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 미래 과학 트렌드 - 한 권으로 따라잡는 오늘의 과학, 내일의 기술
국립과천과학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서점에 등장하는 다양한 분야의 다음 해 트렌드 분석 책들을 보고 연말이 왔다는 걸 체감하곤 한다. 서점에 아예 별도 코너를 만들 정도로 여러 종류의 트렌드 분석 책들이 매년 나오는데, 그중에서 내가 관심을 두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시리즈가 하나 있다. 바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몇해 전부터 발간 중인 <미래 과학 트렌드>. 생명과학, 화학, 지구과학, 우주과학, 물리학 등과 함께 과학 문화와 노벨상 관련 챕터가 따로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나 같은 과학 문외한에게는 살짝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아주 가끔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술술 읽혀서 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가볍게 쓱 훑어보기 좋다. <2026 미래 과학 트렌드>에는 어떤 키워드들이 담겨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아직도 사람은 완벽한 형태의 인공 혈액을 만들고 상용화하지 못했을까?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인공 혈액 연구는 인간이 우주에 가고, 인간의 생각을 빼닮은 AI가 생겨날 때까지도 완성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혈액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도, 혈액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글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다. 어렵기는 하지만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서, 일본에서 최근에 혈액형 관계 없이 수혈할 수 있는 ‘보라색 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상용화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연구가 이대로 이어지면 머지않아 인공 혈액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식물의 멸종은 단순히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식물과 상호작용하는 곤충, 조류, 포유류 등 다른 생물군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쳐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는 농업 생산성 저하, 의약 자원의 감소, 기후 변하의 가속화로 이어져 결국 인류의 생존 기반을 위협한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를 줄이고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식물과 종자를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물 종자를 보관하는 ‘시드 뱅크’는 자주 들어봤지만, 각종 종자를 최후의 순간까지 영구저장하기 위한 시설인 ‘시드 볼트’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낯선 말이었다. 시드 볼트는 전 세계에 딱 두 곳 있는데, 놀랍게도 한 곳은 우리나라에 있다. 보안시설이라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북 봉화에 있다는 백두대간 시드볼트가 영영 열릴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기생벌은 인류와 해충의 오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생물학적 해법이다. ‘기생’이라는 전략 속에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섬세한 지혜가 숨어 있기 떄문이다. 기생벌은 생태계 안에서 싸움을 택하지 않는다. 숙주를 완전히 절멸시키지 않는다. 숙주의 생존이 곧 자신의 생존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해충을 적으로 규정하고 ‘박멸’하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미래는 절멸이 아닌 균형에서 시작된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아주 없는 편이 아닌데도 책을 읽다 보면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번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생벌’이었다. 생존을 위해 숙주를 살려두면서 기생한다는 이야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소름끼치기도 했다.
미래의 천문학은 완전히 자동화된 관측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AI가 스스로 관측 계획을 세우고, 흥미로운 천체를 발견하면 자동으로 다른 망원경들에 알려 집중 관측을 요청할 것이다. 심지어 우주 탐사 미션까지도 AI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이번에도 AI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다루고 있어서 앞으로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인간이 제대로 통제하며 활용할 수 있을지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AI를 떼어놓을 수 없는 분야들도 많은 만큼 활용할 때의 기준 같은 것들이 좀 명확하게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자와 자전거는 전혀 다른 시대와 상황의 기술이다. 하지만 둘 다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학기술이 사회를 이끄는가, 아니면 사회가 과학기술을 만드는가?’ 답은 분명하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수 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쓸지는 결국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등자의 발명이 이후의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는데,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까웠던 초기 자전거가 아이들도 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교통 수단으로 자리잡기까지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학기술 그 자체는 도구인데 그걸 어떻게 쓸지를 정하는 건 사회의 선택’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의 청년 안창남이 ‘금강호’를 몰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는 조선인이 조선 하늘을 처음 비행한 순간으로, 5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그 장면을 목격했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의 자존이 꺾인 시기,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민족 자각의 상징이었다. 안창남의 이름은 민족의 자존을 깨운 과학 기술자로 기억되었다.
1940년 석주명이 펴낸 <한국산 나비 총목록>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학자가 과학 분야에서 영문으로 펴낸 유일한 연구서였다. 무엇보다 그는 ‘조선산 나비만 연구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해방 이후에는 나비의 우리말 이름 짓기에 앞장 섰으며 한국산 나비 248종의 우리말 이름을 직접 만들고, 정리하여 조선생물학회에 통과시켰다.
이번 책의 과학 문화 챕터에는 독립운동과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꿋꿋하게 연구를 이어가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연구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도 독립운동의 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자연을 조선말로 연구하고 기록한다는 게 그 시절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아서 내내 뭉클한 마음으로 읽었다.
혁신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연구와 교육,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성장은 파괴를 동반한다. 낡은 산업의 퇴장은 아프지만,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술이 메울 때, 사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과학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건 좋은 일일텐데,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좀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라서 가끔은 너무 빨리 바뀌지는 말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조금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변화 과정이,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꼭 필요한 과정이니 무작정 거부감을 느낄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새삼 느꼈다.
최근 과학 연구의 경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들으면서도 정확한 개념이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희토류나 초지능 인공지능 같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찬찬히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먼 우주에 대한 내용도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플라스틱이나 요즘 건축 현장에 다시 등장한 공학 목재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책에서 먼저 만나본 키워드들을 내년에 뉴스나 다른 책에서 보게 되면 왠지 반가울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