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을 삽니다
장양숙 지음 / 파지트 / 2022년 3월
평점 :

지난 달에 읽은 책이었는데, 리뷰의 처음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라 한 달을 질질 끌었다. 다른 에세이에 비해 만감이 교차했던 책이었지만, 리뷰하기를 주저했던 이유는, 솔직히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첫째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였다. 다섯 살 즈음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자격지심에 죽고 싶었던 장애인으로서의 삶,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주린 배를 달래가며 행상을 돌아야 했던 빈자로서의 삶,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영업을 뛰어야 했던 여성 가장으로서의 삶…을 읽고 도대체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책을 읽고나면 꼭 뭐라 말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출판사와 약속을 한 책이라 반드시 글로써 되새겨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책을 뭉근히 음미하도록 가슴 속에 그냥 가만히 남겨뒀을 거다. 둘째론, 저자의 아픔과 슬픔이 내 리뷰에서 더 많이 조명 될까봐, 그리고 마지막 셋째론, 내가 그녀를 섣부르게 연민하는 것일까봐 그랬다.
엄기호는 책 ≪단속사회≫에서, 연민을 느끼게 하는 감정이입은 “내가 일시적으로 그 사람과 하나가 되긴 하지만 그 바닥에는 나와 그 사람의 처지는 다르고 ‘공통된 것’(the common)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내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함을 느끼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는 그와 같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기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대개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보며 느끼는 연민은 나는 그렇지 않다는 안도감과 쌍을 이룬다. 연민의 결과가 나르시시즘으로 귀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속사회≫ “무엇이 우정을 가로막는가” 250)
다시 말하면, 나는 저자의 삶을 읽고 울컥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고 같은 여성으로서 연민도 느꼈지만, 이 감정들이 저자의 눈물 젖은 삶에 일시적인 감정이입을 끝내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데서 오는 감사와 안도감’에 ‘내 세계의 안온함만을 더 굳세게 확인’하고 있는 것일까봐 두려웠던 거다.
누가… 장애인을, 가난한 자를, 여성 가장을 나보다 더 약자라 여길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평등한 관계이다. 우리는 그들을 나와 다르지만 동등한 존재로 관계하고, 그런 관계를 통해 협소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며 성장한다. 나는 이것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내 안의 편견과 우월감, 이질감을 걷어내었다.
그렇게 하니 비로소 저자를 굳이 다른 말로 수식할 필요 없는 ‘장양숙’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그녀를 ’친구‘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는, 저자에게 이 지면을 빌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단단하고 옹골찬 삶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 고맙다고. 나또한 아프고 슬펐던 과거를 털어내고 그런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
책에서 감동 받았던 부분은, 일을 대하는 저자의 마인드와 태도였다.
“내 하루의 목표는 분명했다. 계약서를 한 장도 안 들고는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철칙이 있었다. 돈이 필요했다. 절대 빈손은 안 됐다. 나 자신과 약속한 것들이 있었다.”
1. 하루 단 한 장이라도 좋으니 계약서를 꼭 가지고 귀사할 것.
2.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워서 한 명 한 명 기도할 것.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열어 주지 않는 집에 대문을 두드리며 하루를 열어야 한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건강한 여자였다. 당당해야만 하는 커리어 우먼인 것이다.”
/ <3장. 집에서는 가장, 밖에서는 팀장> “문을 열게 하기” 92-93
저자는 가정을 지켜야 해서 영업이라는 고된 일을 선택했지만 그래서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했지만, 그럼에도 비관하거나 불평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을 했다. 영업대상인 아이들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 명 한 명을 위해 기도하며 진실 되게 대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서 한 명 한 명 기도할 것“... 나 자신을 정직하게 직면하며 성찰했던 대목. 지금 내가 배워야 하는 마인드와 태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만난 책이어서, 여운이 많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