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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평점 :
요즘 소설 표지에 유행하는 것 같은 2층 건물 일러스트며, 푸릇푸릇한 제주 배경 등을 보며 휴가철에 읽기 좋은 소설이겠다는 짐작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올여름 당신의 휴식을 책임질 단 한 권의 힐링 드라마'라는 문구를 보면서 요즘 부쩍 복잡한 마음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살짝 있었다. 이전 작품이 정말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지 두근두근했다.

'힐링'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건만, 첫 장부터 위기였다. 주인공 제비가 사진관까지 도착할 때까지의 일이 여러번 나를 화나게 했다. 이걸 견뎌야 다음 장부터 힐링이 시작되는 거겠지...하면서 한 줄 한 줄 참아가며 읽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도 제비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 순간순간 열이 오를 때가 있었다. 제비에게 화가 날 때도, 주변 인물에게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이쯤되면 그냥 내가 화가 많은건가 싶기도 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을 가리켜 '속정 깊은 사람' 혹은 '뒤끝은 없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회사에서는 후자를 더 자주 만나게 되는데, 뒤끝이 없다고 어필하는 사람들은 뒤끝이 있으면 안되는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성격에 뒤끝까지 있으면 그쪽이 사람인가요...?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그런 불같은 성격이었다. 제비의 사회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서 공감도 되고 왠지 모르게 속도 쓰렸다.

제비의 등장 이후 사진관을 처음으로 찾았던, 바이크를 타는 50대 여고 동창생들의 이야기가 나는 손님들 이야기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어느 부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책 마지막에 나왔던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지만, 때떄로 서로를 돌보고 있어'라는 말을 제일 잘 나타낸 그룹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리고 힙한 결혼 사진을 찍으러 왔던 예비 부부의 에피소드 끝에 '만일 헤어지더라도 사이 좋게 헤어질 거야'라는 말이 제비에게 그랬듯이 나한테도 찡하게 다가왔다. 소설을 읽는 내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여러 번 고민하며 읽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이 휴가 중에 읽게 된다면 마음에 꽂히지 않을까 싶었던 문장들이다. 읽다 보면 제비의 사회 생활이나 사생활은 왜 이렇게 어려운 장면들이 많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제비가 왜 저런 선택을 하고, 왜 저런 대응을 했는지 속이 터지며 읽다가 문득 제비가 아직 스물 다섯이라는 걸 깨닫고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되었다. 제비가 살아가는 내내 어떤 짐은 영원히 내려 놓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대왕 물꾸럭 마을에서 많이 웃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다.
대왕 물꾸럭 마을의 하쿠다 사진관을 찾았던 많은 손님들 중 여고 동창생 라이더들과 지질학자만이 내 마음을 조금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도 매력적이고 가끔은 마음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개연성이나 소재가 이래도 괜찮은가 싶은 걱정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소설 속에서 힙한 결혼사진을 요구하던 까칠한 예비 신부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내가 너무 삐딱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너무 책 띠지에서 본 '힐링'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하며 읽고 있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자꾸 비교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니지만, 이번 소설은 에피소드 위주의 작품이다보니 굵직한 큰 줄기를 따라가면서 섬세한 감정 묘사를 보여주던 전 작품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혹시 작가님의 작품 중 이 소설을 먼저 읽게 되는 독자가 있다면 <플라멩코 추는 남자>도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사람마다 소설 취향이 다르니까, 이 소설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나처럼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다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님이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많이많이 만들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