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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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을 향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다가 머쓱해지는 일이 해미에게는 종종 일어났다.
자신의 감각이 다소 별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미는 그때 처음으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안 맞는 거지, 나랑은. 그래도 그렇게 표를 낼 것까지야.


이렇게 작은 상처도 상처라는 것이, 그것이 아프다고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몸의 신경들이 깨어 있고 자신에게 무엇이든 조치를 좀 취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고, 이상했고, 무시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감각이 너무도 같잖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다가, 다시 울고 싶어져서, 서둘러 샌들을 신었다.

눈앞의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꾸만 잠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자신이 몹시 한심하고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큰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작위적인 인간관계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얻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 웃어 보이는 일은 회사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런 관계를 통해 얻을 것도 줄 것도 별로 없었다.

원색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북북 그어놓은 듯한 날것의 감정들,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주고받는 것처럼,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으면서 험담을 하는 그들을 보며 지현은 환멸을 느꼈다. 왜 유능한 여자는 항상 이런 식으로 절구 속에서 마늘처럼 빻아지고 마는 걸까? 다 큰 어른들이면서 왜 동료를 저런 식으로 모함하는 걸까?

친구가 감당하고 있는 정신적 무게를 같이 짋어지기가 버거워하는 손을 놓아버렸다.

자신이 하는 일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없는 순수한 작업이며, 하나의 예술이기도 하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는 자괴감이 있었다.

너무 웃긴 일들 때문에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 말을 못 해서 그런 거야. 말이라도 하면 좀 나아.

너는 네가 도덕적이어서 부끄러운 거니, 더 도덕적이지 못해서 부끄러운 거니?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렸다고, 바닥을 보여버렸고,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까지 해버렸는데. 그런데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괜찮을 거다. 다 괜찮아질 거야.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미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사랑하는 딸, 너는 내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친구라는 말이 세연에게 언제부턴가 몹시 그리우면서도 버거운 말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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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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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떠났다. ‘안다는 것’ 과 ‘감당한다는 것’ 사이엔 강이 하나 있는데,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힘든 것이 그 강의 속성인지라, 그 말은 그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부단히 헤엄치고 있는 사람만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영복은 ‘아름다움’ 이 ‘앎’에서 나온 말이며, ‘안다’ 는 건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 언제든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 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누군가의 평생이 있어야만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위로입니다.
_ 하지 않는 게 좋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걸 잘 아는 얼굴.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에 나는 늘 마음을 빼앗긴다.
- 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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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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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더라.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정말이지 명품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 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에 대해 덕을 쌓는 것이 내 실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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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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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 결코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숨기느라 자신의 귀한 생을 다 써버리지 않기를
자꾸만 실패하는 못난 자신을 견디는 일이었다.
모욕적인 자선을 거부하고 위태롭지만 당당한 자립을 선택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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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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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보이고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세상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듣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있었다. 이 이상한 느낌은 뭘까, 하며 계속 곱씹다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혹시, 세계관이라는 것이 생긴 것인가?
- 그러니까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
그날 나는 나의 우물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보다 생각했다.
- 빛나도 화려한 무언가를 위해 기꺼이 쓸어버려도 좋은 어떤 것이 아니라 무엇이 쓸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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