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을 나도 고양이랑 같이 살기 시작한 뒤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이 나오는 무언가를 보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한번 봤던 영화라서 안심하고 다시 봤다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우리집 고양이를 떠올리고 눈물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도 손대기 전에 고민을 좀 했었는데, 일단은 강아지 이시봉이 명랑하다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명랑함이 오히려 더 슬프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 살짝 있기는 했는데, 이기호 작가의 글이라면 마냥 슬프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용기를 가지고 펴볼 수 있었다.

“그럼 이시봉이... 비숑의 왕인거예요?”라는 물음에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시습이 읊은 이시봉의 출신이 너무 구수해서 살짝 웃었다. 여기에 내용은 다 옮기지 못했지만, ‘전라도 출신답게 홍어회도 잘 먹고 배춧잎도 생으로 잘 씹어먹는 면 소재지 출신 강아지’에 대한 아빠의 자부심도 굉장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빠는 소설에서 내내 이시습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회상으로만 등장하는데, 행동이나 말에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비스듬히 앉아 피식피식 웃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아빠의 사고에 이시봉이 얽혀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놀라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시봉을 볼 때마다 아빠의 부재를 떠올릴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시봉의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이시봉을 보는 마음이 이전과 같을 수도 없지 않을까 하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간혹 미안하기만 해야 할 상황에 억울하다는 감정을 섞을 때가 있지 않나 돌이켜보게 됐다. 억울함이 섞이는 순간 사과문이든 반성문이든 경위서든 구질구질해지니까, 앞으로는 나도 이시습의 아빠처럼 미안함과 억울함을 뒤섞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었던 아빠의 말. 사랑이 많은 사람과 강아지가 나와서 그런지 소설에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수시로 터져나왔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개들이 사람과 달리 눈앞에 놓은 희망만 면밀히 관찰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확대 해석하지 않고 개들이 그렇듯 상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기 고양이 시절부터 같이 살았던 고양이 파니를 떠나보낸 정용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수아와 정용 사이에서 심하게 오락가락했다. 동물장례식장에 도착한 정용이 돈이 얼마가 들든 다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고, 슬픈 걸 이용하는 업체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수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알면서도 속는 정용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말았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얘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나보다 더 열렬하게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늘 이시습이 말한 무섬증을 조금은 안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우리집 고양이를 길에서 데려와서 임보할 때의 마음이 여러 번 떠올랐다. 임보하는 동안에는 얘한테 내가 최선이 아닐 것 같은데, 나보다 더 나은 가족을 꼭 찾아줘야할 것 같은데, 하는 조바심이 늘 있었고 내가 키우기로 마음을 먹은 뒤에는 더 나은 환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은 좀 덜하긴 한데, 책을 읽는 동안 그때 생각이 오랜만에 났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였는데, 여러 번 웃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500쪽이 넘어서 처음에 두께에 살짝 기가 눌리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풀릴지 흥미진진해서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책에는 발도장 사인과 함께 랜덤 이시봉 포토카드도 들어있다. 읽는 내내 웃기고, 슬프고, 귀엽고, 찡했던 이 책을 잘 챙겨뒀다가, 우리집 고양이가 종아리를 좀 심하게 무는 날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