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맺음에 서툰 당신을 위한 심리학 - 잘 끊고, 잘 잊고, 다시 시작하는 법
게리 매클레인 지음, 신동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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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든 회사나 다른 무언가와의 관계든 좋든 싫든 끝을 맺어야 할 때가 온다. 차라리 회사 생활이나 연애의 마무리는 형태가 명확해서 상대적으로 끝맺음이 쉬운데, 친구나 다른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지가 않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친했던 누군가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소원해지거나 혹은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하는데, 더 어릴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마음이 마냥 안 좋았지만 요즘은 ‘시절인연’이라는 말에 기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반갑게 만나겠지 하며 덤덤하게 넘기기도 한다. 

서로의 의지로 제대로 인사하고 관계를 끝낼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하게 세상을 떠나 마지막 순간이 갑자기 찾아오거나 마지막인 줄 몰랐는데 사이가 서서히 멀어져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 사람과 직접 작별 인사를 할 수는 없더라도 내 안에서 그 관계를 제대로 마무리할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불어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끝을 맺어야 할 때의 마음가짐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결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종결짓기를 바라는 마음이 상황을 해결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좌절과 더 큰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결짓지 못한 데 따른 고통이라도 결국에는 개인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될지 모른다.      31쪽


뭔가가 제대로 끝맺지 못하면 계속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게 내 개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뭐든 제대로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리고 마무리를 짓는다는 게 심리적으로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정신이상의 정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마 꽤 우습다고 여겼을 테지만 정신 건강 전문가 입장에서 이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내담자들의 삶에서 흔히 목격하는 아주 슬프고 안타까운 실제 사례다.       57쪽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은 막연하게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여러 번 깨달았다. 책에서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끝내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성향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는 사례를 들었는데, 나는 그 사례들을 읽으며 그동안 이직했던 과정들을 떠올리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과하면서 죄책감만 언급하고 책임감은 언급하지 않거나 반대로 책임감만 언급하고 죄책감은 언급하지 않는다면 용서를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보상은 안 하면서 단순히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사과하는 것 같거나, 잘못을 저지른 건 아는 듯하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과받는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쾌해질 수 있다.       124쪽


반성문이든 사과 메일이든 시말서든 뭔가를 잘못하고 글을 써야할 때는 죄책감과 책임감 두 가지를 모두 담아야 제대로 전달이 된다는 걸 이 책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머리로는 알아도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니 뭔가를 잘못했을 때 두 가지 모두를 담아 사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용서받을 수는 없다. 고인이 남긴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관계를 종결짓는 건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떠나보낸 뒤에는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용서받기에는 너무 늦었다. ... 종결은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는 이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128쪽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해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는데 내가 제일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그 사람이 없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종결의 한 형태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대방과 나눌 대화를 예행연습하는 건 실패의 길을 준비하는 일이다. 왜일까? 현실에서는 타인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계획대로 강요할 수 없다. 자신의 계획대로 상대를 밀어붙인다면 대화에 장벽을 세우는 셈이다. 연극 무대가 아닌 다음에야 예행 연습을 거친 대화는 보통 아무런 성과가 없다.        180쪽


전화 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메일이나 문자에 비해 전화는 여전히 장벽이 높아서 나는 누군가랑 통화하기 전에 할 말을 미리 정리해두는 편이다. 불편한 주제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거나 통화를 해야할 때 미리 대화를 시뮬레이션 해볼 때가 많은데, 내 마음이 편해질 뿐 상호작용면에서는 썩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동안 상대방의 반응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내려고 했던 건 아닌지 살짝 반성하기도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종결을 더 이상 시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이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을 내담자들의 사례로 자주 경험한다. ... 종결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계속된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위태로워진다면 외면하고 떠나는 힘든 결정을 고려할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240쪽


깔끔한 마무리를 바라는 건 좋지만, 그 종결을 고집하다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칠 정도라면 방법을 바꾸거나 종결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좀 복잡했다. 종결을 시도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 중 뭐가 더 마음 상하는 일일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책에서 말한대로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의식하며 살아야겠다. 


여전히 끝을 맺는 일이 조금은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으며 나한테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왠지 마음이 좀 놓였다.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앞으로도 대상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의 관계의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 계속 있을텐데, 그럴 때 한 번씩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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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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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놓치게 될까봐 종종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과 방영 예정작을 살펴본다. 이번에도 하반기 방영 예정작을 둘러보던 중에 <당신이 죽였다> 예고편을 보다가 내용에서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작품 소개를 찬찬히 살펴봤더니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나오미와 가나코>가 원작이라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큰 스토리라인과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나서 <당신이 죽였다>를 보기 전에 책을 다시 한번 읽기로 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제거하기로 두 친구가 공모하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마무리될지 짐작할 수가 없어서 계속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오쿠다 히데오 치고는 좀 허술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후반부터 책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조마조마하게 다 읽고 나니 “결말을 어떻게 할지 작가도 마지막까지 고민한 소설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마지막 페이지에 붙어있었다.


성격은 굳이 말하자면 정반대다. 가나코는 부드러운 데다가 조심스러운 편이고, 나오미는 당차고 딱 부러진 구석이 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일 년에 몇 차례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관계는 여전하다. 아마 평생 친구일 거라고 나오미는 생각했다.


“본인이 할 수 없다면 부모 형제가 대신 보복해요.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남편한테 폭행을 당했고, 내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상태라면 큰오빠가 캐나다에서 달려와 처리해 줄 거예요.”

“굳이 캐나다에서 와서요?”

“당연하죠. 가족이 없다면 가까운 친구가 도와주죠. 그게 우정입니다. 아닌가요?”


나오미와 가나코는 서로에게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나코를 안타깝게 여기는 나오미의 마음과 그런 나오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가나코의 모습이 처음에는 안타깝다 못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나오미의 고객인 리 사장의 입에서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희망이 좀 보였다.


‘어젯밤에는 정말 고마웠어. 걱정시켜서 미안. 나는 괜찮아. 얼굴의 부기도 많이 가라앉았어.’

그 짧은 내용에 나오미는 슬픔이 솟구쳤다. 이 간결한 문장을 쓰는 데 삼십 분이나 걸렸을 리 없다.


10년 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는 폭력 상황에서 벗어날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주변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가나코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오미의 말대로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었고,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가나코의 말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별을 고했다가 죽음을 당했던 많은 사건들을 봐서 그런지, 가나코의 상황이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로 느껴져서 두 사람의 공모에 더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다쓰로가 살아 있는 한 가나코는 계속 위협을 받는다. 그렇다면 다쓰로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어떻게든 가나코를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꺼내주고 싶은 나오미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지만, 가나코는 이미 너무 무기력한 상태다. 가나코 본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신고하거나 도망치면 가족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남편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결국 한 가지로 모아진다.


“가나코가 바라는 건 뭐야?”

“평범하게 살고 싶어. 밤이면 꼬박꼬박 잠을 자고 맛있는 물만 먹을 수 있으면 돼.”

지금의 가나코는 평범한 일상조차 소중한 것이다.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주먹을 휘두르고 뜨거운 걸 끼얹을지 모르는 남편과 사는 가나코의 소원이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나오미와 비슷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아무리 그래도 죽이겠다니 너무 급발진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했는데, 읽을수록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이 드는 악랄한 남편이었다. 


‘죽인다’는 말을 피하고 싶어서 ‘제거’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다. 표현의 문제는 중요하다. 특별히 다쓰로를 죽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본인이 병사하거나 자살이라도 해주는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니까 차선책으로 이쪽이 제거하는 것이다.


애초에 남편을 죽이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도 두 사람이 가나코의 남편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담아서 죽이겠다고 결의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가나코가 예전의 평범한 생활을 되찾을 수 있도록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평범한 삶에 가장 해가 되는 뭔가를 제거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나 생각하던 나도, 나오미의 말에 완전히 설득 당해 나중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기도 하는 남편 제거 계획이 무사히 실행되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었더니, <당신을 죽였다> 예고편에 나왔던 ‘가장 절박한 공모, 가장 불안한 행복’이라는 말이 이 소설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내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지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인물, 다른 장면에 더 공감하며 읽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이미 읽었거나 아직 읽지 않았거나, 영상으로 보기 전에 먼저 읽어 두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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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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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술이랑 별로 가깝지 않다. 일단 주량이 가소로워서(주종 상관없이 2cm, 섞이면 1cm)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만큼 마실 수가 없다. 내가 직접 적극적으로 술을 찾아 마시지는 않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때나 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의 술(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해서 종종 술 관련 책이나 영상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이 책에도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의 원작 작가님이 술에 대한 애정을 담아 그리고 쓴 술 만화 백과라니. 보나마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술 지식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술에 관심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알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양술과 동양술로 나누어 20종류의 술을 소개하고 있는데, 막연히 회식에서 자주 접하던 동양술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했더니 의외로 서양술 쪽에 아는 이름이 더 많았다.


과로가 너무 당연하던 시절, 내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그 시절 느긋하게 마실 여유 따위 없이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다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폭탄처럼 취기가 확 터지는 이 술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폭탄주>


워낙 술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깊은 분이다보니 술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 술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다 재미있었다. 흑역사도, 폭탄주가 넘실거리는 회식도 잘 못 견디는 공통점을 발견해서 괜히 더 반갑고 내용에도 깊이 공감했다. 대체로 웃으며 읽다가도 어느 순간 찡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폭탄주 파트가 그랬다. 회식은 알쓰에게만 괴로울 줄 알았더니, 술꾼들에게도 즐길 수 없는 술자리가 괴롭기는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40도쯤 되는 위스키를 샷으로 마시면 우리의 소중한 내장 기관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 이렇게 마시면 맛도 충분히 못할 뿐더러 식도와 위장에도 무리가 가므로 마시는 방법을 바꿔야 했다. <위스키>


40도가 넘어가면 그냥 에탄올 아닌가요... 하며 애송이 같은 소리를 했더니, 바로 뒤에 75도짜리 바카디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는 이야기가 이어져서 눈을 의심했다. 괜히 위스키를 이리저리 뭔가랑 섞어서 순하게 만들어 마시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인간은 참 자기중심적인 종족이라 어떤 사물을 봐도 거기서 얼굴을 찾아내는 습성이 있어 매대에 놓은 수많은 와인 중 사람 얼굴이 보이면 저절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얼굴 레이블의 와인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 <와인>


어디선가 라벨에 사람 얼굴이 그려진 와인을 보고 이런 것도 있다며 신기해 했었는데, 그 내용도 책에 나와서 더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에도 놀랐고, 거기에 마케팅적인 의도가 섞여 있다는 것에도 새삼 놀랐다.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삶의 지혜를 하나 알려드리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소문을 내자!

그게 나에게로 올 것이다! <고량주>


이 방법으로 작가님에게는 고량주가 모여들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고양이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간 물건들이 우리 집에 곧잘 들어오는 것도 이 원리인 것 같다. 앞으로 돈을 좋아한다고 더 가열차게 소문을 내고 다녀야지.


희석식 소주는 술맛 자체가 뛰어나거나 개성이 있진 않습니다만

지글지글 기름진 고기에도 잘 어울리고 쫄깃한 회나 해산물과도 잘 어울리고 매콤한 볶음이나 국물에도 아니, 그냥 아무 밑반찬에도 잘 어울리는 술이지요. 뒤로 슬쩍 물러나 안주를 돋보이게 해준달까요.

<희석식 소주>


무래도 스스로 술을 찾아 마시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회식 자리에서 자주 봐서 제일 익숙한 초록병 소주 파트를 읽으면서, 드디어 아는 술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었다. 진로 소주의 도수가 1920년대에는 무려 35도였다고 해서 놀라웠다. 100년 동안 야금야금 20도나 떨어져서 그나마 나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막걸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 삼국시대 이전부터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명칭의 유래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막 걸러'서 막걸리. 여기서 '막'은 '방금'도 되고 '마구'도 된다. <막걸리>


막걸리가 오래됐을 줄은 알았지만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도 역사가 더 오래된 걸 알고 놀랐다.


올해도 나는 매실주를 담글 것이다. 이번엔 망각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 훗날 즐겁게 기억할 수 있도록 올해도 술을 담가야지.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매순간을 즐겨야지. <매실주>


큰이모가 매년 매실청을 만들면서 이 짓도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얘기를 매년 반복하시는데, 작가님도 매실청 대신 매실주를 담그면서 매년 같은 말씀을 하신대서 웃었다. 어느 해에 담근 매실주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다 같이 열자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괜히 뭉클했는데, 아이가 시크하게 그게 그때까지 남아있겠냐고 하는 걸 보고 터졌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서 그런지 역시 부모님잘알...


누군가가 지극히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열정적으로, 심지어 재미있게 펼치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왠지 나도 심정적으로 술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마음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주량이 늘지는 않았을 테지만, 가까운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고를 때 더 적극적으로 참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검은 속내).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나처럼 술과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도 다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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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
임희재 지음 / 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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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자주 본다. 여행자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생활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보고 싶어서인데, 같은 도시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아서 흥미진진할 때가 많다. 책도 되도록 한 나라 혹은 도시를 보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다양하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내가 겪어보지 않은 어떤 대상의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는 내가 가본 적 없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14년간 생활하며 겪고 느낀 이야기가 담겼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쓱 훑어보기만 해도 프랑스의 다정한 이웃들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왠지 겉으로 대충 봤을 때는 도도하게 느껴지는 프랑스 사람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내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혼자 살았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으레 이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어떻게 했느냐고. 내가 입 밖으로 꺼내는 답은 항상 같다.

"이웃이 있었죠." 18쪽


자정 가까운 시간에 두꺼비집 때문에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변기가 막히는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프랑스인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따뜻한 이웃들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작가님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노자로 2년 반동안 혼자 살았지만, 생활을 시작하고 곧 직장 동료며 동네 친구가 생겨서 완전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기간은 초반 한 달 정도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은 특별히 없었고, 드물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안 되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었다. 아마 그때 모르는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했어도 매몰차게 모르는 척하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들었다.


프랑스인은 대화에서도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장려하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핏 보면 실랑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진심을 다해 의견을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항상 상대를 존중했다. 36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실랑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심을 다해 의견을 나눈다는 게 실제로 어떤 건지 궁금했는데, 이 책과 함께 읽었던 프랑스 소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를 읽으며 실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당신 의견은 정말 쓰레기 같지만, 이런 부분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하는 식... 아무래도 소설이라 더 과장되거나 극단적으로 표현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어떤 느낌인지 좀 알 것 같았다. 두 권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래도 프랑스에서는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과 있으면 대화를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소심하고 얌전해서 나와 잘 맞았다. 메탈 뮤지션들 특성 같기도 하다. 시끄러운 음악을 자주 듣고 연주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향적인 성격을 강한 음악으로 푸는 건지, 어느 나라를 가든 메탈 뮤지션들은 대부분 우리 멤버들처럼 차분하고 점잖았다. 64쪽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와 독일에서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경험할 일 없는 프랑스 음악원이나 메탈 페스티벌의 무대 뒷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메탈 뮤지션들이 대부분 차분하고 점잖았다는 부분을 읽으며 의외라고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가 대기실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절간 같아진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다들 무대에서 에너지 할당량을 다 쓰고 내려오니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자신의 할 일이 끝나면 쿨하게 갈 길을 갔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다정함이 남았다. 그 마음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전했을 것이다.


다정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읽다 보니 작가님도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책에서 읽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대가없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는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부터 그런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에 나오는 다정한 사람들의 다정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하루를 정리하며 읽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출근 지하철을 타야 할 아침 시간에 다정할 결심까지 해야 하는 건 좀 가혹하고 벅찼을 텐데, 험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래도 어딘가에는 이렇게 다정한 세계가 있다는 위안을 얻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직도 프랑스를 향한 마음의 거리를 완전히 다 좁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작가님이 만났던 다정한 프랑스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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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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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멀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한테는 식물이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과 달리 가까이할 수는 없는 사이다. 화분 파시는 분이 ‘얘는 불을 붙이지 않고는 못 죽일 거’라고 안심시켜주셔서 데려왔던 화분조차 빈사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거의 구급차에 실어 보내는 수준으로 엄마한테 보내서 겨우 회생에 성공하기는 했는데, 나와 식물은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집에 들였던 식물은 테이블 야자였는데, 초반에 우리집 고양이가 머리채를 잡아도 튼튼하게 잘 버티더니 곧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 엄마 손으로 떠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에는 실제 식물을 들일 수 없어서 식물 이야기나 그림이 담긴 책을 두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가끔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멋진 식물 그림이나 사진이 실린 책이 보이면 눈여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 읽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도 그림에 먼저 눈이 갔다. 소개를 읽어 보니 그림만큼 내용도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59가지 식물들의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담겨있다. 각각의 식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풀어낸 짤막한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했다. 단풍나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 뒤에 숨어서 시간을 너무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남과 비교하지 말자거나 자기 자신답게 사는 것에 집중하자는 취지의 말은 여러 경로로 읽어왔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곧잘 남과 비교해볼 때가 많은 나는 그때마다 공감했었다. 이 책에 나온 식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특히 “나무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소중한 엽록소를 낭비하는 법이 없다“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책에는 나무들의 여러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 강철만큼 단단하고 견고하게 견디는 흑호두나무와 태풍이 불어오면 부러 휘어지는 또 다른 나무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자세 중에서 꼭 하나만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나무도 있어서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위로를 많이 받았다. 견고하게 버텨야 할 때와 휘어져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주변 나무를 챙기는 우산가시 아카시아나무의 이야기도 신기했고, 주변에 다른 나무들이 살아갈 공간을 내어주는 물푸레나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름이 익숙해서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무들도 새로운 모습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나무가 견뎌왔을 4억 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것이었을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유연하게 진화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출퇴근 길에 늘 보는 나무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여러 나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닮고 싶은 점들을 많이 찾았는데, 자작나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80년 정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자작나무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쁜 나무 일러스트를 보면서 눈호강을 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나무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위로를 받았다. 지금 읽으면서 특히 더 인상적이었던 나무들이 몇 있었는데, 아마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부분에서 위로를 받게 될 것 같았다. 

책이 사철제본이라서 책등에 제목을 넣으려고 띠지를 두껍게 한 건가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띠지 안쪽에 이렇게 멋진 그림이 또 잔뜩이라서 어디에 붙여놓고 싶은 심정... 누구나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나같은 일희일비의 아이콘이 읽으면 느끼는 게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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