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매번 소설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첫 산문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때로는 가슴이 시리고 찡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을 작가가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에 따뜻한 애정이 묻어 있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시리기도 훈훈하기도 했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어머니는 밥장사를 하면서도 인간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기꺼이 아무 의심 없이 딸들에게 책을 사줬다. 동시에 자기 옷도 사고 분도 발랐다.

나를 키운 팔 할은

살았던 기간에 비해 깊은 인상을 남기고 큰 영향을 주었다는 '맛나당' 생활 이야기를 읽는데, 모르는 곳인데도 그 칼국수집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삼익피아노와 밀가루 포대가 공존하던 맛나당에서 작가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가 긍정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배웠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맛나당'에서 어린 작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긍지로 얼굴이 빛나는 어머니의 손칼국수를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등단 소식을 들은 곳은 대학교 컴퓨터실이었다. 수화기에 대고 내가 '소설인가요, 시인가요?'라고 묻자 저쪽에서 소설이란 답이 들려왔다. 시는 예선에도 못 올랐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것을 굳이 얼굴을 붉혀가며 물은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내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알고 싶었다.

당신과 조우

하필 '정숙'이라는 말이 붙은 컴퓨터실에서 등단 소식을 듣는 바람에, 공중제비를 돌고 싶을만큼 기뻤지만 양껏 기뻐하지 못한 작가의 지난 날 이야기에 웃으면서도 짠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소설가였기 때문에 시와 소설 사이에서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담담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하게 인물을 그려내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을 너무 좋아해서 역시 시보다는 소설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시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에도 못 올랐다는 그 시가 문득 궁금했다.

희망 목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자긍심과 부담감이 섞여 먹구름을 예감한 곤충처럼 심란해졌다. 나는 헌책방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자란 마을에는 헌책방은커녕 서점 하나 흔치 않았다. 그래서 내겐 헌책방에 가는 게 동물원에 가고 놀이공원에 가는 일처럼 설레었다. 헌책방에서라면 왠지 세상 모든 책을 가장 싼 가격에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들었다.

여름의 풍속

먹구름을 예감한 곤충처럼 심란해졌다는 표현 때문에 좀 웃었다. 어쩌면 이런 표현을 생각했을까. 어떤 마음인지를 너무 잘 알겠고, 나도 그런 마음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생각에 여기서 좀 터졌던 것 같다. 읽고 싶다기 보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성했다는 작가의 그 당시 희망 목록은, 아마 대학교 1학년 때 받아들었던 권장 도서 100선에서 어려운 책만 추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겠지.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이런 적 있었어!하면서 반가웠던 장면들이 몇 있었는데, 이 헌책방 대목이 유독 그랬다. 요즘은 사러 가기 보다는 팔러 가는 일이 더 많은 곳이지만.

나는 부사가 걸린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부사와 인사

부사 이야기에도 크게 공감했다. 부사를 되도록 안 쓰는 게 좋은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지만, 부사를 안 쓰고는 양껏 오바를 할 수 없는데요...? 이렇게 많은 부사를 써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던 저 많은 부사들을, 나는 글 한 편 쓸 때 거의 모든 종류 다 쓰는 느낌이다. 되도록이면 너무 많이 안 쓰도록 노력하겠지만, 나는 부사가 너무 좋다.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생일 축하

창비 50돌을 위한 글이라는 '생일 축하'는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농담이 불가능한 시기'를 버텨낸 선배들이 마련해 준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에서 하는 작가의 농담은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은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 도서관에서 느꼈다. 철제 서가들은 그대로인데 20살 새내기 때 그 느낌이 아니라서 마음이 이상했었다.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 때문이었나보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선배는 그렇게 '자신이 읽은 문장이 아닌 산 문장'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여름의 속셈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김연수 작가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 좋았다. 서른 다섯 무렵의 김연수 작가, 서른 다섯 무렵의 김애란 작가 이야기를 곧 그 무렵이 되는 내가 읽고 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들려주는 '산 문장'에 머물면서, 서른 다섯이 되면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 외 Y를 만난 적은 없다. 안산에 혹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도 묻지 못했다. 본가가 안산인데다 시 전체가 장례를 치렀으니 건너서라도 아는 사람이 없지 않았을 거다. 더구나 그해 우린 모두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Y가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부러 고된 식당 일을 택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점, 선, 면, 겹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걸 아이들이 봤다. 배 안에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걸. 다투어 생명을 지켜야 할 시간에 권리를 외치고 이익을 도모한 모습을. 그 '도모'를 가능하게 한 이 세계의 끔찍한 논리를. 아이들'도' 봤다. 어른들이 있는 데서도, 없는 데서도. 그리고 자신들이 본 것의 의미를 알았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알았을 거다.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그 당시에 막내 동생이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막내는 그 친구들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같은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의 형제였고 친한 친구였고 안면이라도 있는 사이라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고 한다. 막내는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막내뿐만 아니라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작가 말대로 우리 모두 '아는 사람'였는데, 안산에서 학교를 다녔던 그 또래들이 받은 충격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와 같은 것을 보고 알아버린 또래 학생들에게 머물렀다가, 제발 그냥 놔두라는 절절한 애원을 하는 유족들을 향했다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인 분향소에서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서 멈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해 4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중 어떤 불은 지금도 내게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깨우는데 이청준의 중편 <소문의 벽>에 나오는 전짓불이 그렇다. 한밤중 느닷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붇는 불. 답에 따라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데 도무지 저쪽 실체가 보이지 않아 얼어붙은 한 가족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겐 저 눈부신 추궁 혹은 폭력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처럼 느껴지는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한국의 많은 갈등 이면에 여전히 저 전짓불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빛과 빚

모의고사를 풀 때 저 작품이 나와서 문제를 풀던 내가 식은 땀이 날 것 같았다. 전짓불 뒤에 누가 있었을까. 어느 편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저 소설을 처음 지문으로 만난 날 악몽을 꿨다. 실제로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닌데도 그 순간이 너무 공포스러웠다. 잊기 좋은 이름에서 저 대목을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작가도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깨우는 장면이라고 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 단편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한 소년을 크레인 위에 세워둔 채 소설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는 남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인물들이 나에게서 떠난다.

간다는 말도 없이, 또 보자는 인사도 없이, 잘 간다.

그런데 이 소년은 그러지 않았다.

혹은 그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갈 데가 없었나 보다......짐작하다가

그럼 계속 곁에 있게 하자고 마음먹는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이에는 처음부터 '인사'가 없었다.

잊기 좋은 이름

수많은 인물과 이름을 만들었을 작가라서 잊혀진 이름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는 마지막 말이 너무 좋았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이 너무 많아서, 추리고 추렸는데도 인용한 부분이 이렇게 많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부담스럽지 않은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싶어질 때 종종 꺼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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