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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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술이랑 별로 가깝지 않다. 일단 주량이 가소로워서(주종 상관없이 2cm, 섞이면 1cm)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만큼 마실 수가 없다. 내가 직접 적극적으로 술을 찾아 마시지는 않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때나 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의 술(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해서 종종 술 관련 책이나 영상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이 책에도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의 원작 작가님이 술에 대한 애정을 담아 그리고 쓴 술 만화 백과라니. 보나마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술 지식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술에 관심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알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양술과 동양술로 나누어 20종류의 술을 소개하고 있는데, 막연히 회식에서 자주 접하던 동양술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했더니 의외로 서양술 쪽에 아는 이름이 더 많았다.


과로가 너무 당연하던 시절, 내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그 시절 느긋하게 마실 여유 따위 없이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다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폭탄처럼 취기가 확 터지는 이 술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폭탄주>


워낙 술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깊은 분이다보니 술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 술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다 재미있었다. 흑역사도, 폭탄주가 넘실거리는 회식도 잘 못 견디는 공통점을 발견해서 괜히 더 반갑고 내용에도 깊이 공감했다. 대체로 웃으며 읽다가도 어느 순간 찡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폭탄주 파트가 그랬다. 회식은 알쓰에게만 괴로울 줄 알았더니, 술꾼들에게도 즐길 수 없는 술자리가 괴롭기는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40도쯤 되는 위스키를 샷으로 마시면 우리의 소중한 내장 기관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 이렇게 마시면 맛도 충분히 못할 뿐더러 식도와 위장에도 무리가 가므로 마시는 방법을 바꿔야 했다. <위스키>


40도가 넘어가면 그냥 에탄올 아닌가요... 하며 애송이 같은 소리를 했더니, 바로 뒤에 75도짜리 바카디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는 이야기가 이어져서 눈을 의심했다. 괜히 위스키를 이리저리 뭔가랑 섞어서 순하게 만들어 마시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인간은 참 자기중심적인 종족이라 어떤 사물을 봐도 거기서 얼굴을 찾아내는 습성이 있어 매대에 놓은 수많은 와인 중 사람 얼굴이 보이면 저절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얼굴 레이블의 와인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 <와인>


어디선가 라벨에 사람 얼굴이 그려진 와인을 보고 이런 것도 있다며 신기해 했었는데, 그 내용도 책에 나와서 더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에도 놀랐고, 거기에 마케팅적인 의도가 섞여 있다는 것에도 새삼 놀랐다.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삶의 지혜를 하나 알려드리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소문을 내자!

그게 나에게로 올 것이다! <고량주>


이 방법으로 작가님에게는 고량주가 모여들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고양이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간 물건들이 우리 집에 곧잘 들어오는 것도 이 원리인 것 같다. 앞으로 돈을 좋아한다고 더 가열차게 소문을 내고 다녀야지.


희석식 소주는 술맛 자체가 뛰어나거나 개성이 있진 않습니다만

지글지글 기름진 고기에도 잘 어울리고 쫄깃한 회나 해산물과도 잘 어울리고 매콤한 볶음이나 국물에도 아니, 그냥 아무 밑반찬에도 잘 어울리는 술이지요. 뒤로 슬쩍 물러나 안주를 돋보이게 해준달까요.

<희석식 소주>


무래도 스스로 술을 찾아 마시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회식 자리에서 자주 봐서 제일 익숙한 초록병 소주 파트를 읽으면서, 드디어 아는 술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었다. 진로 소주의 도수가 1920년대에는 무려 35도였다고 해서 놀라웠다. 100년 동안 야금야금 20도나 떨어져서 그나마 나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막걸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 삼국시대 이전부터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명칭의 유래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막 걸러'서 막걸리. 여기서 '막'은 '방금'도 되고 '마구'도 된다. <막걸리>


막걸리가 오래됐을 줄은 알았지만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도 역사가 더 오래된 걸 알고 놀랐다.


올해도 나는 매실주를 담글 것이다. 이번엔 망각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 훗날 즐겁게 기억할 수 있도록 올해도 술을 담가야지.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매순간을 즐겨야지. <매실주>


큰이모가 매년 매실청을 만들면서 이 짓도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얘기를 매년 반복하시는데, 작가님도 매실청 대신 매실주를 담그면서 매년 같은 말씀을 하신대서 웃었다. 어느 해에 담근 매실주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다 같이 열자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괜히 뭉클했는데, 아이가 시크하게 그게 그때까지 남아있겠냐고 하는 걸 보고 터졌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서 그런지 역시 부모님잘알...


누군가가 지극히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열정적으로, 심지어 재미있게 펼치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왠지 나도 심정적으로 술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마음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주량이 늘지는 않았을 테지만, 가까운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고를 때 더 적극적으로 참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검은 속내).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나처럼 술과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도 다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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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
임희재 지음 / 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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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자주 본다. 여행자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생활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보고 싶어서인데, 같은 도시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아서 흥미진진할 때가 많다. 책도 되도록 한 나라 혹은 도시를 보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다양하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내가 겪어보지 않은 어떤 대상의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는 내가 가본 적 없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14년간 생활하며 겪고 느낀 이야기가 담겼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쓱 훑어보기만 해도 프랑스의 다정한 이웃들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왠지 겉으로 대충 봤을 때는 도도하게 느껴지는 프랑스 사람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내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혼자 살았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으레 이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어떻게 했느냐고. 내가 입 밖으로 꺼내는 답은 항상 같다.

"이웃이 있었죠." 18쪽


자정 가까운 시간에 두꺼비집 때문에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변기가 막히는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프랑스인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따뜻한 이웃들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작가님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노자로 2년 반동안 혼자 살았지만, 생활을 시작하고 곧 직장 동료며 동네 친구가 생겨서 완전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기간은 초반 한 달 정도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은 특별히 없었고, 드물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안 되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었다. 아마 그때 모르는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했어도 매몰차게 모르는 척하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들었다.


프랑스인은 대화에서도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장려하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핏 보면 실랑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진심을 다해 의견을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항상 상대를 존중했다. 36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실랑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심을 다해 의견을 나눈다는 게 실제로 어떤 건지 궁금했는데, 이 책과 함께 읽었던 프랑스 소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를 읽으며 실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당신 의견은 정말 쓰레기 같지만, 이런 부분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하는 식... 아무래도 소설이라 더 과장되거나 극단적으로 표현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어떤 느낌인지 좀 알 것 같았다. 두 권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래도 프랑스에서는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과 있으면 대화를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소심하고 얌전해서 나와 잘 맞았다. 메탈 뮤지션들 특성 같기도 하다. 시끄러운 음악을 자주 듣고 연주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향적인 성격을 강한 음악으로 푸는 건지, 어느 나라를 가든 메탈 뮤지션들은 대부분 우리 멤버들처럼 차분하고 점잖았다. 64쪽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와 독일에서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경험할 일 없는 프랑스 음악원이나 메탈 페스티벌의 무대 뒷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메탈 뮤지션들이 대부분 차분하고 점잖았다는 부분을 읽으며 의외라고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가 대기실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절간 같아진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다들 무대에서 에너지 할당량을 다 쓰고 내려오니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자신의 할 일이 끝나면 쿨하게 갈 길을 갔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다정함이 남았다. 그 마음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전했을 것이다.


다정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읽다 보니 작가님도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책에서 읽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대가없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는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부터 그런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에 나오는 다정한 사람들의 다정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하루를 정리하며 읽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출근 지하철을 타야 할 아침 시간에 다정할 결심까지 해야 하는 건 좀 가혹하고 벅찼을 텐데, 험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래도 어딘가에는 이렇게 다정한 세계가 있다는 위안을 얻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직도 프랑스를 향한 마음의 거리를 완전히 다 좁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작가님이 만났던 다정한 프랑스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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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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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멀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한테는 식물이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과 달리 가까이할 수는 없는 사이다. 화분 파시는 분이 ‘얘는 불을 붙이지 않고는 못 죽일 거’라고 안심시켜주셔서 데려왔던 화분조차 빈사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거의 구급차에 실어 보내는 수준으로 엄마한테 보내서 겨우 회생에 성공하기는 했는데, 나와 식물은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집에 들였던 식물은 테이블 야자였는데, 초반에 우리집 고양이가 머리채를 잡아도 튼튼하게 잘 버티더니 곧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 엄마 손으로 떠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에는 실제 식물을 들일 수 없어서 식물 이야기나 그림이 담긴 책을 두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가끔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멋진 식물 그림이나 사진이 실린 책이 보이면 눈여겨 보는 편인데, 이번에 읽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도 그림에 먼저 눈이 갔다. 소개를 읽어 보니 그림만큼 내용도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59가지 식물들의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담겨있다. 각각의 식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풀어낸 짤막한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반성을 하기도 했다. 단풍나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 뒤에 숨어서 시간을 너무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남과 비교하지 말자거나 자기 자신답게 사는 것에 집중하자는 취지의 말은 여러 경로로 읽어왔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곧잘 남과 비교해볼 때가 많은 나는 그때마다 공감했었다. 이 책에 나온 식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특히 “나무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소중한 엽록소를 낭비하는 법이 없다“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책에는 나무들의 여러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 강철만큼 단단하고 견고하게 견디는 흑호두나무와 태풍이 불어오면 부러 휘어지는 또 다른 나무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자세 중에서 꼭 하나만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나무도 있어서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위로를 많이 받았다. 견고하게 버텨야 할 때와 휘어져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주변 나무를 챙기는 우산가시 아카시아나무의 이야기도 신기했고, 주변에 다른 나무들이 살아갈 공간을 내어주는 물푸레나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름이 익숙해서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무들도 새로운 모습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나무가 견뎌왔을 4억 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것이었을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유연하게 진화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출퇴근 길에 늘 보는 나무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여러 나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닮고 싶은 점들을 많이 찾았는데, 자작나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80년 정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자작나무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쁜 나무 일러스트를 보면서 눈호강을 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나무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위로를 받았다. 지금 읽으면서 특히 더 인상적이었던 나무들이 몇 있었는데, 아마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부분에서 위로를 받게 될 것 같았다. 

책이 사철제본이라서 책등에 제목을 넣으려고 띠지를 두껍게 한 건가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띠지 안쪽에 이렇게 멋진 그림이 또 잔뜩이라서 어디에 붙여놓고 싶은 심정... 누구나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나같은 일희일비의 아이콘이 읽으면 느끼는 게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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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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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을 나도 고양이랑 같이 살기 시작한 뒤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이 나오는 무언가를 보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한번 봤던 영화라서 안심하고 다시 봤다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우리집 고양이를 떠올리고 눈물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도 손대기 전에 고민을 좀 했었는데, 일단은 강아지 이시봉이 명랑하다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명랑함이 오히려 더 슬프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 살짝 있기는 했는데, 이기호 작가의 글이라면 마냥 슬프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용기를 가지고 펴볼 수 있었다.


“그럼 이시봉이... 비숑의 왕인거예요?”라는 물음에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시습이 읊은 이시봉의 출신이 너무 구수해서 살짝 웃었다. 여기에 내용은 다 옮기지 못했지만, ‘전라도 출신답게 홍어회도 잘 먹고 배춧잎도 생으로 잘 씹어먹는 면 소재지 출신 강아지’에 대한 아빠의 자부심도 굉장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빠는 소설에서 내내 이시습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회상으로만 등장하는데, 행동이나 말에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비스듬히 앉아 피식피식 웃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아빠의 사고에 이시봉이 얽혀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놀라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시봉을 볼 때마다 아빠의 부재를 떠올릴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시봉의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이시봉을 보는 마음이 이전과 같을 수도 없지 않을까 하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간혹 미안하기만 해야 할 상황에 억울하다는 감정을 섞을 때가 있지 않나 돌이켜보게 됐다. 억울함이 섞이는 순간 사과문이든 반성문이든 경위서든 구질구질해지니까, 앞으로는 나도 이시습의 아빠처럼 미안함과 억울함을 뒤섞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었던 아빠의 말. 사랑이 많은 사람과 강아지가 나와서 그런지 소설에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수시로 터져나왔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개들이 사람과 달리 눈앞에 놓은 희망만 면밀히 관찰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확대 해석하지 않고 개들이 그렇듯 상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기 고양이 시절부터 같이 살았던 고양이 파니를 떠나보낸 정용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수아와 정용 사이에서 심하게 오락가락했다. 동물장례식장에 도착한 정용이 돈이 얼마가 들든 다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고, 슬픈 걸 이용하는 업체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수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알면서도 속는 정용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말았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얘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나보다 더 열렬하게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늘 이시습이 말한 무섬증을 조금은 안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우리집 고양이를 길에서 데려와서 임보할 때의 마음이 여러 번 떠올랐다. 임보하는 동안에는 얘한테 내가 최선이 아닐 것 같은데, 나보다 더 나은 가족을 꼭 찾아줘야할 것 같은데, 하는 조바심이 늘 있었고 내가 키우기로 마음을 먹은 뒤에는 더 나은 환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은 좀 덜하긴 한데, 책을 읽는 동안 그때 생각이 오랜만에 났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였는데, 여러 번 웃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500쪽이 넘어서 처음에 두께에 살짝 기가 눌리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 흥미진진해서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책에는 발도장 사인과 함께 랜덤 이시봉 포토카드도 들어있다. 읽는 내내 웃기고, 슬프고, 귀엽고, 찡했던 이 책을 잘 챙겨뒀다가, 우리집 고양이가 종아리를 좀 심하게 무는 날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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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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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둘러볼 때 내가 유심히 보는 것은 담당 편집자가 마음을 담아 썼을 상세 페이지의 책 소개와 누군가의 짤막한 추천사다. 누군가의 생각을 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초고부터 읽고 다듬어 마침내 완성해낸 편집자의 글도 그렇지만, 짧고 강렬한 추천사를 읽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사는 속도가 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장바구니에 책이 계속 쌓이기만 할 정도로 나는 누군가가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글을 찾아 읽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나 평론가 혹은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나 추천을 모아 낸 책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나온 <같이 읽자는 고백>은 심지어 책과 닿아있는 사람들이 한 권씩 책을 추천하는 편지를 엮은 책이라니 읽기 전부터 두근두근했다. 



이 책에 수록된 57편의 글은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에서 운영하는 ‘이달의 큐레이터’가 북클럽 회원들에게 책 추천과 함께 보내는 편지다. 그러니까 북클럽 회원이 아닌 나는 원래 읽을 수 없는 편지인 건데, 이렇게 책으로 나오면서 나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추천 도서들 중에 나도 잘 아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아주 낯선 책도 있어서 어떤 기준으로 추천을 하셨을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빡빡한 기준에 놀라는 한편, 큐레이션을 받는 입장에서는 너무 행복한 기준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라면 어떤 책을 추천할까 잠시 망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추천사를 써본 적 없으니 수월하겠다 싶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떠올렸는데 이건 너무 베스트셀러라서 아웃인가... 하면서 의미 없는 고민을 계속했다. 



나도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살아본 적 없는 인생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고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신형철 평론가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추천하면서 남긴 글에 많이 공감했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2010년에 (지금은 절판된 버전으로) 샀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다. 너무 좋은 책이라고 추천한 친구가 슬프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는 바람에 바로 못 읽고 순서를 미루다 보니 2025년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추천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움직여 올해는 넘기지 말고 읽겠다고 다짐했다.



기본적으로 작가들은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다 보니 추천하는 모든 책이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주워 담게 되는 부작용(positive)이 좀 있었다. 정세랑 작가가 추천한 <노마드랜드>도 그런 책이었는데, ‘세밀한 초상화를 모아 지도를 만드는 종류의 작업’이라고 소개하면 이걸 어떻게 안 읽어요...



나도 비슷한 이유로 누군가한테 책을 추천하는 게 늘 부담스러워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내 마음을 좋은 글로 풀어서 적어놓은 것 같다고 느꼈다. 이렇게 책 추천을 부담스러워하는 윤가은 감독이 추천한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도 아니나 다를까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담으려고 보니 이미 담겨 있어서 놀랐다. 너 진짜 적당히 해라... 하면서 이 책도 올해를 넘기지 않고 읽겠다고 다짐했다. 



여러 추천글을 읽다가도 유독 덕후 티가 심하게 나는 글은 더 즐겁게 읽었는데, 나한테는 김혼비 작가와 김민경 편집자의 글이 그랬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한 번씩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화르륵 흥분하는 찰나가 글에서도 느껴져서 좋았다. 김혼비 작가는 미스터리 장르 덕후인데, 어릴 때 만난 (역시나 미스터리 찐 덕후인) 서점 주인과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감동적이기도 하고 덕후들의 생태란... 하며 좀 웃기도 했다. 김혼비 작가의 말처럼 ‘가장 다정하고 귀엽고 뭉클한 트릭’이었다. 그래서 추천한 책이 뭐냐면요, <미스터리 가이드북>...



이어서 등장한 찐 덕후는 김민경 편집자다. 민음사tv를 즐겨 보시는 분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텐데, 나는 세문전 월드컵을 보면서 팬이 되었다. 이미 유튜브에서 여러 책을 소개했던 터라 어떤 책을 추천하실지 궁금했는데, 판타지 장르를 들고 나타났다. 김혼비 작가가 미스터리 덕후라면 김민경 편집자는 판타지 덕후였던 것. 너무 세계관이 방대할 것 같아서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한 머글들을 이영도 월드로 끌고 가기 위한 올가미를 짰다고...



그리고 글을 다 읽고 나니까 아무래도 올가미에 걸린 것 같았다. 그 짧은 글 안에서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일단 이것부터 읽어 보시죠.’ 하는 식으로 추천을 해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는 건 좋은데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어서 좀 막막한 마음도 들었다.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면서 재능과 성실에 대해 이미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에서 다시 한번 같은 생각을 했다. 그냥 날 때부터 글을 잘 썼을 것 같은 사람도 이렇게 꾸준히 써왔기 때문에 잘 쓰게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그(!) 이슬아 작가의 스승이 쓰신 <활활발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최은영 작가가 나도 좋아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추천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진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읽은 것까지 같았다. 나는 2024년에야 이 책을 읽었고, 작년에 읽은 책 중에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이 책을 댈 정도로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읽는 동안도 읽고 나서도 한참 마음이 힘들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에서 내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이미 있는 책을 발견하면 더 반가웠는데, 이연실 대표(이자 편집자)의 추천 책인 <궁금한 건 당신>도 그랬다. 정성은 작가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인데, 나도 읽어 보고 싶어서 체크해놨는데 이번에 추천 글을 읽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참고로 이 책에는 정성은 작가의 추천 책도 수록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이번 달의 큐레이터와 추천 책이 궁금해서 책발전소를 검색해봤다가, 문보영 시인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추천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이렇게 모아서 읽는 것도 즐겁고 좋았는데, 계절과 시기도 감안한 추천 책과 글을 실시간(!)으로 읽고 싶을 것 같아 앞으로 책발전소도 종종 체크하게 될 것 같다. 읽을 책들이 자꾸만 쌓여서 어쩌나 하는 즐거운 고민은 미래의 나한테 맡기기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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