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 - 중국 간신 19인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역사의 경고
김영수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통치자로서 제거해야 할 인물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도둑질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첫째가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이고,
둘째가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이고,
셋째가 행동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이고,
넷째가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이고,
다섯째가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이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의 자들을 보면 모두 말을 잘하고, 지식이 많고, 총명하고, 이것저것 통달하여 유명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실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런 자들의 행위는 속임수 투성이며, 그 지혜는 군중을 마음대로 몰고 다니기에 충분하고,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이런 자들은 간악한 무리의 우두머리라 죽이지 않으면 큰일을 저지른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에 실린 간신에 대한 공자의 글이다. 간신은 개인적인 자질로 보면 매우 뛰어난 존재이지만, 공동체라는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해로운 존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로마에 가면 'SPQR'이라는 글귀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수구 뚜껑에까지 쓰여져 있다. '로마 원로원과 시민'을 뜻하는 라틴어 문구인 'Senatus Populus Que Romanus'의 줄임말로, 로마공화정과 로마 제국의 공식 명칭이라고 한다. 로마의 주권은 원로원과 시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 당시 동양은 군주 1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만백성 위에서 군림하던 시기였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권력자를 절대 군주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 국가와 원로원과 시민을 동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모두가 로마의 주인이라는공동체 의식을 가짐으로써 나라가 1000년 이상 유지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절대 왕정 체제의 중국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나라는 300년도 채 안 되는 청(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잦은 왕조의 교체는 1인에게 힘이 집중되는 정치 시스템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는 현재, 미국을 대신할 국가를 거론하면서 중국은 민주화가 덜 되 미국 이후를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어느 신문에 실린 글에 수긍이 간다. 이 책에서 중국 역대 왕조 중 간신이 가장 적었던 시기로 청나라를 꼽고 있다. 간신과 국가의 흥망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겠다.  

  

'역아, 비무극, 백비, 조고, 석현, 양기, 동탁, 우문호, 양소, 이의부, 이임보, 양국충, 노기, 채경, 황잠선, 진회,엄숭, 위충현, 온체인'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간신 19명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몇몇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그렇지만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진회이다.  

 

관우와 더불어 중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악비, 구국의 영웅 악비를 모반이라는 죄목을 씌워 제거하려 했으나,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자 막수유(莫須有-분명치 않지만 혹 그럴지도 모른다는 뜻)라며 끝내 악비 부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인물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충신을 죽이고 남송을 금에 넘긴 초특급 간신, 절강성 항주에 있는 악비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진회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즐겨 먹는, 우리나라의 꽈배기와 비슷한 '요우티아오'라는 음식이 진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회의 모습을 본뜬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바싹 튀겨 씹어 먹으면서 간신에 대한 증오심을 삭혔다고 한다. 또한 중국 사람들은 이름 자에 '회(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영원히 받고 있는 셈이다.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리던 친일 매국노들. 그들 중에서 진회처럼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거나 받았던 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 했다. 오히려 그들이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간신.

충신과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추구하는 가치에서 드러난다. 충신은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간신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체를 버린다. 충신은 자신에게 불리할지라도 원칙을 지키고 간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역아처럼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키고 진회처럼 조국을 판다. 간신에게는 오직 자신의 이익만 있을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인물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내가 아둔한 탓도 있겠지만 그들의 행태가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유형화된 간신의 출현을 막지 못하는 이유를 지은이는 '사람들의 성격상의 약점, 사회나 국가 제도의 미비, 통찰력과 역사의식의 부족'에서 찾고 있다. 그러므로 간신이 설 자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는 현실과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사회적으로는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