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록하다
최완근 지음 / 메이킹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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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록한다. 기록은 힘이 있다. 오래 전 일기장을 펼치면 마치 그 때의 공기가 다시 느껴지는 것처럼. 기록은, 시간에 휩쓸려 소멸 되어 버리고 마는 것들을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소환해 추억으로 되살려준다.


제목에서 흥미를 느껴 첫 장을 펼쳤다. 저자는 삶과 내면을 기록해 책으로 냈다. 내용의 범위가 일생의 전편은 아니기에 '전고(傳稿)'와는 약간 다른 성격의 책. 전체적으로 여유롭고 잔잔하고 편안하다.

‘기록’이라는 주제로 기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기록하는지, 기록자의 소양, 그리고 기록의 유용한 도구인 사진에 대해서도 함께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70세에 가까운 (젊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라 한 이유는 국가에선 그 나이를 ‘노인’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이 되면 지하철 무임승차를 허용해 주고,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해 주는 노인. 그러나, 여기에 내가 ‘젊은!’을 덧붙인 이유는, 그 나이는 결코 '늙은 나이'가 아닌 '농익어가는 나이’라 믿기 때문이다. 노사연의 노래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인생의 막바지를 준비하고, 소멸과 쇠퇴기에 접어든 시기라지만, 꿈 꿀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돈을 벌어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데에서 자유롭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있기에 못다한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삶을 여유롭게 관조할 수 있기에 예술의 아름다움도 누릴 수 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노년의 원숙한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인생 후배들에게 희망의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는, 제3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할 수 있는, 기대되는 시니어라는 것!

저자는 부단한 기록을 통해 이 사실을 깨우친 듯 했다. 기록하는 저자의 열정에 응원을 보내고, 그렇게 젊은 시니어로 남아 달라 부탁하고 싶다.


책 곳곳에서 말하고 있는 저자의 '기록하는 다양한 이유'들은 나 또한 그런 이유로 기록을 하기에 공감이 되었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 밝힌 "나를 두고 가고 싶”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남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라는 생각”에 개인을 기록하고 책으로 냈다는 말엔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인간은 본디 흙으로 만들어져 흙으로 돌아가게 창조 되었는데 굳이 남은 자에게 떠나는 자의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가. 그건 오히려 미련 같고 집착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가 애써 남긴 흔적은 남은 자들을 위로하기보다 도리어 그들을 그리움으로 얽어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자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흔적을 남겨놓고 가려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세대 양분화가 더 심해지는 이 때, 익어가는 시니어의 기록을 본다는 건 MZ세대인 나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너무나 바빠서 나 자신을(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어쩌면 이 책은 마냥 배부른 소리로 보일지도.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기록'을 통해 삶을 반추해 가는 걸음은 필요하다. 또 반드시 맞이해야 할 나이를 잘 준비하는 전향적인 계기로 이 책을 바라보면 어떨까.


78p / “나의 지나간 상처를 매만지며나름의 성취함을 반추하고너머를 바라보면서 정리하고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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