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나의 표현력을 위한 필사 노트 - 뭉툭한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표현력 되찾기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유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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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장들을 손으로 써서 남길 때가 많다. 아무래도 손으로 직접 써서 남긴 문장들은 기억에 더 오래 남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보기에도 더 편해서 책을 읽을 때는 필사할 문장들을 체크하며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이왕 품을 들여 필사를 할 거라면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하루 한 장 나의 표현력을 위한 필사노트>를 발견하고 이거다 싶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나 평소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려면 머뭇거리게 될 때가 많았다. 생각에 딱 들어맞는 말을 찾는 것도 어렵고, 말을 찾았다 하더라도 글로 풀어서 표현하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생각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갈수록 더 많이 느껴서,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란하게 잘 꾸민 말이나 글을 두고 표현력이 좋다고 여긴다면 잘못되었습니다. 적어도 말이나 글에서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추상의 형태를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는 힘이 좋다는 뜻입니다.


책에는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물론 많지만, 도움이 되는 저자의 글도 중간중간 여러 번 나온다. 리뷰를 시작하며 구구절절 뭘 쓰기가 어렵다고 한참 썼지만, 책에 나온 것처럼 ‘추상의 형태를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는’ 게 어렵다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거였다. 이 책을 다 읽고 따라쓸 때 쯤에는 나도 저렇게 간단하고 정확하게 생각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다.


저는 걸작을 탄생시킨 이들이 ‘무엇’을 발상하는 데 쏟은 시간이나 열정의 몇 배 아니 수십 배를 여기에 쏟았으리라 확신합니다. 바로 ‘어떻게’입니다.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이야기는 식상해’ 같은 말은 맞는 듯 맞지 않지요.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평소에 글을 쓸 때 독특한 소재를 찾는 일에 살짝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반성했다. 어떤 소재라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더 집중해서 고민했어야 했는데, 그게 어려우니까 ‘무엇’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서. 앞으로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 ‘어떻게’ 표현했는지 더 주의깊게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어휘로 생각하고 정리해 표현하지 않는 게 일상이 되면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파악할 줄 모른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자신이 없다.” 제가 <어른의 어휘력>에 쓴 글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시작으로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잇고 - 깨고 - 헤(치)고 - 짓고 싶은지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표현이 당신이 파편화되는 사태를 막고, 참 모습대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전작인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에도 관심이 생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휘가 풍부하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어질 테니,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어떤 어휘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주의깊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동서고금의 문장가들이 쓴 글의 일부가 149편 실려있다. 장르도 다양해서 시, 소설, 산문은 물론이고 노랫말도 있었다. 문장 자체를 뜯어봐야 할 글도 있었지만, 표현력을 기르기 위한 태도나 마음가짐을 위한 글도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글을 보면서 주변 사물이나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동서고금의 좋은 문장들을 읽기만 해서 표현력이 훌륭해진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저자의 가이드에 따라 책에 실린 문장들을 써보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했을까 하고 감탄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표현이 담긴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읽을 때 표현을 조금 더 주의깊게 보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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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 -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철학적 사고 실험
토드 메이 지음, 노시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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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구의 여러 위기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없는 편이 더 나은 게 아닐까 스스로 묻게 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판단할 어떤 근거나 기준이 명확히 있는 게 아니다보니, 결국 감정이 너무 앞섰다는 결론을 내고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 막연하고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한 권을 통째로 들여 고민한 책이 있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다. 심지어 저자가 나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철학 자문이라는 사실도 기대감을 높였다.  

무거운 주제긴 하지만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렇고 통통 튀고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해였다. 문장 자체는 술술 읽히고 내용상으로도 어려울만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책장을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질문들로 가득했다. 인류 존속이나 멸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끈질기게 되묻는 질문들을 읽는 동안 결론을 서둘러 내리기보다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기후위기. 핵무기 문제. 우리가 다 자초한 것들이다. 인류가 초래했다. 무슨 다른 종이 들고 일어나서 인간에게 지구를 파괴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자초했다. 우리 탓이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를 인간이 일으켰다는 이 부분을 읽고, 당연히 인류 멸종이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막연하게 그런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단순한 비판이나 결론으로 나아가기보다, 질문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으며 문제의 층위를 넓혀간다. 결국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처음보다 오히려 더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 자체가 이 문제의 복잡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인류 멸종이 비극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멸종의 과정이 고통스러운데다가 예술이나 과학처럼 인간에게 소중하고 오직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상실된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이에 더해 다름 아닌 인간이 그 상실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비극인데 이 부분이 고전적인 비극에 해당한다.


그동안 나는 멸종을 과거의 여러 대멸종처럼 환경 요인에 의해 사라지는 일로 단순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며 멸종이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고통과 상실이 겹쳐 있는 복합적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온 가치와 성취를 무너뜨린다는 점을 고전적 비극에 비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기후위기의 수혜자는 현세대지만, 그 부담을 짊어질 사람들은 젊은 세대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온실 가스 배출의 효과가 지연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때 후세대에게 대부분의 편익이 돌아가더라도 현세대가 기후위기 완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도 기후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그 속도가 더 심해질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세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설국열차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세대가 책임을 분담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완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인류 존속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인류의 존속이 다른 생명체에게 일으키는 고통보다, 현존하는 인간이 느끼는 인류 존속의 중요성이 더 중요한가? 늘 그렇듯, 이 문제를 판단할 만한 측정 기분은 없다. 그러나 인류 존속이 주는 삶의 의미 때문에 고통도 일으킬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은 내가 보기에 아주 생생한 현안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환경과 비인간 동물에게 가하는 다양한 고통도 함께 다룬다. 고통이나 행복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어서 인간의 행동을 단순히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계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합계를 낸다면 최소한 플러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인간이 환경과 다른 생명에게 남기는 긍정적인 영향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인류는 멸종해야 할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났더니, 멸종해야 할지 아닐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벌써 충격적이다. 인류의 존속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냐는 문제가 생생한 현안임을 깨닫고 두려워진다.


멸종 여부를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중요한 깨달음이 되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인류 존속이나 멸종의 정당성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이 문제를 계속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번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주제의 복잡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인류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고, 그 사실이 이 문제가 얼마나 복합적인지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듯 나 역시 인류가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지만, 멸종보다는 존속이 타당하다는 의견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택과 실천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읽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어떤 문제를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끈질기게 따라가 보는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나는 이런 질문을 평생 파고드는 철학자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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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유성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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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감기나 다른 증상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일이 생긴다. 증상에 따라 각각 다른 의사를 만나게 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마도 만날 일이 없을 의사도 있다. 바로 법의학자다. ‘법의학’이라는 낯선 말을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처음 들었다. 그리고 화면을 통해 만난 첫 법의학자는 이 책의 저자인 유성호 교수님이었다. 예전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흥미롭게 읽었고, 유튜브 <유성호의 데맨톡> 구독자이기도 해서 데맨톡의 인기 강의를 엄선했다는 이번 책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부검 이야기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줄 알았던 책은 의외로, 살아 있는 동안 알면 더 좋을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3,000건이 넘는 부검을 진행하며 죽은 몸에서 삶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골몰해온 저자가 전하는 건강한 삶에 대한 지식들을 하나씩 읽다 보면, ‘부디 부검대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 책은 꼭 살아있을 때 읽어야 한다’는 책 속 문장이 더 와닿는다.


법의학자로서 저는 사망한 이들의 뇌를 들여다봅니다. 생명은 떠났지만, 그 뇌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뇌를 관찰한다는 것은 단순히 병리학적 변화를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지막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되짚어 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뇌는 단순한 장기가 아닙니다. 한 인간의 갖아 깊은 이야기이자, 죽음을 넘어서도 남아있는 마지막 언어입니다.  61쪽


한 인간의 가장 깊은 이야기가 죽음을 넘어서도 뇌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나 생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법의학자에게만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뇌는 단순한 장기가 아니라 내 삶을 증명하는 가장 구체적인 기록일지도 모르니, 앞으로 뇌를 좀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검을 의뢰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사망의 정황이 불분명하거나 그 원인이 모호한 때가 많습니다. ... 위는 때떄로 사망의 진실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죽은 사람의 위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88쪽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죽은 사람의 위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말이 유독 인상적이었고, 이 부분을 읽을 때 내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뭐였는지도 떠올렸다. 평소에 무심하게 먹고 넘기는 한 끼가 어쩌면 진실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소장은 우리가 가만있을 때도 끊임없이 운동을 계속하는 부지런한 장기이지만, 우리가 걷고 뛰면서 적극적으로 신체 활동을 하면 덩달아 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반대로 침대에 오래 누워있는 경우, 이를테면 골절로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은 소장의 운동이 느려지면서 변비나 장폐색의 위험이 올라갑니다. 신체적 운동과 소장의 운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죠. 107쪽


한 기관이 몸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장 이야기를 읽으며 새삼 느꼈다. 각 잡고 제대로 운동하지 않을 때도, 적어도 소장이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주 몸을 일으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NA는 단지 범인을 찾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한 개인이 누구인지, 어떤 유전적 특성을 지녔는지, 어떤 조상으로부터 왔는지를 담은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 과학은 이 기록을 점점 더 정교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우리는 이제 DNA를 토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DNA는 각자의 몸에 새겨진 고유한 서사이며,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 신분증입니다.

207쪽


DNA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책이나 영상으로 자주 접해서 특별할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법의학자의 말로 듣는 이야기는 또 새로웠다. 특히 ‘각자의 몸에 새겨진 고유한 서사’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저는 부검실에서 수많은 시신과 마주합니다. 유독 술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외상 사고, 급성중독, 장기 손상, 자살, 익사 심지어 너무 평범한 밤의 귀갓길에서도 술은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어떤 날에는 ‘만약 이분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 누워 있지 않았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251쪽


이렇게 다양한 죽음의 원인이 술일 수도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와닿았고, 일상에 이미 많이 스며든 술이 얼마나 쉽게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 유독 ‘몸’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건지 관련 책을 꽤 읽었다. 그중 여름에 읽었던 남궁인 작가님의 <몸, 내 안의 우주>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떠올랐다. 응급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삶으로 끌어오려고 애쓰는 사람과 이미 죽음의 영역으로 넘어간 누군가의 몸에서 어떻게든 ‘삶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인간의 몸을 마주하기에 분명 다른 점도 있지만, 두 책 모두 살아 있는 사람의 건강을 염두에 두고 쓴 이야기라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시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죽음 이후 내 몸에 남을 흔적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 나니, 살아있는 동안 내 몸을 좀 더 아끼고 건강하게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이 남았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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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씽킹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사고 대전환 프로젝트
솔 펄머터 외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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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가끔은 허덕이며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기술은 너무 빨리 발전하고 온갖 정보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쏟아지는데,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너무나 명확하다. 배우고 생각할 일이 많은데 AI가 이미 생활에 깊이 자리를 잡는 바람에 내 머리로 직접 생각하는 일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편리함에 기대 살다가 가끔 이렇게 생각을 외주줘도 될까 고민스러울 때도 있어서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넥스트 씽킹>에는 물리학자, 철학자, 사회심리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하고 강의하며 요즘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 적합한 사고법을 찾으려 한 흔적이 담겨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실험 결과나 사례들까지 함께 볼 수 있어서, 처음 접하는 개념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길을 잃고 고통을 유발하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복잡하고 곧잘 모순적인 정보를 이해할 도구가 없기 떄문이라는 심증이 점점 굳어졌다. 문제에 결부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없거나, 그 문제들에 공동의 또는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거나, 심지어 그 사실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는 현실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할 수 있다.      18쪽


책의 앞부분에서도 요즘 시대에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이 주어진다는 것과 그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정보 과잉 시대에 심지어 사고 과정은 AI에게 맡길 때가 많아서 AI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주체적으로 생각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 고민이었는데, 책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나와서 관련 내용이 나올 때는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과학은 인류가 품은 가장 까다로운 의문들에 대한 (해답까지는 아니더라도) 통찰을 내놓는 면에서 경이로운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수천 년에 걸쳐 수수께끼를 풀고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주었다. 과학은 인류의 여명에 뿌리내린 탐구의 문화로, 요령부득 세상의 모순적 정모를 평가하고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연습을 수백 년째 이어왔다.      19쪽


책에서는 과학적 사고를 중요하게 여긴다. 다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감정, 가치 판단 등 다른 부분과 어떻게 맞물려 작용하는지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합리적 사고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함께 알 수 있었다.


현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을 분간하려다 보면, 두 가지 사실이 금세 분명해진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과 알지만 긴가민가한 것도 많다는 사실이다. 93쪽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인도 그렇지만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조차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완전히 다 알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부터 가치판단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맞다, 틀리다’로 구분하기 보다 ‘맞을 확률이 어느 정도다’라는 식으로 판단하는 게 좋겠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전문가의 말을 들을 때는 그들이 자신의 불확실성과 자신이 틀릴 수도 있는 상황을 인정하는지에 주목하라. 우리야 전문가들이 100퍼센트 정확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100퍼센트에 가깝게 보정된 전문가를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 “확고한 의견을 제시할 만큼 잘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126쪽


앞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전문가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라 하더라도 100% 확신을 가지는 건 조금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절대 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100%에 가깝게 보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과학적 낙관주의는 하루하루 느끼는 평범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할 수 있다’ 정신이며 당면 문제가 당신에 의해서나 당신과 동료들에 의해 해결 가능하리라는 기대다. 복잡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해법이 손안에 있는 것처럼 접근하면 문제를 풀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을 고안한 셈이다.     200쪽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는 ‘과학적 낙관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막연하게 그냥 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믿는 낙관주의와는 확연히 다른데도,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가설에 대해 둘 이상의 연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면 적대적 공동 연구를 실시할 수 있다. 이 접근법에서는 경쟁자들이 자신들의 대립적 관점을 공정하게 검증한다고 여겨지는 하나 이상의 실험을 공동으로 설계하고 수행하고 발표한다.   292쪽


이런 연구 방법이 있는 줄 몰라서 참신했고, ‘적대적 공동 연구’라는 말이 모순적인데도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실제로 적대적 공동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결과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우리 인간은 문제를 파악하면 대처 방법을 발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생산적인 집합적 사고를 독려하고 싶다면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지점도 있다. 우리의 산업이 지구 기후에 (좋게든 나쁘게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한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 규모의 정보 기술이 집합적 사고에 국가적, 심지어 지구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337쪽


인간과 인간이 만든 기술이 지구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환경이나 기후 면에서는 안 좋은 영향을 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결국 해결 방법도 인간이 찾아낼 것이라는 확신(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고 90% 정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요즘 생각 자체를 너무 AI에 맡기고 있는 거 아닌가’ 정도의 막연한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요즘,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하면 좀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치열하게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나도 완전히 이해를 하지는 못했지만 책에 소개된 사고 도구들을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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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음에 서툰 당신을 위한 심리학 - 잘 끊고, 잘 잊고, 다시 시작하는 법
게리 매클레인 지음, 신동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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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든 회사나 다른 무언가와의 관계든 좋든 싫든 끝을 맺어야 할 때가 온다. 차라리 회사 생활이나 연애의 마무리는 형태가 명확해서 상대적으로 끝맺음이 쉬운데, 친구나 다른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지가 않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친했던 누군가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소원해지거나 혹은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하는데, 더 어릴 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마음이 마냥 안 좋았지만 요즘은 ‘시절인연’이라는 말에 기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반갑게 만나겠지 하며 덤덤하게 넘기기도 한다. 

서로의 의지로 제대로 인사하고 관계를 끝낼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하게 세상을 떠나 마지막 순간이 갑자기 찾아오거나 마지막인 줄 몰랐는데 사이가 서서히 멀어져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 사람과 직접 작별 인사를 할 수는 없더라도 내 안에서 그 관계를 제대로 마무리할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불어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끝을 맺어야 할 때의 마음가짐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결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종결짓기를 바라는 마음이 상황을 해결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좌절과 더 큰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결짓지 못한 데 따른 고통이라도 결국에는 개인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될지 모른다.      31쪽


뭔가가 제대로 끝맺지 못하면 계속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게 내 개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뭐든 제대로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리고 마무리를 짓는다는 게 심리적으로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정신이상의 정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마 꽤 우습다고 여겼을 테지만 정신 건강 전문가 입장에서 이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내담자들의 삶에서 흔히 목격하는 아주 슬프고 안타까운 실제 사례다.       57쪽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은 막연하게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여러 번 깨달았다. 책에서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끝내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성향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는 사례를 들었는데, 나는 그 사례들을 읽으며 그동안 이직했던 과정들을 떠올리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과하면서 죄책감만 언급하고 책임감은 언급하지 않거나 반대로 책임감만 언급하고 죄책감은 언급하지 않는다면 용서를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보상은 안 하면서 단순히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사과하는 것 같거나, 잘못을 저지른 건 아는 듯하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과받는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쾌해질 수 있다.       124쪽


반성문이든 사과 메일이든 시말서든 뭔가를 잘못하고 글을 써야할 때는 죄책감과 책임감 두 가지를 모두 담아야 제대로 전달이 된다는 걸 이 책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머리로는 알아도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니 뭔가를 잘못했을 때 두 가지 모두를 담아 사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용서받을 수는 없다. 고인이 남긴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관계를 종결짓는 건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떠나보낸 뒤에는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용서받기에는 너무 늦었다. ... 종결은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는 이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128쪽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해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는데 내가 제일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그 사람이 없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종결의 한 형태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대방과 나눌 대화를 예행연습하는 건 실패의 길을 준비하는 일이다. 왜일까? 현실에서는 타인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계획대로 강요할 수 없다. 자신의 계획대로 상대를 밀어붙인다면 대화에 장벽을 세우는 셈이다. 연극 무대가 아닌 다음에야 예행 연습을 거친 대화는 보통 아무런 성과가 없다.        180쪽


전화 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메일이나 문자에 비해 전화는 여전히 장벽이 높아서 나는 누군가랑 통화하기 전에 할 말을 미리 정리해두는 편이다. 불편한 주제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거나 통화를 해야할 때 미리 대화를 시뮬레이션 해볼 때가 많은데, 내 마음이 편해질 뿐 상호작용면에서는 썩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동안 상대방의 반응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내려고 했던 건 아닌지 살짝 반성하기도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종결을 더 이상 시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이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을 내담자들의 사례로 자주 경험한다. ... 종결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계속된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위태로워진다면 외면하고 떠나는 힘든 결정을 고려할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240쪽


깔끔한 마무리를 바라는 건 좋지만, 그 종결을 고집하다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칠 정도라면 방법을 바꾸거나 종결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좀 복잡했다. 종결을 시도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 중 뭐가 더 마음 상하는 일일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책에서 말한대로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의식하며 살아야겠다. 


여전히 끝을 맺는 일이 조금은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으며 나한테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왠지 마음이 좀 놓였다.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앞으로도 대상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의 관계의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 계속 있을텐데, 그럴 때 한 번씩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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