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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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책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된 것은 좀 의미심장하다. 내 안의 욕망과 고독을 향해 침잠하면서도 현실적인 분출을 갖지 못한 나의 어떤 질긴 모순적 상황과도 아주 많이 달라 보이지만 않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 우리와 나란. 컴퓨터의 등장과 웹에서의 나, 내 안의 꿈틀대는 자아와 마주할 때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들을 사회라는 작은 무대위에서 펼쳐나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씌여진 시대의 고민과 무관하지만 않아 보이기도 했다.

사춘기 아이가 지나면 누구나 어른스러워져야 하고, 사회가 규정한듯한 자리, 우리 스스로가 다져온 그 '자리'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들을 그런데 여전히 오늘날 '정의'라고 못박아 말할 수 있을까.

95쪽. 그때만 해도 그자의 문제가 아닌 내 취향 문제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평범한 증오가 아니라 좀 더 심오한 인간 내면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었네. 본질적인 증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낯설고 역겨운 무언가로 인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괴리감.

97쪽. 그자는 벌떡 일어나 서랍으로 가다가 잠시 그대로 멈추더니 가슴에 손을 앉더군. 턱이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이빨 부딧히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99쪽. 죽음에서 깨어난 유령처럼 떨리는 손을 뻗은 남자는 다름 아닌 헨리 지킬이었다네! .. 잠을 이룰수도 없고, 밤낮으로 죽음과도 같은 공포가 내 곁을 맴돈다네.

스스로 세운 높은 이상에 갇혀 병적인 수치심으로 욕구를 숨겨온(101쪽) 지킬은 사회규범을 거역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따를 수밖에 없(102쪽)다.

그렇다고 위선자는 아니었던, 한 쪽만인 진정한 나라고 잘라 말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은밀한 삶. 그를 해방시켰으나 결국은 파멸로 이르게 한 약품의 개발.

102쪽. 나를 파멸로 이끌 그 진실이란,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네. 내가 둘이라고 한정한 이유는 현재 내 지식으로 그 이상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네. 누군가 이 연구를 이어 갈 테고, 나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룩하는 사람도 나오겠지. .. 인간의 이중성을 발견한 것도 도덕적인 나였지.

죄책감과 불명예를 괴로워할 필요가 없이 자신 안의 두 자아를 분리하게 될 기적이 가능하리라 기뻐도(103쪽) 하며, 어울리지 않는 두 괴물이라는 양심의 극과 극의 싸움과 그 둘의 분리를 연구한 지킬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끝으로 책이 마무리 된다.

103쪽. 우리가 옷처럼 걸치고 다니는 육체는 겉으로는 강인해보이지만 그처럼 실체가 없고 안개처럼 일시적인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 육체라는 껍데기를 흔들어 벗겨 낼 힘을 가진 약물을.

104쪽. 강력한 방어를 뚫고 인간 내면에 들어가 자아를 조종하고 뒤흔들 만큼 강력한 약물이라면, 미세하게 과용하거나 사소한 실수만 해도 선했던 내가 완전히 지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네.

열 배는 더 사악하게 변해 버린 듯. 포도주 처럼 달콤하고 포근(105쪽)한 그 '신선한 감각'을 즐겼던 시간의 모순된 진실을, 거울이 없는 서재에서 편지를 써내려가는 헨리 지킬의 이야기는 한 번쯤 곱씹어 보아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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