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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 반비 / 2011년 8월
평점 :
어제,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거리 수업이 있었다. 학교 행사 준비로 참여하지는 못해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학내 곳곳에 소자보가 붙었을 때부터 기대감과 착잡함이 뒤섞인 심경으로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방학동안 당사자인 우리들 대학생조차 잊고 지낸 등록금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 일단 반갑고 어떤 결과를 낳을 지 기대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착잡했던 이유는 학생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다른 문제도 아닌 돈 문제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또 그런 고민들이 쉽게 이용당한 후 버려지는 현실 때문이었다.
지난 학기에 몇몇 교수님께서 너희가 다 들고 일어서면 될 거라고, 교육이라는 영역은 그 어떤 부분보다도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실 때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은 분명 나 말고도 여럿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사회라는 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성숙하지 못한 자의식과 험한 미래를 힘겹게 등에 지고 극히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온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함께 행동하는 우리라는 개념은 안개처럼 아스라이 존재하기는 하되 손에 잡히지는 않는 성질의 것이었기에 그 힘을 믿지 못했었다. 그래서「문화로 먹고살기」에서 연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제야 문화로 먹고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제대로 가는 길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현실을 아는 것과 그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잊고 지냈던 나의 안일함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월급제를 도입한 어느 극단의 경우, 월 30만원정도를 지급한다고 한다. 이는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360만원이고,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업계 분들의 반응이 그 정도라면 신인기준으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 했다던 대목이었다.
연극인을 꿈꾸던 친구가, 대본을 들고 고치며 눈을 빛내던 그 친구가 어느 날 꿈을 포기하겠다는 심경을 넌지시 비추었을 당시 내가 얼마나 내 편한대로 생각하고 판단했었는지, 그 친구가 옆에 있다면 사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그런 지경까지인 줄은 몰랐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가끔 볼 기회가 있는데, 각 무대마다 주제와 방식은 달라도 배우의 열정만큼은 어느 무대에서건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연극인들은 그들이 선 그 무대자체가 그들의 전부이기 때문에,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대로 된 밥을 먹지도 못하면서 무대에 선다.
그리고 이는 연극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방송도, 텍스트도, 음악도 그리고 스포츠도 산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허리는 휠대로 휘어 위태롭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한민국이 앞으로 주력해야 할 산업은 겉만 번지르르했지 절대소수의 부를 부풀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품 토건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문화라는 사실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당장 그 결과가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실개천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처럼 천천히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확신한다.
그 친구를 만나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가 무대에 서는 꿈을 이야기할 때 네 눈 아니, 너라는 존재 전체가 반짝반짝 빛이 났었음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노라고, 그리고 그때는 네가 가진 고민을 제대로 알지 못해 아무런 위로도, 그리고 내 솔직한 심정도 말하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혼자서 가슴터지도록 고민하게 내버려두지만은 않을 것을 약속한다고.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미래를 다시 꿈꾸었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