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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자연과 만나요 - 우리 동네 자연 이야기 ㅣ 녹색손 자연 그림책 1
임종길 글.그림 / 열린어린이 / 2011년 11월
평점 :
오늘 밭에서 올해 마지막 수확으로 갓과 시금치를 가져왔습니다.
봄부터 내내 상추며 오이, 호박, 가지를 실컷 따다 먹고는 얼마 전에는 무와 배추로 김장도 했는데, 다음 봄까지는 안녕이라니 고마우면서도 섭섭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밭에 다니다보니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확연합니다. 씨앗만 뿌려주면 때맞춰 피고 열매맺고 지는 식물들이 어찌나 신기하고 기특하던지 "니들이 사람보다 낫다."는 소리를 몇번이나 했더랬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열두 달의 풍경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네요.
십일월- 텃밭에 서리가 내렸어요
힘차게 뻗어 가던 호박덩굴 잎들이 검게 시들어 버렸습니다. 주변의 풀들도 생기를 잃어 갑니다.
하지만 텃밭에는 아직도 푸름이 넘칩니다. 배추와 무는 제철을 만난 듯 속을 채웁니다.
겨울을 이겨 낼 딱새와 오목눈이는 부지런히 먹이 사냥을 합니다.
밭고랑에서 죽어 있는 어린 박새를 발견했습니다. 늦가을이 쓸쓸합니다.
우선 들추어 본 십일월 풍경에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검게 시든 호박덩굴이 아쉬우면서도 속이 꽉 찬 배추 그림에 쿡쿡 웃다가, 눈을 꼭 감고 죽어 있는 박새 모습에 뭔가 다시 허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늦가을이 쓸쓸해서^^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 봄이 올락말락하는 이월부터 보기 시작했지요. 우유 팩으로 만든 먹이통에 찾아든 박새들(십일월에 죽은 박새도 있었을까요? ㅠ.ㅠ) , 삼월의 봄꽃들, 사월의 화사한 개복숭아꽃, 오월의 녹색, 유월의 뱀딸기, 칠월의 하얀 노각나무꽃, 팔월의 매미, 구월의 들깨 호박 수세미, 시월의 열매들, 십일월의 무배추, 십이월의 텅빈 논, 일월의 겨울눈까지 열두 달이 후딱 지나갑니다.
이 책은 자연도감과 같이 풍성한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림도 세밀화처럼 정교한 그림이 아니구요. 대신 '우리 동네 자연 이야기'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을 잘 설명해 주는 듯하네요. 이 책은 저자인 임종길 선생님이 자신이 사는 동네의 계절과 자연을 담은 사적인^^ 기록입니다. (책 뒷부분에 마을 약도로 보아서 작가님이 사시는 수원 어느 동네겠네요.)
그림도 색연필로 슥슥 그린 그림, 수채화, 때로는 세밀화 못지 않은 그림 등등 그때그때 그려서 모아놓은 듯하구요, 그리는 대상도 새, 곤충, 꽃, 풀, 씨앗, 열매, 논, 밭 등등등 동네 풍경이 다양합니다. 종이와 펜을 들고 산책을 하면서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는 동네 주민의 애정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죽은 암컷을 끌어안고 있는 산개구리라든가, 복숭아꽃 수술을 하나하나 떼어 40개라는 걸 확인하고, 동그랗게 말린 잎 속에 들어 있던 거위벌레 애벌레나 때까치가 나뭇가지에 꽂아놓은 메뚜기를 볼 수 있는 거겠죠.
이제 곧 다가올 십이월의 풍경- 벼를 벤 논은 조용하고, 벼와 함께 자라던 개구리 물방개 같은 녀석들은 어딘가 숨어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마지막 달. 달마다 책을 펼쳐보면서, 우리 동네도 열심히 관찰해야 겠어요. 겨우내 무, 배추, 시금치를 열심히 먹다보면 또 봄이 오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