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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실 - 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
송혜승 지음, 고정아 옮김 / 디플롯 / 2025년 10월
평점 :
형성되지 못한 정체성, 지워버린 존재감, 완벽 이외의 것은 쓸모없어지고, 어느 곳에서도 소속되지 못한 듯한 기분. 주인공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고 바라며 물속에 잠긴듯한 갑갑함 속에서, 순식간에 책을 읽어냈다.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은 부모님이 해내지 못한 돈과 명예에서의 성공을 강요받는다. 그것은 그녀가 원한다고 생각하기 전부터 인생의 목표가 되어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엄마는 행복이란 부족한 사람들이 쫓는 무의미한 가치라며 그녀의 희망을 내던지고 만다. 그럼에도 그녀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해 엄마의 진흙 인형이 되길 자처한다.
”산 아래 내려왔을 때 나는 내가 엄마의 소원에 따를 것을 알았다“라는 대목에서는 마치 누군가 나의 숨을 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한 딸, 좋은 친구, 완벽한 아내, 성공한 여성 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목 밑에 놓여진 칼과 같았고 그녀는 언제나 살고 싶다 보단 살기 싫다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머리 속을 잠식하는 우울감,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며 전화를 건 엄마로부터 돌아오는 비난. 그녀는 너무나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언제라도 그녀의 가치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 가슴 속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열정이 있었고, 나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녀는 지옥같은 기억 속에서도 자신을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도실“이란 고분고분한, 온순한 이라는 뜻으로 아시아계 여성에게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희미해지는 정체성을 합리화하는 이 단어와 사람들의 잘못된 가치관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피와 살 이루어진 다 같은 인간일 뿐이지만 우리의 내면은 수많은 가치관과 열정, 사랑과 인내로 채워져 있다. 서로 다른 인격체임을, 나 자신을 일으켜줄 사람은 결국엔 나라는 것을 우리는 꾸준히 기억하고 되새기며, 힘든 세상이지만 숨 쉴 곳 하나 만들어 둔 채 조금씩 쉬어가며 인생이란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