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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길은 여름으로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내달리던 자전거, 남자 아이의 뒷자리엔 슬퍼보이기도, 화가 나 보이기도 한 여자아이가 올라타 있었고, 그들의 머리 엔 여러 줄기의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 계절은 여름이였고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여름 속에 머물러 있었다.
해원만을 향했던 경모의 기도는 처음엔 죄책감이였으며 이후엔 뜻모를 그리움이였고, 자신과 마음이 같이 않다는 좌절감이자 같은 날 생긴 짙은 흉터였다. 사랑이였을까 하는 자각은 너무 오랜 시간 후에 찾아왔지만 모든 것을 떠나버리기 위한 굳은 다짐을 한 뒤였기에 경모는 그저 마음 속 깊은 곳에 해원이라는 그림자를 묻어둘 뿐이였다. 하지만 계속된 만남들과 그들이 마주친 그 우연같은 시간들, 서로를 생각하던 숱한 밤들, 미움과 애정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마음들이 모여 그 둘의 길은 계속해서 여름으로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장난 자전거에 해원을 태워 간절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을 경모와, 추운 겨울날 눈이 가득한 길 위에서 초초한 마음으로 세정을 기다렸을 정욱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표정 하나 드러내지 못한 채 아픔에 감싸여 있던 연서에게 손을 내밀던 해령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서로에게 날 선 말들만을 던지며 그 말에 본인 또한 상처입었던 수많은 밤들을 보낸 우리들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견뎌내기 힘든 하루 하루를, 이렇게 버텨낼 가치가 있는 삶인지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죽음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머리 위론 햇살이 비출 것이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 울 준비를 하는 새싹을 보여줄 것이며, 바람은 우리 영혼을 실어 구름 위로 데려가 줄 테니,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밝음도 존재할 테니 고작 한 명을 위한 기도이더라도 멈추지 말자. 우리 마음 속의 작은 불꽃이 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우리의 삶은 그것 만으로 충분하니까.




"지금도 그때 일이 가끔 생각나. 사실 그때 네 자전거 뒤에 타고 가는 게 살짝 무서웠거든. 그렇게 길을 내달리는 게. 그때는 마음이 조급하고 슬프고 또 복잡하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면 있잖아." 해원이 경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달리며 느끼던 숲의 내음과 반짝임, 투명한 바람의 세기와 습도 같은 게 있잖아. 무섭고 두려운 마음 가득한 나를 감싸고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지금도, 가끔 생각나.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 마." 스르르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해원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대지는 어둠을 발산하는 듯 더 짙어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바람에 너울거렸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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