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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나의 1년 2022-2023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2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22년 다이어리 소개글을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3년 다이어리며 달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곧잘 쓰는 로이텀은 11월만 돼도 슬슬 내가 원하는 색상이 품절되기 때문에 올해도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10월 말이 되니 마음이 슬슬 급해지는 중이었다. 새 다이어리를 사기 전 문득 올해 내 다이어리에는 어떤 내용들이 채워졌나 들여다보다가 올해 나에게 알게 모르게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이어리에 기록을 해두니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볼 때 좋구나, 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했지만 매번 이걸 이렇게 다 돌아보긴 좀 번거롭지 않나 싶었다. 그러다가 질문을 통해 나의 1년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책을 발견했고, 운 좋게 미리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채워야 하는 칸이 많은 책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채우게 될지 기대가 됐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책과 귀여운 스티커 세 장이 같이 왔다. 스티커는 생각 못했던 거라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귀여운 스티커를 사모으지만 아까워서 못쓰는 나는, 요 스티커도 결국 잘 모아놓게 되겠지만, 다꾸하는 사람들은 기뻐할 것 같은 귀여운 스티커였다.

책의 구성은 심플했다. 하지만 질문들도 심플한 편이었지만 내가 채워나가야 할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올해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선뜻 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하는 동안 내가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 분명히 안 좋은 일도 좋은 일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지나고 보니 다 좋은 일처럼 느껴진다.

책의 첫머리에는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이 적혀있었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부분부터 채워나갈 수 있다고 되어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사실 나는 책이든 뭐든 강박적으로 앞에서부터 채워나가는 편인데, 이 책은 시작부터 그럴 필요가 없다는 문장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실제로 읽다 보니 순서대로 답을 채울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올 한 해를 부정적으로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체크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다. 힘들긴 했어도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지, 그 정도면 걱정할 일도 아니었지, 같은 소리를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들에는 선뜻 체크를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지나고 나면 다 아주 큰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 책에 나온 저 문장에 공감하며 체크했다. 실제로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채워야 할 부분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책의 중간중간에 저런 식으로 부담을 덜어주는 문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약간 죄스럽다고 느끼는 나에게는 저 말도 위로가 됐다. 답을 좀 채워볼까 하고 책을 열었다가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발견했거나 하기 싫은 날은 부담 없이 책을 덮었다.

사실 질문들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쉬운 질문이지만 답을 생각해서 써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내가 쓰는 건데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서 놀랐다. 심지어 남은 두 달 동안 답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쉽게 빈칸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해결책을 찾았다.

아예 답을 12월로 미루고 싶은 질문들은 마음 편히 비워놓고, 12월에 답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답을 하고 싶은 질문에는 포스트잇에 답을 적었다. 나중에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12월이 기다려진다.

올해를 돌아보는 파트도 있지만, 올해를 돌아보며 얻은 인사이트로 내년을 그려보는 파트도 있었다. 이 부분도 12월쯤 되어서 채워나가게 될 것 같지만 질문을 읽고 나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내년 생각을 하게 된다.

고민만 하며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실제로 어땠는지 실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올해는 이래저래 생각이 나 고민이 많았던 한 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생각을 멈추거나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의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생각 그 자체에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남은 11월과 12월 동안 차근차근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내년에 어떻게 살아나갈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책 리뷰를 하려고 보니 문득 이 책의 카테고리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검색을 해보니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었다. 저자가 분명히 있는 책이지만 내가 채울 칸이 더 많아서인지 내가 만드는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올해가 2달이나 남아서 모든 칸을 채워볼 수는 없었지만, 질문들을 읽고 답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남은 2달 동안 내가 어떤 답을 찾게 될지 기대가 됐다. 아직 채우지 못했거나 포스트잇으로 답을 적어놓은 질문들을 12월에 다시 읽어볼 생각인데, 그때 내가 만족스러운 답을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