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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가라앉은 뒤 - 재난 복구 전문가가 전하는 삶과 희망
루시 이스트호프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25년 9월
평점 :
<먼지가 가라앉은 뒤>라는 제목만큼 이 책에 어울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재난 후의 삶과 터전을 복원하는 '재난 복구 전문가'들은 현장의 먼지들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대응과 복구가 시작될 때 등장한다. 그들이 보는 현장은 언제나 처참하고 괴롭고 혼란스럽다. 쏟아진 잔해, 핏자국, 어떤 이의 흔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돌리고 싶게 한다. 하지만 재난 복구 전문가들은 그럴수록 더욱 크게 눈을 뜨고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바라본다.
세계의 다양한 참사들을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마주한다. 보통은 사건의 시작에만 관심을 가진다. 나 또한 그렇다. 사고가 일어난 뒤 현장은 어떻게 복구되며 유가족들, 희생자들이 어떻게 다시 삶을 일구어 내는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재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재난 복구 전문가' 이다. 그들은 재난이 일어남과 동시에 세워 두었던 비상 계획을 실행하고, 현장을 복구하며 희생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유류품들을 회수하여 유가족의 품에 안겨준다. 재난 이후에는 그와 비슷한 나중의 사고를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법안을 수정하며 철저한 준비를 해 나간다. 그건 어떠한 어중간한 신념으로는 해낼 수 없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수행되어야 하는 업무일 것이다.
정부와의 갈등, 유가족들과의 관계, 믿고 싶지 않은 눈 앞의 상황들은 그들을 구석으로 내몰고 자신들의 생활과 재난 현장을 분리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게 한다.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가 자신의 것과 같을 수도 있으며, 추락한 비행기 내에서 희생자가 사용한 칫솔과 똑같은 것이 나의 안락한 집에 있을 수도 있다. 희생자의 지갑엔 꼬깃 꼬깃 접어둔 어린 아들의 사랑스러운 편지가 들어있기도 하며, 그들이 보낸 마지막 문자 메세지가 '오늘은 어떤 차 마실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하지만 영원히 대답은 들을 수 없는 문장일 때도 있다. 그건 정말이지 말로 다 못다 할 참담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이다. 텍스트로만 접한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으니까.
어떤 것들은 많은 목숨이 희생 당한 뒤에야 변화한다. 희생자들을 위한 안치소, 유가족들을 위한 배상 정책, 사람들의 안전을 향한 인식들은 언제나 재난 그 '이후'에 바뀌기 시작한다. 재난을 겪는것, 또는 재난의 변두리에 머무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 곳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음은 당연하지 않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것이 바로 '재난'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더욱 깊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변화해야 한다.
우리가 숨을 내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그런 것들이 일어난다. 해일이 마을을 뒤덮고, 불길이 목숨을 앗아가며 폭탄은 터지고 비행기는 추락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잃고, 가족을 찾아 헤매며 어린 아이들은 동심과 제정신을 잃어버린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이쪽에 서 있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의 아픔을, 상실을, 고통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우리가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어떤 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 이 책은 이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할 뼈 아픈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