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을 향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다가 머쓱해지는 일이 해미에게는 종종 일어났다.
자신의 감각이 다소 별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미는 그때 처음으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안 맞는 거지, 나랑은. 그래도 그렇게 표를 낼 것까지야.
이렇게 작은 상처도 상처라는 것이, 그것이 아프다고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몸의 신경들이 깨어 있고 자신에게 무엇이든 조치를 좀 취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고, 이상했고, 무시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감각이 너무도 같잖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다가, 다시 울고 싶어져서, 서둘러 샌들을 신었다.
눈앞의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꾸만 잠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자신이 몹시 한심하고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큰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작위적인 인간관계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얻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 웃어 보이는 일은 회사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런 관계를 통해 얻을 것도 줄 것도 별로 없었다.
원색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북북 그어놓은 듯한 날것의 감정들,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주고받는 것처럼,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으면서 험담을 하는 그들을 보며 지현은 환멸을 느꼈다. 왜 유능한 여자는 항상 이런 식으로 절구 속에서 마늘처럼 빻아지고 마는 걸까? 다 큰 어른들이면서 왜 동료를 저런 식으로 모함하는 걸까?
친구가 감당하고 있는 정신적 무게를 같이 짋어지기가 버거워하는 손을 놓아버렸다.
자신이 하는 일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없는 순수한 작업이며, 하나의 예술이기도 하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는 자괴감이 있었다.
너무 웃긴 일들 때문에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 말을 못 해서 그런 거야. 말이라도 하면 좀 나아.
너는 네가 도덕적이어서 부끄러운 거니, 더 도덕적이지 못해서 부끄러운 거니?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렸다고, 바닥을 보여버렸고,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까지 해버렸는데. 그런데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괜찮을 거다. 다 괜찮아질 거야.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미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사랑하는 딸, 너는 내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친구라는 말이 세연에게 언제부턴가 몹시 그리우면서도 버거운 말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