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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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바로 직전에 블로그 서평을 남긴 책이 이혼 브이로그를 찍는 유튜버 아넵의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페미니스트의 유쾌한 과학 기술사를 담은 책이다. 명절을 앞두면 시댁에 안 가도 되는 요즘도 명절증후군을 앓는 엄마를 봐서 더 그랬는지, 이런 쪽(!)의 책을 많이 읽은 건가 싶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카트리네 마르살의 전작인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책도 기대를 잔뜩 하고 읽었는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전 책은 경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과학사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적인 내용들도 담고 있지만, ai나 로봇 같은 시의성이 있는 내용들도 담고 있어서 흥미진진했다.



책은 시작부터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바퀴가 발명되고 나서 5000년이나 지나서 여행 가방에 바퀴가 달린 것도 놀라운데, 그 배경도 흥미진진해서 시작부터 집중해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단지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충분히 인류 보편적인 점들이 간혹 '여성적'이라고 묶이고, 그래서 인류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로 한정되는 내용들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했다. 과거에 등장했던 전기차의 이야기나,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도 '보편적'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다.



기술로 바라보지 않는 기술이 되어버린 재봉과 유제품과 관련된 두 개의 자격증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여성이 주도적인 기술들은 중요한 기술임에도 그만큼의 대접을 못받는 과거의 상황도, 그리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요즘 일들도 어쩜 이럴까 싶었다. 바로 아래에 옮겨 적은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성의 기술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가 과학사에는 여러번 있었다. 테팔은 잘 알고 있었는데도, 테프론 프라이팬은 아내인 프랑스 여성이 발견했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여성 프로그래머들을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영국 컴퓨터 산업의 위상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놀라웠다.



여성이나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 혹은 아이들의 손을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면 그들을 대체할 로봇을 누가 개발하겠느냐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이라서 충격을 받았다.



기계가 우리보다 아직 우월해지지 않은 것보다, 아직 인간 같은 기계를 못만들어낸 우리가 인간을 기계처럼 부린다는 말이 너무 소름끼쳤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새롭게 깨닫거나, 이렇게 그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문제를 맞닥뜨리고 심란해진 순간이 있었다.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가볍게 할 이야기는 절대 아니기는 하지만) 내용을 무거운 마음으로만 읽지는 않았다. 작가가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유쾌한 비꼬기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내용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사라고 해서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한 물건이나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이 작가님이 다음에는 어떤 영역의 책을 쓰실지 벌써 기대가 많이 된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있는 해제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해제를 맡은 임소연, 하미나 두 분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서 체크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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