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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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 아오야마는, 모든 걸 기록하고 책을 많이 읽으며, 실험과 탐험을 즐기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다. 젖니 빼는 모습은 영락 없는 꼬마인데 반해 세계의 끝을 탐구하는 모습은 참 어른스럽다. 훌륭한 사람이 되길 꿈꾸면서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간다.


▶️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를 보내던 5월의 어느 날, 아오야마에게 신비하고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바로 빈터 한가운데서 펭귄 무리를 발견한 것! 남극과 그 주변 섬에 서식하는 펭귄이 어떻게 우리 마을에 나타났을까? 펭귄 출현은 순식간에 마을을 들썩이는 화두가 된다.

“펭귄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착수하게 된 “펭귄 하이웨이 조사”. 조사 과정에서, 평소 좋아하던 치과 누나가 콜라 캔으로 펭귄 만드는 걸 목격하게 되고, 이후 누나와 펭귄을 연구하는 것으로 연구가 확장 된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는 아오야마를 보고 있노라면 누나가 아오야마에게 붙여준 “과학의 아이“라는 별명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도 든다.


▶️ 치과 누나가 펭귄 말고 다른 생물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요소다. 빈터에서 펭귄을, 체스에서 박쥐를, 수로에서 고래를, 우산에서 식물을… 현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

여기에, 아오야마가 반 친구 하마모토의 ‘바다 연구’에 합류하면서 또 다른 비밀을 발견하게 되고, 누나에 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등 다양한 사건이 얽히고설켜 더 재미를 더했다.

어느새 나는 아오야마가 되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걸까’ ‘누나의 정체가 뭘까‘ 추리하기 시작했다. 이 SF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게 이런 기분이려나, 생각했다


▶️ 이런 기발한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치과 누나가 펭귄을 만들 때 “솔직히 말해 나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라.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몸이 근질거리면 펭귄이 나와. 뿅 하고.” (76) 라고 했던 것처럼, 작가도 그랬을까. 

상상은 한 세계의 끝에 또다른 세계를 이어준다. 우리의 세계가 현실에서 끝나지 않도록, 좁고 작은 이 시공간 안에 갇히지 않도록. 이 소설로 인해 내 세계가 조금은 넓어진 느낌이다. 그 틈새가 왠지 조금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다.


📍”세계의 끝은 멀리 있지 않아. •··• 세계의 끝은 접혀서 세계의 안쪽에 숨어들어가 있어.“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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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손길 - 고난 중에 경험한 흙수저의 행복 이야기 간증의 재발견 5
권율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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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던가. 난 ’남의 일기 훔쳐보기‘가 제일 재밌더라. 어릴 때부터, 자물쇠가 채워진 친구의 일기 내용이 항상 궁금했고, 친한 친구끼리 주고받았던 교환일기에 참으로 설레어 했던 나. 아, 그러고보니 20년전 쯤 책장 구석에서 오빠의 일기장을 발견해 훔쳐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간질거린다. ’내가 알던 오빠가 맞나‘ 싶은 게, 오빠가 이렇게 뜨거운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나니 사람이 완전 달리 보였더란다. 오빠는 알고 있을까. 이사하면서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그 일기장이 사실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일기는,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경험, 감정, 생각을 고이 담아두는 공간. 그래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의 삶을 나눠 갖는 것만 같다. 정현종 시인이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한 사람의 일생이 함께 오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일기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 권율 목사님의 간증집 ≪전능자의 손길≫은, 흡사 저자의 ’인생 일기‘를 읽는 것 같다. 날짜와 장소가 소제목 옆에 적혀 있어 진짜 일기 같았고,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가 썼던 일기를 거의 그대로 실었다고 하니, ‘일기를 읽는’ 느낌이 마냥 틀린 건 아닌 셈.


그런데 내용이 왜 이리 처절하다냐. 가정폭력에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핍박, 이유를 알 수 없는 말더듬 증상, 늙어보이는 외모에 오해도 많이 받고, 지원해 주는 배경이 없어 일과 공부를 병행해가며 대학에 들어가는 등. ‘율’이라는 예쁜(?) 이름과 상반되게 고단하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저자. 이야, 흙수저도 이런 흙수저가 없다 싶을 정도.

절절하기로 유명한(?) 청교도 신학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도 이 정도로 슬프진 않았는데. ’남의 일기 훔쳐보기‘가 제일 재밌다고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참 무심하시지. 자신을 괴롭히던 원수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하시질 않나, 차비도 없는데 후배에게 매일 천원씩 점심 값을 나누게 하질 않나, 군 생활 내내 갈구던 선임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질 않나,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기독교 동아리에서 헌신하게 하시질 않나, 잘나가는 사람을 만나는 대신 노숙자와 술꾼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질 않나… 주여-!


▶️ 그럼에도 나는, 저자의 인생 일기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삶 곳곳에 미치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까. 저자가 실패하고 약해진 때에도 그를 단단한 전도자로 만들고 계셨던 하나님. 저자가 힘든 경험을 할 때도 그 경험마저 하나님 나라에 선용하시는 하나님. 때에 따라 은혜를 공급하시고, 풍성한 영적 체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복음 전도에 열정을, 말씀에 깨달음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만남과 이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만 보이고 하나님만 드러나고 하나님만 비춰지는 인생 일기. 그러므로 이 일기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책을 덮을 때 나는 결론을 내렸다.

✍🏻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내 인생도 하나님이 주인공 되시기를 기도한다. 형통하고 평안한 때도, 곤고하고 약한 때도, 내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놓여있든지 전능하신 하나님만 비춰지기를. 내 지난 날의 모든 경험도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선용해 주시기를. 

이 책을 읽는 크리스천 독자들도, ‘하나님이 주인공 되시는 인생 일기’를 써내려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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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주의 완전한 딸이라 - 성경적 여성상의 허구를 버리고 복음적 자존감 갖기
강호숙.박유미 지음 / 홍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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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교회가 유독 여성들에게 간섭과 통제, 불평등과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과연 기독교의 참된 문화일까.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고, 교회의 중요한 일을 남성에게만 맡기는 것. ”혼전순결 지켜라. 야한 옷 입지 마라.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는 게 창조 질서다. 교회에서 잠잠하라” 심지어 ”자녀를 낳아라 말아라“ 남성 목사들이 설교랍시고 여성에게 훈계하는 것이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일까.


내가 이 책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건, 두 저자가 나의 학교 선배님이고, 두 저자가 걸어갔던 길을 나도 똑같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울컥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멈췄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두 저자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차별과 억압, 불평등이 무엇인지, 그 때마다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똑같은 일을 내가 겪고 있으니까.


나는 보수적인 대형 교단 신학대학원에서 두 개의 신학 석사를 취득했고, 거의 십수년을 기독교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를 다녔으면 대리를 넘어 과장까지 진급했을텐데. 경력과 학력, 실력이 뒷받침 되어도 여성에게 목사를 주지 않는 교단이어서 나는 만년 말단 계약직이다. 남성 후배들이 목사가 되면 나보다 상사가 되고, 각종 성 차별은 물론이요, 월급 차별, 업무 차별은 기본.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성경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둥, 겸손하지 않다는 둥, 여성이 기가 세다는 둥, 인격을 더 훈련하라는 둥, 2차적인 비난이 뒤따라온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폭력적인 분이 아닌데. 기독교는 왜 이리 폭력적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 불평등과 차별이 만연한 비상식적인 기독교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런 모습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건 차별과 배제와 혐오 없이 평등함을 추구하는 거라고. 성경은 모두에게 주어졌고 결코 남성들이 성경해석을 전유해선 안 된다고. 진리는 우리를 진정 자유하게 한다고. 나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왜 이렇게 남성중심적이고 여성에게 폭력적인 것일까? 두 저자는 이에 몇 가지를 진단한다. 첫째는, 성경이 쓰인 배경(고대 이스라엘과 유대, 그리스-로마)이 가부장적이라 성경에 그 문화가 고스란히 기록되었다는 것. 둘째는, 한국으로 기독교를 전파한 서양 선교사들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고, 셋째는, 한국으로 들어온 기독교가 토착화 되어 ‘유교적 가부장주의’가 되어버렸다는 것.


여성으로서,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강호숙 박유미 두 여성 신학자가 건네는 26통의 편지에 주목해 보면 좋겠다. 자존감, 여성다움, 자유, 성, 비혼, 출산, 평등 등 그간 듣지 못했던 여성을 향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간 왜곡됐던 자존감과 겸손을 ’성경적‘으로 재정의하고, ‘하나님의 딸‘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기독 여성상은 교회가 강요하는 획일화된 ‘여성상’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과 멋스러움을 맘껏 펼쳐 내는 여성이에요. 그러면서도 타인의 견해에 대해 포용적이고 열린 태도를 가진 여성이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개성과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는 여성으로 살아갑시다!“ / 47 <여성다움> 강호숙


나에겐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 내가 30대 여성신학자로서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독교가 더 기독교다워질 수 있게, 후배들이 똑같은 차별을 겪지 않게. 두 저자가 그렇게 했듯이.

📍”여성에게 처음부터 당연하게 주어진 것은 거의 없으며, 현재 우리가 교회와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는 많은 것들은 선배 여성들이 노력한 열매들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 후배들이 지금보다는 평등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작은 길이라도 만들겠다고 결심했으면 해요.“ / 287 <평등에 대하여> 박유미


📍저는 우리가 현재 삶에서 당하는 차별과 부당함, 불공평함과 강요에 문제를 제기하며 저항하는 일은 사랑과 평화, 정의와 자기 결정권과 같은 하나님나라 가치를 향한 자유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 91 <자유에 대하여> 강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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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이데올로기 -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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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불평등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과 피해를 입는 사람,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이 누리는 사람과 덜 누리는 사람, 남의 몫을 빼앗아 가는 사람과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사람. 전자는 불평등 체제의 지배 세력이고 후자는 피지배 세력이다.❞ (머리말 / 31) 


조돈문 교수의 책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주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을 발전시켜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수저 계급론’이 피케티의 ‘세습 자본주의론’과 유사하다는 것.


피케티는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야기하고 심화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그의 책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밝힌 바 있다. 이를테면, 경제가 성장할 때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자산수익 증가율이 더 커지는 구조적 문제 같은 거. 이런 문제는 필연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불평등을 계속 재생산하며 대물림한다. 이를 한국의 수저 계급론에 대입하면, 금수저는 부를 계속 유지하면서 더 부자가 되지만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흙수저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경고 되어왔고, 특히 마르크스에 의해 과학적인 데이터로 증명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피케티의 연구와 주장에 관심을 보인다. 아마 그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자로서, 보수 경제학 연구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밝혀냈다는 것에 놀란 것일 터. 나 또한 그 점을 의아해 했고 신선하다 느꼈으니까.

저자는, 자본주의가 정점에 있던 시기에 불평등이 완화됐던 아이러니한 지점을 보면서 질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 하에도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런데도 왜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않고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건지.


마르크스가 인류 역사를 “계급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면 피케티는 여기에 이데올로기를 더한다. 인류 역사는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의 추구의 역사”라고.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주로 자본계급을 중심으로 한 ’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이고, 평등 이데올로기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렇다면 불평등 체제는 ‘불평등 이데올로기가 평등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뜻이고, ‘피지배 세력‘이 ’지배 세력‘의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데올로기 지배‘라는 말이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 지배 현상을 꽤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책에선 ’인국공‘(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태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저항한 ’촛불 항쟁‘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평등을 원하면서도 사유재산 하나 지키겠다고 불평등을 기조로 하는 대통령에 한 표를 던지는 모습만 봐도.


흥미로운 지점은, ’자본주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흔히 꺼냈던 ’자본주의vs사회주의‘라는 명제를 이 책에선 사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4가지 시장경제 모델’로 다양하게 범주화 됨을 설명한다. ‘스칸디나비아형 사민주의 모델’부터 ’영미형 자유시장경제 모델’까지. 전자는 스웨덴이 대표적이고 가장 평등하며, 후자는 미국이 대표적이고 가장 불평등하다. 한국은 현 정부의 선호에 따라 미국식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 그 결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면서 불공정에만 불만을 가지는 부조화를 갖게 됐다. 평등과 공정 모두를 놓쳐버렸다. 


불평등 체제가 완화될 수 있긴 한걸까? 소수의 고소득자가 다수의 저소득자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런 불평등 사태를 인지하면서도 왜 완화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걸까? 지배계급의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왜 내면화하고 수용하고 있는걸까?

저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에 주목한다. 국민의 조세 부담률은 높지만 정부가 현물 급여 방식의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소득 재분배 효과로 불평등이 완화된 모델.

그리고 중요한 건 촛불 항쟁을 잊지 않는 것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심판하기 위해 들었던 촛불. 비록 실패한 것처럼 보여 좌절스럽고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불평등과 불공정 체제에 분노하자고, 다시 한번 촛불을 들자고, 그랬을 때 비로소 희망의 내일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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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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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불쾌하고 꿉꿉한 날씨,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하고 마음 한구석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날. 나 자신에게 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도 다정하기 힘든 요즘 같은 날에, 백수린 작가는 내 안부를 다정하게 묻는다. 너의 하루는 어떻냐고.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면서. 


백수린 작가의 ≪다정한 매일매일≫은, 초판에서 두 편의 글을 새롭게 추가하여 개정판으로 이번에 다시 출간되었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 끝에 새겨넣는 애정의 언어들이, 제목만큼이나 참 다정했다. 글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고 침잠했던 심연을 간지럽혔다. 한장씩 넘길 때마다 내 마음이 전보다 더 폭신해져 감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하고 말랑한 식빵 같은 마음이 되어 있었다. 언제 불안정했냐는 듯이. 언제 서걱서걱 소리가 났냐는 듯이. 다정함이란 그런 것일까. 어떠한 일도 전혀 어떠하지 않게 만드는 힘 같은 거.


천천히 낭독하고 다이어리에 옮겨 적기도하면서, 문장과 문단, 글 하나 하나를 눈과 마음에 담았다. 글이 너무 좋았어서, 푹 스며들어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 이후로 그렇게 읽었던 책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곁들여 소개하는 빵과 문학 작품은 덤이다. 생트로페의 ’트로페지엔‘, 일본의 ’바움쿠헨’, 오스트리아의 ‘자허토르테’는 나중 언제라도 한번 먹어볼 수 있으려나. 무슨 맛일지 궁금하다.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와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은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추가했다.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작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백수린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읽은 것 같아 반가웠다.


이번 산문집을 읽고 나는 백수린 작가의 팬이 되었다. 출판사와 약속한 리뷰 마감을 3일이나 넘겨버렸지만, 그래서 조바심이 났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인스턴트 음식처럼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빵을 만들 듯이.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오븐에 넣어 부풀기를 기다리듯이. 인스턴트 빵은 결코 흉내내지 못하는 따끈하고 신선하고 고소한 빵 맛을, 이 책에선 맛 볼 수 있을테니까.

나와 타인에게, 그리고 우리의 세상을 향해 한뼘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게하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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