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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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희정 글, 최형락 사진 #한겨레출판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장인, 달인, 고수”라고 바꿔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베테랑이라 한다. ≪베테랑의 몸≫은 서로 다른 연령, 성별, 분야의 베테랑 13인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기록노동자 희정의 글과 사진작가 최형락의 사진은 13인의 베테랑을 한명의 개체로서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세공사 김세모, 조리사 하영숙, 로프공 김영탁, 어부 박명순&염순애, 조산사 김수진, 안마사 최금숙, 마필관리사 성상현, 세신사 조윤주, 수어통역사 장진석, 일러스트레이터&전시기획자 전포롱, 배우 황은후, 식자공 권용국.

존경과 존중을 담아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 드리고 싶은 이들은, 모두 오랜 기간 꾸준히 한 자리를 지켜온 숙련자이자 노동의 궤적을 몸에 지니고 있는 베테랑들이다. 이들의 삶과 노동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이들 중 자신을 베테랑으로 끄덕이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내가 무슨 베테랑이냐’며 손을 내젓거나 도리질을 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베테랑이 되려고 이 일을 꾸준히 해 왔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열심히, 그냥’ 했을 뿐이다. ‘하다보니’ 숙련 되었고 ‘돌아보니‘ 오랜 세월이 흘렀던 것일 뿐이다.


”이건 하다 보면 다 하게 되는 일이에요.“(49)

”몸에 배 가지고 괜찮아요.“(118)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라는 소개처럼,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그 일은 어떠한 형태로든 몸에 기록되기 마련이다. 이들도 마찬가지. 성실히 해오던 일은 질병으로든, 굳은 살이든, 익숙함이든, 습관으로든, 몸에 남았고 진한 흔적을 남겼다. 세공사 김세모는 “걸음을 재바르게 옮길 때마다 상체가 양옆으로 흔들렸다. 허리를 혹사해온, 아니 꾸준함을 지켜온 사람의 뒷모습이었다.”(41) 안마사 최금숙은 손가락의 통증을 늘 달고 산다. 일러스트레이터&전시기획자 전포롱은 “둥글게 말린 어깨와 길게 뺀 목, 기울어진 등이 그의 분주한 손길을 숨긴다.“(287) 수어통역사 장진석의 가방은 안약을 비롯해 각종 준비물로 항상 무겁다. 세신사 조윤주의 손발은 갈라지고 터져있다. 그래서 베테랑의 몸을 마주한다는 건 어쩌면, 켜켜이 쌓인 시간을 더듬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산사 김수진 편과 안마사 최금숙 편의 <인터뷰 후기>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수많은 생명이 힘들게 탄생하는 것에 비해 일하다가 쉽게 목숨을 잃는 현실을 꼬집었고, 장애를 입은 채 베테랑이 되는 것과 비장애인이 노동하다 몸이 손상되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손상된 몸, 손상을 입은 몸‘이라는 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타인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사회가 모두의 노동으로 연결 되어 있다는 걸 인지하는 일이다. 별 볼 일 없어보이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묵묵히 해내는 이들의 하루가 모여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타인의 노동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몸에 새기고 있는 ‘노동하는 삶’의 흔적을 좀 더 거룩하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로 베테랑을 만나는 형식인 만큼 글밥이 많지 않아 읽는 데 그리 어렵지 않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도 저자가 그 무게감이 적절히 덜어내어 편안하게 베테랑들을 만날 수 있게 한다. 나는 매일의 삶에서 어떤 노동의 흔적을 몸에 새기고 있을까, 책을 읽고나서 돌아보게 되었다. 독자들도 같은 질문 앞에 서 보면 좋겠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질문하게 하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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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직업에 환상을 품거나 편견을 가지거나, 그도 아니라면 무지하거나 무심하니까. 그래서 그의 일터로 간다. 평생 ‘일’을 다뤄온 사람과 마주 앉아 그의 손끝에, 어깨에, 발뒤꿈치에, 입가에 노동이 남긴 흔적을 본다.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흔적을 따라잡다보면 노동이 삶에 새긴 자국, 때론 어떤 저력과 만나게 되는데 그제야 비로소 누군가의 일에 환상과 편견을 가지는 일이 멈춘다. / 18


“이건 하다 보면 다 하게 되는 일이에요.”

숙련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의 시간 속을 채워 쌓이는 게 아닌가. 그 시간을 채우는 게 어렵고, 잘 채우는 건 더 어렵다. 우리가 숙련자들에게 감화받는 지점은 거기에 있을진대, 사람들은 유독 살림에 박하다.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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