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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바다
박수현 지음 / 지성사 / 2022년 6월
평점 :
박수현 작가의 전작 <바다에서 건진 생명의 이름들>을 수년전에 읽고 많은 감동과 지식을 얻은 좋은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 줏어들은 물고기에 대한 상식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 소재가 어정쩡할 때 꺼내 우려먹기에 아주 유용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바다에 대한 경외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더 나아가 '바다' 를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공감대까지 형성되었다.
한편 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일상을 독서와 영화감상으로 지내던 어느날 <나의 문어선생님>이라는 다큐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바닷속의 풍경이 담긴 영상속에서 인간과 문어의 교감 내지는 소통을 지켜보면서 인간이 아닌 생물체에게도 이렇게 배울 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기에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지 않은 자연 다큐임에도 환경 보호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 감동을 그대로 안은 채 나는 박수현 작가의 따끈따끈한 신작 <거의 모든 것의 바다>를 과감히 질러버렸다. 질렀다는 표현을 쓸 만큼 책값은 만만치 않았으나 책의 실물을 영접하고나면 책값이 결코, 전혀,네버 아깝지가 않다. 설익은 힐링류의 가벼운 책들이나 어설픈 인문서들이 많은 최근의 출판 트랜드에 대해 늘 유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바닷속을 꼼꼼히 탐험하며 탄탄한 자료조사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친절한 교양백과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컬러학습대백과 사전'을 읽고 자란 세대로서 이 책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평생 자산이 될 책인 동시에 호기심많은 성인 독자들에게도 완전 취향저격이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첫 장부터 읽지 않고 목차를 먼저 훑은 후 가장 궁금했던 문어와 고래 편부터 찾아서 읽었다. 바다의 카멜레온이면서 붙여진 이름답게 머리도 좋은 그러나 위험한 바다생물이기도 한 문어. 그러나 통발에 갇힌 문어들이 절체절명의 순간 종족 번식의 본능을 보이는 사진들에서는 생명체의 신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또한 최근 인기드라마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인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우영우가 고래의 종류를 주욱 나열하고 그 특징들을 읊는 대사들이 나오는데 그 흥미로운 대사들은 이 책에 다 나오는 듯하다.^^
총4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먼저 지구에서 바다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역할, 자연현상들을 아주 쉽게 설명해 과.알.못 (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거부감없이 입문할 수 있다.
2부 어류에서는 어류의 특성과 종류 이름들의 유래를 알려준다.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졸았던 사람들이라도 전혀 지루함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연골어류니 경골어류니 하면 웬지 어려울 것 같지만 분류를 쉽게 하기 위한 구분이지 실제 사진과 설명을 대조하면 거의 우리에게 친숙한 생선들이라 정겹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렇게 많은 어류들을 직접 다 촬영한 작가의 기동취재력이 놀랍기만 하다.
3,4,5부에서는 어류 외에 바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극피동물, 자포동물,절지동물,연체동물, 해면동물, 환형동물 까지는 접해 봤는데 미삭동물, 의충동물, 태형동물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연체동물인 조개류 낙지 주꾸미,굴, 홍합,전복, 군소 등을 보다 보니 수산센터로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주부 본능이 살아나기도 했다.
게다가 파충류, 포유류, 해양조류, 염생식물, 바닷말도 당당한 바닷속 주민들이었던 사실도 알게 된다. 한편 극지방 탐험가이기도 한 저자만이 찍을 수 있는 자료사진들이 풍성한 점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평소 비교적 다독가인 나는 모든 책을 다 소장하지는 않는다. 다 소장하게 되면 책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에 자주 책장 다이어트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거의 모든 것의 바다>는 영원히 책꽂이에 소장할 책 리스트로 올려 놓앗다.
나와는 독서 스타일이 전혀 다른 남편이지만 급 흥미를 보이며 이 책으루읽고 있는 내 등 뒤에서 " 제발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엔 인간적으로 밑줄 긋지 마시오!" 라 말한다. 밑줄 긋는 독서 습관을 가진 내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멘트인데 사실상 나도 이 귀하디 귀한 책에 밑줄 그을 생각이 없다.
이 책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있는 가정을 포함해 집집마다 소장해 둘 가치가 충분하다고 자신있게 권하면서 더 나아가 영어나 중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K-해양서적의 위엄 마저 떨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