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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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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조기현 #홍종현 #한겨레출판
돌봄청년 커뮤니티 조기현 대표와 방문진료 병원을 운영하는 홍종원 의사의 대담을 엮은 책. ‘돌봄’에 관해 다각도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 2-3번 곱씹어 읽었다.
조기현은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젊은 보호자가 됐다고 한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영 케어러’가 된 것. 그래서 그가 ‘청년의 돌봄’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지난 삶이 우러나오는 것 같아 더 눈길이 갔다.
청년을 단순히 노동력 상품으로만 보지 말고, ‘돌봄의 대상’이자 ‘돌봄의 주체’로 봐야 한다는 말, 청년들에게 자기 스스로와 타인까지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이건 청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내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했다.
📍아직도 청소년을 돌봄받는 존재, 청년을 자립하는 존재로만 본다면 그들이 돌봄을 받는 동시에 돌봄을 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 혹은 자립하는 시기에도 가족돌봄의 상황들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내지 못할 거라고 봐요.” / 108
홍종원은 가정을 방문하면서 진료를 하다 ‘치료와 돌봄’ 그 둘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치료를 하려면 환자를 알아야 하고, 환자의 생전 맥락을 알게되면 돌봄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고. 이와 연관해 ‘가족돌봄’의 한계와 ‘커뮤니티 케어’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대담도 흥미로웠다.
제도와 시설이 돌봄을 수치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돌봄을 서비스로 제공받는다면 4시간이면 충분하겠지만, 사실 돌봄은 일상속에서 24시간 필요하기에 그 공백을 더 촘촘하게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선 좀 갸우뚱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중병이 걸렸을 때만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사람에게는 매 순간 돌봄이 필요하거든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라도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서로를 돌본다면 위기의 순간에 찾아오는 슬픔과 소진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사회의 삶이 그런 사소한 돌봄과 여유를 계속 빼앗기 때문에 돌봄이 어느 순간에 재난처럼 다가 오는 것 같아요.” / 94
나는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돌봄’이란 개념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돌봄‘이 나에게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박혀 있음을 깨달은 뒤였다. 돌봄은 저임금(무임금) 고강도에, 경제력이 없는 여성 주부들이 주로 하는 일이라는 생각. 이런 돌봄에 대한 저평가 때문에 나도 돌봄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돌봄에 관한 내 인식에 약간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걸 깨달았다. 돌봄은 특정한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돌봄을 받고 돌봄을 제공하는, 상호의존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돌봄을 화폐로 수치화하지 말고 돌봄 그 자체의 가치를 봐야한다는 것...
’노년에 병든 남편을 어떻게 돌봐야 하나‘ 두려워하던 내가, 조심스레 상상도 해보게 된다. 가족과의 돌봄 관계에서 더 나아가 취약한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돌봄으로까지 나아가 보기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관계 맺는 돌봄을 나와 타인이 주고받을 수 있기를.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면 그리고 동시에 돌봄을 받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개인 차원의 돌봄에서 국가 전체 시스템 차원의 돌봄까지 돌봄에 관해 폭 넓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단번에 뚜렷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오랜기간 정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정답이 없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대화를 하며 함께 하나하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한다. 이 대담집은, 그런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