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 - 외할아버지의 손자 키우기
정석희 지음 / 황소자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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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년에서 가장 행복하고 충일했던 시기를 함께 보낸 녀석들이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 녀석들이 절대 기억하지 못할 한두 살을 우리는 진하게 같이 보냈다. 녀석들은 벌써 자기들이 기저귀 찼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서너 살 무렵의 기억들조차 점점 옅어지고 단편화될 것이다. 나로서는 이 무렵의 소중한 기억들을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사라지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부디 바라건대, 나의 손자들이 나중에 이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 11)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는 외할아버지가 두 손자들을 돌보며 보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쓴 에세이집이다. 저자의 큰딸과 작은 딸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고, 모두 워킹맘이었던 터라 외가에서 두 아기를 쌍둥이처럼 돌봐 주게 되었다고 한다. 외손자를 봐주느니 파밭을 맨다’, ‘외손자를 귀애하니 방아깨비를 귀애하지’(p. 6) 같은 옛말도 있다지만, 저자는 오로지 내리사랑으로 외손자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손자들을 돌본 썰을 듣고 있으니 지나간 나의 육아가 떠올랐다. 젖을 언제 먹었는지, 대소변은 언제 얼마나 했는지 매일 기록하던 일상. 서툰 손으로 갓난아기를 목욕시키던 때. 한밤중 깨어나 우는 아기를 토닥이던 기억. 이것저것 육아 용품으로 가득했던 공간. 달큰한 아기 냄새. 지나고 나니 힘들었던 것은 모두 잊히고 그리움만 남아 있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드는 생각은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보살핌을 받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이 나의 할머니에게도 행복한 기억이었을까. 이제는 그 질문을 건넬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눈빛들에서 이미 그 답을 들었다고 혼자서 짐작해 본다.

 

도헌이와 경모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우리집을 아예 떠나기까지 만 3년 반 동안, 이렇게 우리집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집이 되었다. 어른들의 집에 아이들이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집에 어른들이 얹혀사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내는 지금도 그때가 참 사람사는 것 같았다고 말하곤 한다. (p. 28)


요즘에는 조부모가 아이들을 돌봐 주는 경우가 많아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이가 꽤 많을 것 같다. 돌봄을 주었던 이는 주었던 대로, 돌봄을 받은 이는 받은 대로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떠오르게 만든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이긴 하나 현실 육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예비 부모들이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할아버지의 황혼 육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누구의 인생에나 존재하는사랑이 가득 담겼던 그때 그 순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이 책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를 읽어 보길 추천한다. 이렇게 책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 할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는 딸들과 손주들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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