 이런 과정은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 희망이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현실의 한계를 인지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남자는 어떻게 되는가. 서서히 퍼지는 희망을 내버려 둔 것은 자신이기에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남자는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쓸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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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짧은 소설 3 : 괴담 (워터프루프북) 민음사 워터프루프북
김희선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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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에서 나온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참신하고 센스 있다. 8/10

 

책이 너무 센스 있게 나왔다. 미니픽션에다가 주제가 괴담이라니. 재미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이런 컨셉의 책들은 기본의 확실히 수요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설의 분야와 책의 종류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김희선

실제와 환상을 오가는 서술 방식을 채택해 신선하고 흥미롭다. 내용도 자극적이어서 쉽고 빠르게 잘 읽힌다. 평행우주 얘기는 좀 뜬금없고 안 섞이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 뒤의 설명이 참신한 결말이었다. 결말 없이 앞부분으로도 재미 있는 이야기였는데, 뒤에 있는 반전도 좋았다.

 

<민영이> 박서련

짧은 미니픽션이라 가볍게 읽는 것이 맞긴 하지만 너무 가벼워서 내용이 없다. 앞부분에서 묘사하며 뭔가 모를 이상한 분위기를 만든 건 좋았는데, 저런 반전으로 마무리할거면 차라리 앞에서 복선을 좀 더 깔아주었으면 좋을 것 같다.

 

<따개비> 이유리

따개비의 모습을 사람에게 사용해 기이한 분위기를 잘 형성했다. 소재를 잘 활용했다. 이미지 싱크가 딱 맞다. 짧은 이야기라 여유가 없었을 것은 알지만, 연희와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좀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 저렇게 될만한 이유를 적는 데에는 많은 글자가 필요하지 않다.

 

<> 임선우

그냥 이빨이 흰 벽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밀고 간 소설 같다. 개연성도 떨어지고, 소재 활용도 잘 안 된 느낌이다. 결말도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않았다. 그래서 이빨이 뭐 어쨌다는 건지 나왔으면 좋겠다.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성해나

? 이게 뭐지??

 

<푸른 연못> 남궁지혜

개연성도 이상하고 연관성도 잘 모르겠다. 어디서 본 것들을 조합해 놓은 모양 같다.

 

<얼음과 달> 문지혁

장기 얘기로 시선을 돌리고선 결국 붉은 달 엔딩. 방식은 좋았으나 붉은 달은 그 자체로 별로였기에.. 이야기도 별로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음 음주 운전자만 조심하면 되는 도로> 이혁진

ㅋㅋㅋㅋㅋ굉장히 재미있다. 못 빠져나오게 상황을 구체적으로 잘 짰다. 그래서 더 재밌다.

이대로 들어갈 순 없다며 상황이 역전되는 결말도 좋았다.

 

<재회> 나푸름

반전도 좋고, 싸이코 같은 남자가 여자 찾아갈 때 느껴지는 긴장감도 좋았다. 앞부분 설명도 적당한 비중이었다. 맥락이 벗어나지 않았다.

 

<여름 나라의 카디건> 장진영

생각의 흐름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좋다. 사유가 드러나는 부분도 타당하고 납득된다. 마사지 받을 때의 나른한 분위기와 그 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같은 문체에서 확연히 구분돼서 좋았다. 지갑에 정신을 쏠려놓고는 가디건을 없앤 것도, 지갑을 미리 가져갔던 이유를 밝히며 완성도도 높였다.

 

<변신> 김엄지

?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당신의 등 뒤에서> 이장욱

억지 투성이다. 다음으로 넘어갈 근거는 만들지도 않고 그냥 이렇다는 식으로 넘겼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쉽게 읽기 좋았다. 책 자체의 컨셉이 굉장히 좋아서 소설 전체의 평점보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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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어릿광대 - 지옥의 어릿광대 vs 아케치 고고로 국내 미출간 소설 18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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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재미있었다. 그러나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이었다. 3/10

 

<번역의 질>

번역이 완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이상한 문장도 여럿 보인다. 일반인이 일어 공부할 겸 번역한 영화 자막 같다. 읽는 데에 지장은 없다. 그러나 분위기 전달에 방해가 되고 몰입도가 떨어진다.

왜 번역을 이렇게 했는지 궁금해서 출판사를 검색해보았다. 외국 소설들, 그중 특히 일본과 추리 소설들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곳이었다.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좋은 외국 작품들을 번역하기 위해 출판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1인 출판사 같다. 번역해 출판한 책이 생각보다 많았다. 번역의 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이렇게라도 번역해주지 않았다면 아예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겠다.

 

<특이한 점>

초반과 중반, 후반의 분위기와 전개 속도가 다르다. 초반에는 분위기 형성을 중심으로 서서히 묘사한 것에 비해, 중후반은 사건이 점점 전개됨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얘기하며 빠르게 전개해 속도를 높였다. 완급 조절이 잘 되었다.

초반은 진행을 천천히 가져가고 있는데도 긴장감이 조성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주변을 묘사할 때 작은 점들을 잘 짚어내어 묘사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을 만한 요소를 많이 보여주어 분위기를 잘 형성했다.

중반엔 이미 분위기가 잡혀있으니 속도와 긴장감을 떨어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지 잘 선정해 필요한 정보만을 잘 담았다.

그러나 후반은 탐정인 인물이 줄줄이 다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결말이다.

 

전체적으로 인물이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새 인물이 등장하면 이전 인물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통해 복잡하거나 인물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명쾌하게 구분되었다. 단순 명쾌한 진행으로 몰입도 높고 빠르게 읽힌다.

 

주인공이 중반부터 등장한다. 큰 역할을 하긴 하지만 비중은 작은 편이다. 탐정이 등장하는 순간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기 마련인데, 앞에 중반을 탐정 없이 사건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뒤의 반절을 탐정이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눠 지루함을 줄였다.

 

<아쉬운 점>

전형적인 추리소설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말에 탐정이 줄줄이 해석해주는 것 또한, 인물들과 서술만으로는 숨겨진 내용을 말해줄 능력이 부족하니 탐정의 입으로 숨겨진 내용을 다 불어 버리는 방식이다. 기존의 추리 소설과 다를 것이 없다.

 

인물 간의 관계는 잘 설정했고, 탐정의 대사에서 연결성을 많이 부여하여 인물 관계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작은 요소들은 연결되지 않고 휘발성으로 사용했음에도 이상하게 강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인물들은 꼼꼼하게 사용한 것에 비해, 처음 차 운전 수는 도망간 이후 등장하지도 않는다. 미야코가 왜 장난감들을 이용해서 살인을 예고했는지 등장하지 않는다. 미야코가 활을 잘 쏘는 이유도 등장하지 않는데 소설 내에서 사용되었다. 미야코가 부른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미야코가 레이코를 매혹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었는지가 등장했으면 충분히 채워질 수 있던 부분이지만 그런 요소들을 타당한 정당성 없이 그냥 사용했다.

 

사건과 줄거리는 잘 잡혀 있는 데에 반해, 캐릭터는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미야코와 시라이가 허혼을 한 이유도 등장하지 않는다. 시라이는 약혼자 죽고 사랑하던 이가 실종됐는데, 연주회에 가고 동료 여자를 걱정하고 있다. 미야코는 치밀한 범죄자처럼 비춰지나 얼굴에 극약까지 뿌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놓고 레이코가 자기를 데려갈지 아닐지는 운에 맡겼다. 갑자기 뜬금없이 슬프게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레이코가 데려갈 만큼 레이코의 캐릭터를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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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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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는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쉽다. 5/10

 

사랑이 한 일은 창세기와 관련된 다섯 편이 실려있는 연작소설이다. 설정 및 인물은 모두 창세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차용했다. 인물이나 배경을 직접 설정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가져왔는데도 소설이 될 수 있는가? 작품을 한 편씩 읽어보고 소설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소돔의 하룻밤>

소설보다는 에세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문체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서사를 전개하는 것보다는 단편적인 장면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샷바이샷으로 멈춰놓고 다시 재생하며 한 장면을 반복해서 살핀다. 담겨있는 사유의 가짓수가 많아 한 번에 쓰면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여 파트를 다 나눠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한 파트는 또 사유를 얕은 데서부터 점차 심화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씩 다시 둘러보았다. 상황을 자세하게 보여주며 독자들도 이 문체에 같이 스며들어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소돔에서 일어난 일들은 현재에 이해하기 힘든 짧은 이야기일 뿐인데 이것을 이해하고자 깊게 사유한 것이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 시대의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부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사유했다.

그렇게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만 보였던 소돔 시민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문체와 서술하고자 하는 방식에 자연스레 익숙해질 수 있었다.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읽어야 의미가 확장되는 다른 네 편에 비해 스스로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하갈의 노래>

소돔의 하룻밤에 비해 작가의 말이 줄고, 하갈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일반적인 소설과 비슷한 문체가 되어 인물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맞는 적절한 문체를 골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 드러나는 인물이지만, 그곳에선 건조하게 보일 수 있던 인물을 상상력과 관찰력으로 이입해 보여주며 세심하게 채워서 이야기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사랑이 한 일>

작가는 위에서 에세이적 문체와 서사적 문체를 한 차례씩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묘한 지점에서 서술하기 시작한다. 화자는 아들인 것 같으나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심층적으로 장면들을 분석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인물에 이입해서 그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문체의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건조한 이야기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발상이 좋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풀어내기 위한 생각의 발전 과정이 꼼꼼하고 근거가 탄탄하다. 생각에 따라갈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던 일의 원인이 사랑에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면서,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에 사랑이 있다는 의미를 형성해낸다.

 

<허기와 탐식>

다섯 편의 작품 중 작가의 생각 흐름이 가장 허술한 작품이었다. 물론 허기와 탐식이라는 해석은 흥미롭고 다른 작품들과도 연결되어서 기발하고 촘촘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까지 발전하는 과정에 비약이 너무 많다. 다른 작품들에서 한 상황의 모든 면모를 보면서 천천히 생각을 쌓아간 것에 비해 세심한 것들을 무시하고 원하는 곳까지 생각을 밀어붙였다.

편애의 이유 즉 사랑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생성되는 것인데 어떠한 것은 단지 이유로 들기에 부족해 보인다며 고려해보지도 않고 배제한다. 좋은 음식의 맛은 그 사람의 기분에 변화를 주어 요리한 이의 정성에 관계없이 요리한 이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줄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마다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은연중에 그를 만나고 싶어하고 호감을 느끼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된다. 음식에 대한 특별한 기호가 사랑을 만든다는 말을 작가가 들어본 적이 없기에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근거가 빈약하다. 특별한 음식은 동질감, 유대감 등 다른 많은 감정을 이끌어내어 충분히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의 뒤로 갈수록 허기와 탐식에 관련된 사유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긴 한다. 그러나 작품 초반에 의미 없이 서술된 비약이 담긴 부분들이 좋은 구조로 보이진 않는다. 다른 작품들처럼 천천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억지로 논리적이지 않은 초반 분량을 늘린 것 같다. 이런 작가의 논리들이 소설이라서 성립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비겁한 것이다. 서사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 흐름과 논리를 소설이라며 근거와 상관없이 써냈기 때문이다.

앞의 다른 작품들에서 쌓아온 인물의 특징이 다 사용되어 가장 감정이 풍부하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앞의 작품에서 이해하고 왔기 때문에 하갈과 이삭의 마음이 와닿았고, 그로 인해 이 소설에 야곱과 아벨이 중심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인물이 공감되며 몰입되었다.

 

<야곱의 사다리>

창세기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삽입된 에필로그다.

 

 

각 작품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잘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생각 흐름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드러내었다. 작가 사유의 근거고 탄탄했기에 참신한 작가의 발상들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감정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작가의 사유 외에는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것들이 들어있지 않다. 내가 느낀 인물의 감정들도 작가가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캐릭터, 줄거리 전부 창세기에 원래 있던 것을 차용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고 자신만의 인물을 만들지 않았다. 이미 있는 이야기를 내 식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쉽다. 소설을 잘 썼고 공감도 잘 이끌어 냈고 많은 사유를 하고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였다는 건 알겠지만 그 사이에 상상력만 잘 불어 넣었다고 해서 완전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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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아 외 지음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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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색이 바래버린 밍밍한 작품들을 모았는지 신기하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 정지아 (1/5)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해냈다. 알코올 중독인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생활하는지 관찰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병원에 가지 않는지, 끊임없이 술을 먹는지 내면의 자세한 부분들은 묘사가 되어 있지 않다. 알코올 중독자를 관찰하는 소설이라면 내면이 중요한 법인데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내면을 이해할 없다는 결말을 맺어버렸다


앞에서는 언급이 없다가 뒤에서 전개되는 것들이 있다. 대개는 캐릭터의 과거에 대한 얘기로 캐릭터 구축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런 언급을 뒤에서 하게 되면서, 캐릭터가 계속 재설정되었고 그래서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


<3구역, 1구역> - 김혜진 (2/5)


주인공이 화자로서 서술하면서 주인공의 캐릭터도 드러났고, 그런 주인공이 너를 계속 묘사하면서 너의 캐릭터도 구축되었다. 특히, 너와 주인공과 고양이의 관계를 교묘하게 엮어서 둘의 관계가 더욱 돋보인다

초반에는 고양이를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고양이의 힘이 약해지자 둘의 연애 관계로 확장시켰다. 그러나 중후반부터는 둘의 관계에 힘이 급격히 빠진다. 진전없이 똑같은 방식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결국 둘의 마음은 더욱 진전되지도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끝을 내버렸다. 결말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이야기가 급격히 약해졌다.


<신세이다이 가옥> - 박민정 (1/5)


설명하기 보다는 장면이나 에피소드를 보여주면서 경제적이고 재밌게 신빙성을 높였다

필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까지 등장시키면서 정리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 인물들이 복잡하다. 그래서 인물 명에게 더욱 집중하지 못하고 캐릭터들이 살지 못했다

사건이 없다. 소설에서 가장 메인 사건은 야엘이 돌아와 집을 보는 뿐이다. 거기다가 부분은 분량이 굉장히 적다. 외의 부분들은 주인공이 야엘과도 별로 상관없는 과거 회상이 대부분이다. 보고 있으면 그만큼 트라우마가 생길정도의 강렬한 사건도 아니다. 이런 현재와 별로 상관 없는 누구나 겪었을 만한 과거 회상과 빈약한 사건은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지 못한다.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 박솔뫼 (1/5)


문장이 굉장히 복잡하다. 서술과 대사를 섞고, 개연성을 신경쓰지 않은 문장들을 나열하면서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진행 방식도 연결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각 흐름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래서 현실감각도 개연성도 없는 문장이 되풀이 되어 몰입도가 떨어진다. 작용하지 않는데 들어간 문장들도 많았다. 그런 문장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서 흐리게 만들고 전체적으로 작품이 흩어져있게 만들었다.

초반에도 등장인물이 여럿인데 인물들의 정보를 길게 담으면서 설명적이 되었다. 누구에게 집중해야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특징도 도드라지지 않아서 인물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그만두는 사람들> - 임솔아 (2/5)


흐름이 자연스럽고 물흐르듯 진행된다. 그만두는 것과 떠나는 , 그리고 뒤에 남는 연한 관계를 드러냈다. 노루섬을 포함해 은은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러나 작품 전체가 너무 약하다. 강렬하거나 크게 기억남는 곳이 하나도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물탄듯 약하게 진행되어서 매력이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연수> - 장류진 (2/5)


캐릭터가 재미있게 설정되었다. 운전에 대한 묘사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신빙성이 높았다.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친근하게 묘사해서 재미있다. 글에서 유쾌함이 느껴졌다. 현실을 고려해서 썼고, 개연성도 좋아 술술 읽혔다.

그러나 결말이 성장소설처럼 끝나버려서 작품이 심화시킬 있던 소재들이 하나도 살지 않았다. 실패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이나, 연수 이후의 변화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작품은 킬링타임 용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 사정> - 조경란 (1/5)


뻔하고 흔한 소재로 그저 그런 글을 썼다. 이런 글이 세상에 나오려면 이미 널려있는 비슷한 작품들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특별한 점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것을 조금 비튼다고 해서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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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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