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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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년간 <한겨레>의 문학전문기자로 읽고 써온 최재봉. 그가 정년퇴임 후 지금껏 지면에 실은 기사와 칼럼 등을 이 한 권에 모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책은 저자가 한겨레에서 34년 7개월 문학을 취재했던 물리적 시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훨씬 더 넓은 문학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조세희, 박완서, 황석영, 안도현 작가의 시대부터 김초엽, 한강, 최은영 작가의 시대까지... 또 그들이 그려낸 문학 속 시대까지...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문학의 세계로 이 책은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정년퇴임까지 문학 기사를 담당했던 기자답게, 저자는 수려한 문장과 푹 고아낸 표현력을 보여준다. 문학에 대한 그의 해석과 통찰력은 마치 해당 문학 작품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것 같다. 해당 문학을 먼저 읽지 못했다 해도 전혀 긴장할 필요 없다. 저자의 글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슴 뻐근한 해갈의 시원함을, 골수까지 사무치는 진한 영양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낭독을 하거나 필사를 하는 등 글 하나 하나를 아껴서 읽었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가 뭘까. 저자가 쓴, 조세희 작가에 관한 “부고” 글과(370p) ≪하얀 저고리≫를 더듬어보는 글에서(29p) 약간의 힌트를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문학의 이야기가 갖는 영속적인 힘’ 말이다. 작가는 언젠가 그 생명을 다하고 세상에서 유한히 사라지지만, 문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 문학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어 무한히 존재하며, 시대가 흐르고 공간이 달라져도 읽는 이들 곁에서 오래 숨을 숸다. 목소리를 내어, 아파하고 분노하고 위로하는 문학. 목소리를 내어,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벌어진 부위를 봉합하는 문학...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여전히 150만 부가 인쇄되고 읽히고 있는 것처럼.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고는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면 눈물 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374). 조세희 작가 인터뷰 중.

저자의 주옥 같은 글들을 앞으로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정년퇴임을 했으니 한겨레에서 정기적으로 읽는 건 힘들겠지. 대신 외부 매체에서는 간간히 볼 수 있으려나. 비록 현장을 떠났다해도, 나는 ‘저자가 글 쓰기를 쉬지 않았으면’하고 바란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야기는 오래 사니까, 저자가 생명력을 덧입힌 많은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고.

저자의 지난 글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귀했던 책이다. ’서평과 칼럼, 에세이는 이렇게 쓰는구나...‘ 글 쓰기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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