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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평점 :
지금껏 살아오면서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증오? 분노나 화 같은 건가? 아니면 미움이나 혐오랑 비슷한건가? 아니, 그것들보단 좀 더 강하고 질기고 파괴적인 감정 같기는 하다. ‘애증’이란 말도 흔히 사용되는 걸 보면, 증오는 사랑과 반대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감정인 것도 같다.
모호하게만 느꼈던 증오를, 선명하게 고찰해 볼 수 있는 책을 읽었다. 책사람집 출판사의 신간, ≪증오의 역습≫이 그 책. 부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법정신의학자인 저자가 심리 치료 현장과 범죄 현장 등에서 경험한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증오에 관해 다각도로 연구한 책이다.
저자는, 증오가 각종 정신 질환과 사회적 범죄를 야기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증오 범죄, 테러, 학살, 소수자 혐오와 박해 등. 특히 오늘날 그 심각성이 날로 더해지는 디지털 범죄는, 증오가 원인인 대표적 예다. 증오 때문에 개인이 망가지고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증오란 부단히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199)는 말처럼, 증오는 매우 파괴적이고 모두를 죽이는 죄악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증오가 우리 삶과 사회를 망가뜨리도록 그냥 내버려 둘 것인가? 증오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먼저, 증오를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하지 말고 그 정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증오가 무엇인지, 어떻게 형성하고 발현하는지, 증오와 비슷한 감정은 무엇인지, 증오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뇌과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증오를 고찰한 후, 증오를 다스리고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학술서이면서 실용서 같은 책이다.
“증오 범죄, 테러와 학살, 소수자 박해와 전쟁을 불러온 증오는 늘 사소한 곳에서 시작” 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긍정적으로 공감 받지 못했을 때, 무시당할 때, 실망했을 때, 모욕을 받았을 때 증오가 생기고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가족과 타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따뜻한 공감 하나 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증오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사랑도 사소한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의 미소나 가족의 격려처럼 애정이 담긴 관심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부드러운 힘이다. 인정과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이런 따뜻함에 인색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호 존중과 품격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인간은 평생 누군가 자신을 소중히 여겨 주고 믿어 주기를 갈망한다. 간단히 말해서 핵심은 언제나 사랑이다.”(54)
증오의 여러 특징 중 ”당사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당사자의 느낌, 생각, 몸을 장악하고 점령한다”(📎117)는 게 증오의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온 몸을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사로잡기 때문에 금세 사라지는 화나 분노와는 다르다고 한다. 또 공격성을 동반하며, 여러 인성(성격) 장애를 유발한다고 한다. 성격과 행동에 증오의 특성이 새겨져서 누군가를(또 자기 자신을) 증오하도록 부추기는 인성이 된다고 하니, 증오는 마냥 가볍게 치부할 만한 감정은 아닌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1인칭 시점으로 증오를 소개하는 부분. ”안녕, 나는 증오야.”(📎101). 실제로 증오를 대면하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섬칫했다.
직업은 “파괴자”. 사는 곳은 “사람들 사이에”. 친한 친구는 “경멸과 잔혹함”. 증오의 미래 계획은 “정보통신 업계”라고.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증오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얼마나 오래 살 것 같느냐는 질문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마음을 콱 찔렀다.
증오는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이면서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공격성이다. 이 말을 바꾸면, 인간만이 이 증오를 다스릴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책을 다 읽고난 후 ‘증오, 감히 우리를 공격하시겠다? 우리가 너를 도리어 역습하겠다! (😅)’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 책이 그런 개인과 사회가 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