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의 시대 - 길들여진 어른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자화상
이승욱.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계간지 문학동네에서 이승욱의 글을 읽었다. 아이들의 삶과 학교에 관한 글이었다. 흥미롭게 읽혔다. 그의 분석은 매우 공감이 되었고, 자신의 삶의 서사를 펼쳐 놓으며 성찰적인 글쓰기를 하는 방식도 감동적이었다. 학교가 치명적 사건이었던 학생에서, 교사, 심리학자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실천해왔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에 이승욱이라는 인간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에게서는 스승의 향기가 났다.(실제로 그를 멘토라 칭하며 찾아오는 이십 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멘토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그리고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 발달심리학에 대해 공부해보라며 추천 받았는데, 몇 번 들어보려고 했으나 크게 호기심이 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 대한민국 부모책 소개 방송편을 들었다. 역시 그 책도 읽어보라고 권유를 받은 적이 있으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계몽적(?)인 느낌에 흔한 자녀교육서 중 하나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책 소개 방송을 듣고서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 책은 심리학자와 사회학자가 함께 대한민국의 부모가 걸어온 삶의 서사를 관찰해 써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회심리적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 부모가 지금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인 것 같았다.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오후에 도서관에 앉아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을 펼쳤는데, 이론서의 난해한 문장들과 배부르게 먹은 점심탓인지 자꾸만 졸렸다. 게다가 11시 방향 앞자리에 앉은 하얗고 토실토실한 남자가 자꾸만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졸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검색으로 이승욱을 찾았다. 대한민국 부모는 대출중이었고, 가장 최근작으로 보이는 애완의 시대가 있었다. 머리말부터 빨려들듯 재미있게 읽혔다. 이 책 역시 김은산이라는 필명의 사회학자와 함께 쓴 책이었기에 풍부한 삶의 서사들이 들어있었다.(대한민국 부모도 같은 맥락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잠은 달아나고, 깊이 몰입해서 주요 내용을 메모하며 읽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먼저 1970년대라는 과거에 고착되어 있는 5~60대에 대한 분석에서는 자꾸만 나의 어머니가 겹쳐졌다. 잘산다는 것이 문화도, 배려도, 나눔도 없이 그저 혼자, 내 가족만 잘 멀고 잘사는 것이었던 그들. 작은 것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발버둥치며 불안과 두려움을 대물림했던 우리의 부모.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은 부모의 인정을 갈구하고 눈치보는 유리멘탈여성이나 모든 경험을 머릿속에서 끝내는 시뮬레이션남성으로 자랐다. 나는 때로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고 답답해하며, 때로는 나의 어머니를 항변하며 이 책을 읽었다. 눈물이 났다. 좁은 벽 속에 갇힌 것 마냥 좁은 사고의 틀에 갇힌 우리 엄마의 삶이 갑갑하고 서러워서.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2012년 대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책은 2012년 대선의 패배를 저자 나름대로 애도하고 이해해보기 위한 책이 아닐까. 현실을 받아들이고,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해보고자 하는 심리학자의 노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에게 표를 준 이들의 인생서사 안에 숨겨진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들이 내 부모로, 이웃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상처받은 여성 박근혜에게 감정이입하는 그녀, 갑자기 죽어버린 박정희와 함께 잘살아보세를 이루지 못한 미완수감을 가진 그. 그나마 삶의 연속성이 남아 있던 70년대의 공동체와 전통의 향수를 박정희 시대에 이입하여 고착화된 그들. 그들과 우리는 70년대를 제대로 평가하고 공과를 정리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자꾸만 퇴행하여 그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자리가 바로 직면하고 해결해야하는 지점이라는 뜻. 우리는 지금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인 시대를 맞아 정확히 그 지점으로 퇴행해왔다. 이것은 기회일까.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그 시대를 다시 불러내 공과를 점검하고, 신화를 깨뜨린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2012년 대선 결과 앞에서 저자는 끝내 울고 말았다. 그런데 그 때 저자가 떠올렸던 한 농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뭉클하다. 경상도 작은 시골마을 무지랭이 50대 농부. 그러나 그는 김대중 지지자였다.(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뽑힌 그 선거 시점) 당시 그곳에서 김대중 지지자가 되는 것은 마을의 왕따를 자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20년 전 우연히 김대중의 대중 연설을 미디어로 듣고 나서 그의 지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직접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박정희를 보면서 김대중이 옳다는 것을 알았고, 김대중을 보면서 박정희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20여년 마을 사람들의 모멸과 냉대를 받으면서도 단 한번 흔들림도 없이 김대중을 지지했다고. 저자는 그 농부를 떠올리며 지금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한다.

그렇다. 2012년의 대선 결과 앞에서 우리 모두(우리 중 일부?)는 각자 나름대로 무언가 마음을 추스릴 것이 필요했다. 기대고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나는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두 책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으려 했던 것일까.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 5년간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똑똑해지고, 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더 강한 마음과 신념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명한 전선, 대립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우리나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들. 사실 그들은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우리였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애완의 시대그들사이에 놓인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들어머니로 구체화되었다. 이해의 출발점은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나의 어머니와 또다른 어머니, 아버지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과거를 떨치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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